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에서 세터는 '코트 위의 야전 사령관'으로 불린다. 한 쪽 날개가 막히면 중앙이나 반대 쪽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지만 공격수들에게 공을 배급하는 세터의 멘탈이 흔들리면 그 팀의 조직력은 순식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시즌을 준비하는 감독들이 주전 세터가 흔들리거나 부상 등의 변수로 이탈하는 경우를 대비해 백업 세터 확보에 안간힘을 쓰는 이유다.

실제로 도드람 2018-2019 V리그 여자부에서는 대부분의 구단들이 백업세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주전세터 이효희가 불혹이 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는 2년 차 이원정의 출전 비중을 높이고 있고 IBK기업은행 알토스는 주전으로 나서는 이나연 세터 뒤에 2번의 챔프전 우승과 4번의 세터상 수상 경력을 가진 노련한 염혜선 세터를 대기시켰다. 이고은과 안혜진을 고루 활용하는 GS칼텍스 KIXX는 사실상 주전과 백업의 경계가 없는 상황.

하지만 지난 13일 GS칼텍스를 세트스코어 3-0으로 제압하고 가장 먼저 승점 50점 고지를 돌파한 선두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는 풀타임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는 확실한 주전 세터가 있다. 정확한 토스와 까다로운 서브, 안정된 수비를 겸비한 조송화가 그 주인공이다. 조송화는 어깨 부상으로 결장한 2경기를 제외하면 이번 시즌 흥국생명의 붙박이 주전 세터로 활약하며 박미희 감독과 동료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고 있다.

박미희 감독의 신뢰 속 어린 나이부터 흥국생명의 주전 세터로 활약
 
 조송화는 김사니의 해외 진출 덕분에 어린 나이에 주전 세터로 도약할 수 있었다.

조송화는 김사니의 해외 진출 덕분에 어린 나이에 주전 세터로 도약할 수 있었다. ⓒ 한국배구연맹

 
'여제' 김연경(엑자시바시)과 '꽃사슴' 황연주(현대건설 힐스테이트)가 활약하던 시절 공격수 출신의 이영주가 세터로 활약하던 흥국생명은 2007년 이효희 세터를 영입해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이효희 세터가 기업은행으로 이적한 2010년에는 KT&G(현KGC인삼공사)에서 활약하던 국가대표 세터 김사니(SBS스포츠 해설위원)를 데려 왔다. 프로 출범 후 8년 동안 흥국생명이 세터 문제로 고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2013년 김사니 세터가 아제르바이잔 리그로 떠나면서 흥국생명은 세터 문제로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흥국생명은 우주리와 신예 조송화 세터가 2013-2014 시즌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당시 흥국생명은 외국인 선수 엘리사 바실레바를 제외하면 사실상 국내 공격진이 무너진 상황이었다. 경험이 적은 신예 세터들로는 한계가 뚜렷했던 흥국생명은 2013-2014 시즌 V리그 원년에 이어 두 번째 최하위로 떨어지는 굴욕을 경험했다.

흥국생명은 2014년 KBS N 스포츠의 해설위원으로 활약하던 박미희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박미희 감독은 아직 신인티를 채 벗지 못한 4년 차 어린 세터 조송화를 주목했다. 2013-2014 시즌부터 우주리 세터와 함께 세터 자리를 양분했던 조송화 세터는 현역시절 세터부터 윙 스파이커, 센터까지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던 '코트의 여우' 박미희 감독으로부터 집중 지도를 받았다.

조송화 세터가 풀타임 주전으로 도약한 2014-2015 시즌 흥국생명은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여고생 국가대표' 이재영을 지명했고 이재영과 조송화는 좋은 콤비가 됐다. 물론 나이도 어리고 그만큼 경험도 부족한 지라 코트 위에서 흔들릴 때도 많았지만 박미희 감독은 우직하게 조송화의 성장을 믿고 기다려줬다. 결국 한 시즌을 치르면서 발전을 거듭한 조송화는 세트당 10.21개의 세트를 성공시키며 이효희, 김사니에 이어 세트 부문 3위에 올랐다.

조송화는 주전 2년 차를 맞은 2015-2016 시즌 무릎 부상을 당하며 시즌 초반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박미희 감독은 조송화가 이탈하자 은퇴했던 이수정 세터를 플레잉 코치로 영입하고 수련 선수 출신 김다솔(개명 전 김도희)을 경기에 투입하며 조송화의 복귀를 기다렸다. 그리고 부상에서 복귀한 조송화는 왼쪽에 이재영, 오른쪽에 테일러 심슨, 중앙에 김수지를 고르게 활용하며 흥국생명을 5년 만에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천국과 지옥 오가다가 이번 시즌 프로 데뷔 후 첫 우승에 도전
 
 흥국생명의 공격수들은 코트 위에서 '야전사령관' 조송화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흥국생명의 공격수들은 코트 위에서 '야전사령관' 조송화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 한국배구연맹

 
흥국생명은 조송화가 주전으로 도약한 지 3년째가 되던 2016-2017 시즌 '김연경 시대' 이후 처음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세트당 12.11개의 세트를 성공시킨 조송화는 시즌이 끝난 후 시상식에서 세터 부문 BEST7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조송화는 본인이 주장으로 선임(팀 주장은 김해란, 경기 주장은 조송화)된 2017-2018 시즌 팀의 최하위 추락을 경험하며 두 시즌 동안 천국과 지옥을 모두 경험했다.

작년 6월 조송화와 함께 '20대 세터 트로이카'로 꼽히던 이나연(기업은행)과 이고은(GS칼텍스)은 맞트레이드를 통해 서로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하지만 조송화는 박미희 감독의 변함 없는 신뢰를 받으며 흥국생명에 잔류했다. 다른 선수들이 개인사나 부상, 대선배의 존재 때문에 꾸준한 출전 기회를 부여 받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조송화는 주전으로 도약한 2014-2015 시즌부터 5년째 풀타임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수 년 동안 흥국생명의 토스를 책임졌던 조송화의 '경험'은 이번 시즌 흥국생명의 선두 질주를 통해 결실을 맺고 있다. 사실 부상으로 2경기에 결장했던 조송화는 이번 시즌 세트당 9.60개의 세트를 성공시키며 세트 부문 4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조송화는 이재영과 베레니카 톰시아, 김미연 등 팀 내 공격수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공격수들과의 신뢰 유지는 좋은 세터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또한 조송화는 세트당 0.17개의 서브 득점으로 서브 부문 10위를 달리고 있을 정도로 아주 강하진 않아도 매우 까다로운 서브를 구사한다. 반면에 범실은 단 16개로 서브 부문 10위 안에 있는 선수 가운데 백목화(기업은행)와 함께 리그에서 가장 적다. 실제로 흥국생명은 조송화가 서브를 넣고 공격수 2명과 센터 한 명이 전위에 배치되는 위치에서 대량득점을 올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조송화는 2016-2017 시즌 정규시즌 우승을 경험했고 시상식에서 BEST7에 선정된 적도 있지만 아직 챔프전 우승 경험은 없다. 주전 세터로서 한 시즌 동안 팀을 이끌며 챔프전 우승을 차지하는 것은 세터에게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다. 올해로 5시즌 째 흥국생명의 공격수들을 이끌고 있는 '스마일 세터' 조송화는 이번 시즌 챔프전 우승이라는 열매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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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도드람 2018-2019 V리그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조송화 세터 박미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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