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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끌어냈지만, 어쩐지 결혼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잘 들리지 않습니다. 엄마 페미니즘 탐구모임 '부너미'에서 결혼한 여성들을 위한 새로운 고민과 질문을 나눕니다.[편집자말]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14일 오전 서울 도봉구 은혜공동체주택에서 진행된 30~40대 남성 1인 가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제공]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도봉구 은혜공동체주택에서 진행된 30~40대 남성 1인 가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여성가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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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14일 30~40대 1인 가구 남성들과 만났다는 언론 보도를 접했다. 행사에 참여한 남성들은 '혼밥'의 어려움부터 육체적·정신적 외로움, 주거 문제, 네트워크 부족 등을 호소했다고 한다. 

1인 가구 남성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혼자 사는 여성들은 혼자 살아서 밥 먹기 어렵다거나 외롭다는 등의 고충을 감히 언급하지 않는다. 주거침입, 성폭력 등의 위협이 더 시급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1인 가구 남성들을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해결해줄 수 있는가. 빈곤이나 장애, 부양의 어려움이라면 제도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성인 남성이 제 밥을 못 챙겨 먹는 문제는 결이 다르다. 1인 가구 남성들은 혼자라서 겪는 어려움이라고 말하지만 가족이 있다면 달라졌을까? 

돈 벌면 집안일 해서는 안 되나

나는 결혼한 지 9년 된 남편과 6살 된 아이와 함께 살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저녁 끼니를 고민하는 '돌봄 노동자'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예상치 못한 요구를 사방에서 받았다. '남편을 챙겨줘라.' 

친정엄마는 사위가 굶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이 서방 아침은 해주냐"고 전화로 물었고, 어떤 이들은 남편 옷을 계절마다 잘 바꿔주고 출근할 때 입기 좋게 꺼내 놓으라고 조언했다. 

그가 구멍 난 양말을 신거나 구겨진 와이셔츠를 입는 것도, 총각 시절 말랐던 그가 보기 좋게 살이 찌지 않은 것도 (또는 뱃살이 나온 것도) 아내인 내 탓이 되곤 했다. 그뿐인가. 남편은 늦은 밤 퇴근하고 오면 자기 옷, 양말, 바지를 방구석 아무 데나 던져 벗어놓았고, 맥주를 마시고 과자를 먹고 난 후에도 쓰레기를 식탁에 그대로 두었다. 나는 계속 치우라고 말했지만 그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납득할 수 없었다. 이런 문제 또는 가사 분담에 관한 글을 쓰면 꼭 이런 댓글이 달렸다. 

"전업주부라면 집안일을 100% 해야 한다. 아쉬우면 돈 벌어와!" 

전업주부는 남의 옷을 치우는 하녀가 아니다. 주부가 직장인보다 요리와 청소를 더 많이 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쓰레기를 휴지통에 버리거나 신던 양말을 빨래 바구니에 넣는, 어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초적인 일까지 내가 대신해줄 수는 없다. 그것들은 아이들도 스스로 하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돈 버는 자는 집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므로' 주부가 다 챙겨줘야 한다고 말했다. 밖에서 '무려' 돈도 버는데 집 안에서는 어쩜 이리도 무능해지는 걸까. 왜 갑자기 누워서 텔레비전만 봐야하는 어린아이로 퇴화하고 마는 것일까. 내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사실 집안일을 분담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차려 먹고, 계절이 달라지면 옷장에서 옷을 꺼내고, 옷이 더러워지면 빨래 바구니에 넣어두고, 자기에게 필요한 물품을 알아보고 사는 건, 가사 분담 이전에 스스로를 돌볼 줄 아는 능력이다. 같이 사는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지 않는 기본 상식이다. 돈을 얼마를 벌어오건, 외벌이건, 맞벌이건, 성인이라면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하는 일이다.

밥을 떠먹여 줄 수는 없다

사람들은 내게 남편 아침밥을 차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출근 시간에 맞춰 요리를 할 수 없던 나는 '친절하게도' 아침 대용으로 선식과 과일을 사다 놓았다. 그런데 그는 냉장고에 과일이 쌓여 있어도 스스로 꺼내 깎아 먹지 않았고 선식에는 손도 대지 않아 곰팡이가 피었다. 처음엔 꺼내 먹으라고 몇 번 말로 알려줬는데, 그럼에도 그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후로는 어떤 것도 사주지도,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나는 궁금했다. 왜 음식을 직접 꺼내 먹지 않을까? 왜 사둔 과일을 스스로 깎아 먹지 않을까? 주변 여성들에게 답답함을 토로했다. '남편이 잘못했다'는 말을 들을 줄 알았는데, 답변은 의외였다. 자기 남편도 그렇다며 아주 반갑게 맞장구를 쳐주는 게 아닌가.

