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버나움>의 포스터

영화 <가버나움>의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

 
교회 내 외국인 선교회에서 활동했던 나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났다.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인도, 필리핀, 나이지리아, 모로코, 콩고민주공화국 등등.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떼르멍스와는 각별히 친밀했다. 제주도에서 같이 선교하자며 나를 '제주도 마망'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내 아들 현이를 무척 예뻐했기 때문이다. 신부가 되기 위해 가톨릭 사제 학교를 다녔다는 그는 어떤 계기로 인해 가톨릭에 실망한 뒤 학교를 그만두고 개신교도가 되었다고 했다.

이후 한국에 온 그는 불법체류자가 되었다. 그는 철공 공장 등을 전전하며 힘든 일을 하기도 했지만, 프랑스어와 영어를 읽고 쓸 수 있어 프랑스어 설교 통역을 하며 콩고 출신 여자친구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잘 살고 있다. 사실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문 행운을 잡은 것이다. 떼르멍스에게는 스무 명이 넘는 형제 자매들이 있다. 수많은 형제 외 부모님을 위해 매달 콩고로 돈을 보내고 있었다.

산업연수생으로 왔던 인도네시아 한 지인은 구로동 장난감을 만드는 공장 기숙사에서 살았는데 여권은 사업주가 다 걷어서 가지고 있었다. 혹여 불법체류자가 되어서라도 돈을 더 주는 곳으로 갈까봐 그런다고 했단다. 산업연수생으로 오기 위해 많은 돈을 브로커에게 주기도 한단다. 3년이 지나면 돌아가야 하지만 브로커에게 준 돈을 갚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고 했다. 대부분 돌아갔다가 비합법적으로 다시 들어와 불법체류자가 되는 이유다.

인천공항 46번 게이트 앞 '그 가족'   
 
 <가버나움>의 한 장면

<가버나움>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새삼스럽게 그들을 떠올린 것은 인천공항 46번 게이트에 살고 있다는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앙골라 난민 루렌도-바테체 가족의 기사와 레바논 여성 감독 나딘 라바키의 <가버나움 >(Capharnaum)이라는 영화가 겹쳐졌기 때문이다. 루렌도- 바티체 가족은 어린 자녀가 4명이나 되고 여권을 빼앗겨 생필품조차 사기 어려운 처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프랑스어 밖에 할 줄 몰라 소통의 문제도 겪고 있다고 했다. 앙골라에서 겪던 차별을 피해 한국으로 온 루렌도 가족은 앙골라로 다시 돌아가라는 것은 죽으라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현재 루렌도 가족은 스위스 UN 난민 기구에 도움을 요청해 놓은 상태라고 한다. 기사를 읽고 46번 게이트 난민 가족을 생각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예멘 난민 사태로 청와대 분수대 근처에서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는 이슬람 계통 난민 청년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 아랍권 영화이자 난민과 불법체류 빈민의 생존을 그린 영화 <가버나움>이 더욱 묵직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가버나움은 갈리리 북쪽에 위치해 있는, 환락과 부패로 가득차고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고 교만함이 팽배한 혼돈의 성읍이었다. 예수가 기사와 이적을 많이 베푼 곳으로 알려졌지만 회개하지 않자 멸망을 예언했고 실제로 6세기경 멸망해 폐허가 됐다. 현재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관광지로로 남아 있다고 한다.

영화 제목 가버나움의 프랑스어는 'capharnaüm'으로 잡동사니를 넣어 두는 곳, 뒤죽박죽 엉망진창인 상태, 혹은 문학적으로 '혼돈'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를 알고 영화를 본다면 훨씬 더 깊이 있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영화 <가버나움>의 모델이 된 부모는 실제로 18명의 자식을 낳았다고 한다. 영화에 캐스팅 된 사람들은 대부분 난민과 불법체류자다. 연기자들의 연기가 절절한 이유다. 그들에겐 연기가 아닌, 실제 삶의 재연이기에 칸영화제에서 15분 동안이나 기립박수를 받았으리라. 영화를 만든 나딘 라바키 감독도 자인의 변호사 역할로 자인과 함께 등장해 무게를 더한다.

