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울 수는 없어도 밟을 수는 있다"

예술계 내에서 공공연하게 나도는 소리다. 스승이 제자에게 위력을 행사하더라도 학생들은 그저 이를 묵묵히 참고 따를 수밖에 없는 예술계의 구조적인 모순을 잘 드러낸 표현이다.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속에서 학생들을 버티게 하는 건 오로지 스승에게 복종하고 침묵하는 방법이 전부라는 하소연은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부 대학의 예술계열 전공학과 교수들이 제자들에게 심각한 '갑질'을 하고 있다는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갑질 교수'라 불리는 이들은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학생의 미래를 움켜쥔 채 쥐락펴락하고 있었다. 학생 위에 왕처럼 군림하는 이들의 천태만상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KBS 1TV <추적60분> ‘제자인가 노예인가, 예술계 교수의 민낯’ 편의 한 장면

KBS 1TV <추적60분> ‘제자인가 노예인가, 예술계 교수의 민낯’ 편의 한 장면 ⓒ KBS

 
지난 15일 방송된 KBS 1TV <추적60분> '제자인가 노예인가, 예술계 교수의 민낯' 편에서는 학교 내에서 막강한 권력자로 군림하며, 학생들에게 위력을 행사하는 일부 예술계 교수들의 갑질 행태를 추적하고, 이의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교수님 방은 키스방" 갑질교수의 천태만상

A대학교 ㅇㅇ연기과 출신 최민지(가명)씨는 연기를 배우기 위해서는 "폭력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교수가 손으로 머리를 때리거나 머리채를 잡아 흔들며, 구둣발로 차기도 하고 손에 마이크 같은 게 쥐어져 있으면 이를 던지기도 한다. 피하면 더 많이 맞으니 차라리 한 대 맞고 끝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당 학과에서는 공연 연습 때마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가혹행위가 가해지곤 했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이른바 원산폭격을 시키고 거친 욕설을 내뱉는 일은 다반사였다. 심지어 기합을 받다가 쓰러지는 학생이 발생할 정도로 그의 교육 방식은 거칠었다. 같은 학교 졸업생 엄혜인(가명)씨는 이렇게 증언했다.

"욕설은 기본이었고, 교수가 마실 차를 준비할 때는 절대로 유리컵을 준비 안 해요. 던지거든요. 깨지면 학생들이 다치니까요."
 
 KBS 1TV <추적60분> ‘제자인가 노예인가, 예술계 교수의 민낯’ 편의 한 장면

KBS 1TV <추적60분> ‘제자인가 노예인가, 예술계 교수의 민낯’ 편의 한 장면 ⓒ KBS

 
해당 교수는 배역 결정부터 평가까지 학과 실습 공연에 대한 전권을 쥐고 있었다. 때문에 학생들은 무대에 오르기 위해 교수의 기분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한 공연의 뒤풀이 때는 학생들이 속옷만 입고 춤을 춘 사례도 있었다. 학생들에게 마치 왕처럼 군림했다는 해당 교수, 그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건 학생들의 미래가 오롯이 그의 손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KBS 1TV <추적60분> ‘제자인가 노예인가, 예술계 교수의 민낯’ 편의 한 장면

KBS 1TV <추적60분> ‘제자인가 노예인가, 예술계 교수의 민낯’ 편의 한 장면 ⓒ KBS

 
B대학교의 또 다른 교수는 매년 졸업 공연을 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고가의 선물을 요구했다. 학생들의 졸업 작품 비용 가운데 일부를 노트북이나 캠코더 등을 사는데 사용하도록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해당 교수의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B대학교 공연ㅇㅇ학과 박은진(가명)씨는 "환영 파티를 하는 와중에 여자애들한테 가서 뽀뽀해라. 여자애들한테는 손이나 허벅지 부위를 마사지해달라고 요구했고 남자애들은 보통 어깨를 마사지해줬다"는 등 성추행 의혹도 제기됐다. 또 다른 학생은 "교수님 방은 키스방"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진상조사를 약속하며 사과문을 올렸던 대학 측은 결국 해당 교수에게 직위해제 처분을 내렸다.

