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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저씨>를 좋아한다. 극장에서만 세 번인가 봤고 이후로도 일년에 한두 번씩 주기적으로 보고 있다. 솔직히 말해 대단히 훌륭한 메세지를 담은 영화라고 하기는 어렵다.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고, 그 중에서도 여성을 활용하는 방식은 특히나 끔찍하다.

몇 안 되는 여성 캐릭터는 모두 방탕하고 문란한 생활을 하다 잔인하게 살해되며, 젊음이 소진된, 즉 여성성을 상실한 할머니 캐릭터는 어린아이를 착취하는 악독한 인간으로 묘사된다.

이런 가운데 소미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주인공이어서이기도 하지만, 특전사 출신의 '아저씨'로부터 구원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저씨가 그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소미를 구하러 나섰던 것은 그녀가 '순결'하고 '순수'한 어린아이였기 때문이다. 소미의 엄마와는 다르게.

물론 <아저씨>를 비판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매우 좋아하는 영화라니까. 문학과 영화는 상상의 산물이지만 현실의 재현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여성들이 사용되는 방식은 요즘 말로 '언피씨(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한 한편, 현실의 인식을 상당 부분 반영한다.
 
영화 <아저씨>의 한 장면
 영화 <아저씨>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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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태식(원빈)은 소미를 납치해 간 일당을 찾기 위해 나이트클럽을 방문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범인 중 한 명인 만석을 마주친다. 만석은 왠지 모르게 포스가 느껴지는 차태식을 경계하며 이런 대사를 한다. "처음 오셨나 봐? 여기 물 좋아요. 애들이 아주 야해." 물이 좋고 야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만석이 이어 덧붙인 말 역시 의미심장하다. "나도 여기서 많이 건졌어요."

다음 장면에서는 장기밀매 브로커인 도치가 등장한다. 그는 부킹을 당해 테이블로 끌려온 여성을 살살 구슬리다가, 술잔에 정체 모를 액체를 몰래 투입한다. 술을 마신 여성은 얼마 안 가 정신을 잃고, 곧이어 화장실로 끌려가 강간을 당한다.

그것으로도 끝이 아니다. 강간 이후에도 여전히 정신을 잃은 채 칸막이 안에 버려져 있던 그녀는 차태식을 뒤따라온 킬러에게 총을 맞고 살해 당한다. 칸막이 밑으로 흘러나오는 피를 보고 문을 활짝 열어젖힌 킬러는 죽은 여성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다.

물론 킬러는 직업상 당연히 그럴 수 있지만, 놀라운 사실은 그 장면을 지켜보는 관객들 역시 놀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물론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어서인 것도 있지만, 모두가 해당 여성의 말로가 썩 좋지 않았을 것을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왜? 나이트클럽에 와서, 남성과 합석해서, 뭐가 들어 있는지도 모르는 술을 냅다 받아마신 여성은,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킨 꼴이니까. 몸을 함부로 굴린 여성은 대가를 치러 마땅하니까.

2011년에도, 2019년에도 똑같은 현실

<아저씨>는 2011년의 영화지만, 2019년인 지금도 여성의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클럽 버닝썬에서 직원들이 여성 고객을 대상으로 조직적으로 약물을 투입하고, 정신을 잃은 여성들을 손님들에게 '제공' 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강간을 영업에 이용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여성들의 사진을 단골들에게 보내면서 와서 '드시라'고 했다고 한다. 저희도 '먹었'다면서. VIP 대접을 받았던 한 고객의 증언에 의하면 자신에게 전송되었던 여성의 사진만도 10장이 넘었다고 한다.

이처럼 조직적이며 악질적인 범죄를 두고도 충격을 받는 사람들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 생각에는 버닝썬 사건이 비행 청소년들의 일탈행위처럼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다 사고를 당한 '일부'의 문제이다.

'그러게, 클럽 같은 데를 왜 가나?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고, 칠칠맞지 못하게스리.'

즉 약물과 강간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클럽에 간 자체가 잘못이라는 생각이 은연 중 녹아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여성의 욕망을 승인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클럽에 간 여성들 개개인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냥 춤을 추고 싶었을 수도 있고, 멋진 이들과 어울려 놀고 싶었을 수도 있고, 혹은 괜찮은 섹스 상대를 찾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많은 남성들이 그러하듯이.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유명 클럽 '버닝썬' 출입구 앞 경찰 수사관들이 디지털 포렌식 장비 등을 들고 들어가려 하고 있다. 2019.2.14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유명 클럽 "버닝썬" 출입구 앞 경찰 수사관들이 디지털 포렌식 장비 등을 들고 들어가려 하고 있다. 2019.2.14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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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사회는 여성의 욕망만을 금기시한다. 욕망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여성은 극단적인 위험까지도 감수한 것으로 간주한다. 무슨 일을 당해도 자업자득이라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섹스 상대를 찾고 싶다는 것이 강간 당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원나잇을 하고 싶다는 것이 의식을 잃고, 강간을 당하고, 사진이 찍혀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페미니즘 이야기만 나오면 치를 떠는 많은 남성들, 미투 이야기만 나오면 무고 걱정부터 하는 그들 중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성들은, 특히나 페미니스트들은 성적인 이야기를 그렇게 터부시하냐고. 그렇게 고리타분하고 답답하게 굴면서 무슨 여성주의 운동을 하느냐고.

바로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전히 페미니즘에 치를 떠는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강간과 섹스를 혼동하는 사람들 때문에, 욕망을 드러내는 여성은 존중하지 않아도 된다고 착각하는 치들 때문에 그렇다고.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욕망은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 욕망을 드러내는 행위가 곧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물론, 여성의 안전과 무관하게 위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여성들과 섹드립을 자유롭게 할 날은 오지 않겠지만. 그녀들에게도 눈이 있고 취향이라는 게 있거든요.

태그:#버닝썬, #약물강간, #영화 아저씨,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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