"남자들은 원래 그래. 남편들은 애라고 생각하고 대해줘야 해." 

남자는 애라니. 내 아이는 네 살 때부터 배가 고프면 싱크대로 와서 직접 우유를 꺼내 먹었다. 장난감을 정리하라고 하면 착착 바구니에 넣었다. 네 살 아이도 하는 일을 인지 능력이 훨씬 우수한 성인 남성이 못한다는 말을 믿을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나는 주변에서 아무리 뭐라 한들 남편을 돌보지 않았다. 아이만을 돌봤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이제 남편은 된장국, 콩나물국, 달걀찜 등을 요리하고, 빨래한 옷을 개서 서랍장에 착착 넣어둔다. 입을 옷이나 생활용품이 필요하면 직접 마트에 가서 사 온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여기까지 오기 위해 7년을 싸워야만 했다. 

아이들과 집안일을 같이 해야 한다고, 스스로 하는 기회를 막는 건 아이의 미래를 망치는 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왜 성인 남성과는 집안일을 적극적으로 나누지 않고 그들을 '남자라는 이유'로 봐주는지 의문이다. 물론 세상이 바뀌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나는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남편을 아이 취급하지 마세요. 계속 해 주니까 혼자 밥도 못해 먹는 거 아닌가요." 싫은 소리 하느니 내가 하고 만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수십 년을 엄마의 돌봄 노동에 기대왔던 나에게도, 주말마다 서울 사는 자식 집에 빨래와 반찬을 해주러 가는 어느 어머니에게도 해당될 말일 것이다. 

돌봄은 셀프다
 
 다만 나는 그들을 지원하는 정책적 해법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중년 남성의 고독사 현장에 가보면 술병, 인스턴트, 배달음식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다만 나는 그들을 지원하는 정책적 해법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중년 남성의 고독사 현장에 가보면 술병, 인스턴트, 배달음식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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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남성 역시 우리 사회가 관심을 둬야 할 대상이라는 문제의식에 동의하지 않는 게 아니다. 서울시 복지 재단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서울에서 발생한 고독사 확실 사례 중 남성의 비율(84.57%)이 여성(12.96%)보다 훨씬 높았다. 연령대로는 40~50대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중년 남성일수록 고독사 위험에 노출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나는 그들을 지원하는 정책적 해법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중년 남성의 고독사 현장에 가보면 술병, 인스턴트, 배달음식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지자체들은 40~60대 1인 가구 남성들을 대상으로 반찬 배달 등의 돌봄 정책을 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서비스 제공은 장기적 대책이 될 수 없다. 만약 가난이나 질병 때문이 아니라면, 왜 스스로 끼니를 해결할 수 없는 걸까. 혼자 사는 게 원인이라면, 누군가와 같이 살면 괜찮아질까. 

나는 같이 사는 가족이 있지만 아무도 나의 끼니와 건강을 챙겨주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아이를 돌보고 오늘 하루의 반찬을 걱정한다. 어떤 문제가 누군가와 같이 살아서 해결될 거라 믿는다면 누군가 자신을 챙겨주길 바라기 때문 아닌가.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다 나온 아이디어를 하나 제안한다. 여성들은 혼자 사는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저마다 연대를 모색한다. 공동주거를 기획하고 친구를 초대하고 모임을 만들고 서로를 위해 요리를 한다. 여자들은 여자를 돕는다. 

남자들도 남자를 도왔으면 한다. 정책적인 지원이 절실하다면 1인 가구 남성끼리 상부상조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었으면 한다. 그들이 직접  '자기 돌봄 교육'을 받으며 함께 청소, 요리, 사교 등의 문제를 해결하면 어떨까. 

실제로 그런 실험을 하는 곳도 있다. 서울 양천구는 1인 가구 남성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비남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나비남'은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뜻의 조어로, 1인 가구 남성들을 멘토-멘티로 묶어주거나 공동텃밭, 요리 교실 프로그램 등을 운영 중이다(참고 기사 : [한국일보] 독거 중년남들 텃밭 가꾸며 수다… "외롭지 않아요").

남성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남성이 스스로 자기 돌봄 능력을 키우고 서로 연대할 방법을 모색했으면 한다. 돌봄은 셀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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