C대학교 ㅇㅇ미디어학부에서는 2017년 지도교수가 학생들의 창작물을 빼앗으려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수업과제로 20여 명의 학생들이 공동창작극을 만들었는데, 해당 연극은 업계의 호평을 이끌며 지역축제에도 참여 요청을 받게 됐다. 하지만 지도교수가 이에 개입하면서 마치 자신의 작품인 양 행세하다가 일부 학생 등이 이 사건을 공론화했고, 지도교수는 제자들의 창작물을 강탈하려했다는 의혹을 받게 된 것이다. 여기에 부실한 수업 의혹까지 더해져 그는 결국 2017년 12월 학교로부터 해임된다.

예술이라는 명분으로 행해져온 폭력, 정당화돼선 안 돼

그렇다면 학생들은 왜 스승의 가혹행위를 참아왔던 것일까? 최민지(가명)씨는 "실제로 교수님한테 밉보였던 학생들은 오디션 하려고 들어가면 '아유, 저거 볼 필요도 없다' 같은 태도로 일관하셨거든요"라고 말한다. 엄혜인(가명)씨는 교수가 "공연 하지마"라고 하면 그날은 교수 집으로 찾아가 "공연하게 해달라고 무릎 꿇고 빌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공연을 못하게 되면 학생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잖아요. 때문에 공연을 위해 빌어야 했어요. 교수는 학생들의 간절함을 역이용했고요."

학생들은 이미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예술계의 부당함을 몸소 경험하고 있었다. C예술고등학교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외부행사에 학생들을 동원하여 물의를 빚었다. 학생들이 참가했다는 한 보험 회사의 직원 시상식 행사에서는 미성년인 학생들의 축하공연이 진행되던 현장에서 어른들이 술을 마시거나 심지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 이들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KBS 1TV <추적60분> ‘제자인가 노예인가, 예술계 교수의 민낯’ 편의 한 장면

KBS 1TV <추적60분> ‘제자인가 노예인가, 예술계 교수의 민낯’ 편의 한 장면 ⓒ KBS

 
군인들 앞에서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고 선정적인 춤을 추는 군부대 위문공연도 벌써 2년째 이어지고 있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건 학부모들조차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피해 사실을 알릴 경우 공연에서 배제되는 등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2차 피해가 두려워 침묵으로 일관해왔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절대 권력자인 교장의 요구를 묵살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차후 일어나게 될 일들로 인해 두려움이 컸다고 실토한다.

춤 비평가 이지현씨는 예술계의 이러한 현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자신의 의견을 잘 표출하고 남들이 생각하지 않은 창의적인 것들을 갖춘 아이들은 이미 중고등학교 때부터 걸러지는 것 같아요. 현실에 순응하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니까요.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스스로 선택한 결정에 책임을 지는 능력들은 상당히 떨어진다고 봐야죠."
 
 KBS 1TV <추적60분> ‘제자인가 노예인가, 예술계 교수의 민낯’ 편의 한 장면

KBS 1TV <추적60분> ‘제자인가 노예인가, 예술계 교수의 민낯’ 편의 한 장면 ⓒ KBS

 
도제식 교육이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성을 가진 스승이 제자를 곁에 두고 가르치는 방식을 일컫는다. 특히 예술계에서 흔히 이뤄지는 교육 방식이다. 최근 이러한 형태의 교육이 비상식적인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방송이 취재한 내용도 이를 뒷받침한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승의 말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는 학생들. 이러한 관행은 일종의 굴레가 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로 하여금 더 철저하게 을로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옭아매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현장에서 일하는 선배들을 보면 거의 교수와 연관되어 있는 극단, 공연이 많아요"라고 말하던 한 학생의 호소는 이러한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KBS 1TV <추적60분> ‘제자인가 노예인가, 예술계 교수의 민낯’ 편의 한 장면

KBS 1TV <추적60분> ‘제자인가 노예인가, 예술계 교수의 민낯’ 편의 한 장면 ⓒ KBS

 
교욱부는 지난해 10월 교육 분야 갑질근절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신고지원센터에서 신고자에 대한 2차 피해 여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한 실태조사에서 갑질을 당한 피해자의 80%가량은 보복이 두렵다는 이유로 갑질을 "그냥 참았다"고 대답한 사실만으로도 이의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이다.

예술계에서 교수의 갑질은 흔히 권위나 예술가로서의 카리스마로 포장되어 마치 관행처럼 자행돼왔다. 과연 예술이라는 명분으로 스승이 제자에게 행해져온 폭언과 폭행 그리고 억압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이제 우리 사회가 이에 답할 차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새날이 올거야(https://newday21.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추적60분 KBS 제자인가 노예인가 예술계 교수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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