친부모를 고발한 소년   
 
 영화 <가버나움>(2018) 한 장면

영화 <가버나움>(2018)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는 처음부터 충격적이다. 출생증명서 하나 없어 실제 나이조차 알 수 없는, 12세로 추정되는 자인이라는 소년이 친부모를 고발해 법정에 서는 장면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상해죄로 소년교도소에 복역 중이던 자인은 생방송 진행자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자인은 11세인 여동생을 데려가 조혼을 하고, 결국 죽게 만든 슈퍼 주인을 찔러 5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었다. 초경을 시작하자마자 나이 많은 슈퍼 주인에게 팔려간 여동생은 임신 후 하혈을 해 병원에 가지만, 출생신고조차 돼 있지 않아 병원 문 앞에서 죽고 만다. 자인은 이에 분노해 칼을 들고 남자를 찾아가 찌른 것.

자인의 부모에게 자식들은 하나의 인격적 존재가 아니다. 그저 자기들 본능에 충실해 임신을 하면 아이를 낳고,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초경을 시작하는 딸을 넘겨 약간의 이익을 얻고, 목숨을 부지하면서도 죄책감 없이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자인은 여동생이 초경을 시작하자, 직감적으로 부모가 동생을 누군가에게 넘길 것을 안다. 그리고는 동생에게 초경 사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 뒤, 피 묻은 속옷을 공중화장실에서 빨아서 입게 하고 자신의 셔츠를 벗어 생리대를 대신하게 한다. 자인은 물건을 나르는 슈퍼에서 몰래 생리대를 숨겨가지고 돌아와 생리대를 처리하는 방법까지 알려주는 등 어린 여동생을 보호하려 한다. 끝내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자인은 가출을 하고 불법체류자로 아들을 낳아 키우고 있는 라힐의 집에서 그의 아기 요나스를 돌보며 지내게 된다.

소년교도소에서 생활하는 자인을 찾아 온 엄마는 자인에게 죽은 여동생을 대신해 신이 또 다른 선물을 주셨다며 또 다시 임신한 사실을 알려준다. 자인은 자신을 세상에 오게 만든 부모를 고소하고 법정에서 부모가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영화는 아프리카, 분쟁 지역, 아립권 등에서 종교를 이유로 혹은 피임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책임지지 못하는 임신과 출산을 하는 것에 대해 개인과 사회의 책임을 돌아보게 만든다.

전쟁과 가난, 무지로 존중받는 존재로서의 삶과는 무관한 생존을 이어가야만 하는 세상, 뒤죽박죽 엉망진창인 세상에 그저 내던져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 인종, 종교, 불법 체류, 난민, 가난함을 이유로 소외되고, 배척당하는 세상이 아닌 모두가 존중받는 존재로 살아가는 사회가 되려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만 할까.

영화 <가버나움>이 이룬 기적
 
 영화 <가버나움>(2018) 한 장면

영화 <가버나움>(2018)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의 주인공 자인 알 라피아는 실제 시리아 난민 출신으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빈민 생활을 하다 영화 출연 후 가족과 함께 노르웨이에 정착했다고 한다. 영화 말미 자인이 신분증에 들어갈 사진을 찍으며 환하게 웃던 모습에 울컥해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자인은 14살에 처음으로 학교를 다니며 또래 아이들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됐다고 한다.

자인의 여동생 사하르 역을 맡은 하이타 아이잠도 길거리서 껌을 팔다 캐스팅 되었는데 주변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니게 될 것이라고 한다. 에티오피아 불법난민 역을 맡았던 라힐 역의 요르다노스 시프로우와 아들 요나스 역의 보르와티프는 케냐로 돌아갔고 여덟 살이 된 보르와티프도 곧 학교에 다니게 될 것이라고 한다.

현대판 '가버나움의 기적'은 누가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것은 인간의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들일 것이다. 더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서로 감동을 전하고 난민과 불법체류자들의 삶에 더욱 관심을 가진다면 전쟁과 탐욕으로 일그러진 세상에 내던져진 자인과 같은 이들이 엉망진창인 가버나움에서 나와 인간으로 존중받으며 살 수 있지 않을까?
가버나움 난민 불법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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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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