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와 흙'은 25일간 멕시코의 도예마을을 따라 여행한 기록이다. 3년 전 칠레의 한 도예마을에서 보았던 글귀를 기억한다. "도예는 땅의 꿈에 형상을 입혀주는 인류의 유일한 예술이다." 멕시코에서 만난 흙은 어떤 꿈을 꾸고 있었는지 그들이 만들어낸 흙 예술을 통해 만나보았다. - 기자 말
멕시코 도자기 여행을 계획하며 자료를 찾다가 한 동영상을 보았다. 멕시코 미초아칸 주의 여성 도예가 영상이었는데 산에서 흙을 캐고, 부수고 반죽하고, 만들고 빚고 장식하는 과정이 너무 아름다워서 마을의 이름과 도예가의 이름을 메모했다. 동영상 속 도예가 과달루페 가르시아 리오(Guadalupe García Ríos, 아래 과달루페)가 있는 곳은 미초아칸 주 주도 모렐리아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도자기 마을 친춘찬(Tzintzuntan)이었다.
미초아칸 주의 아름다운 파츠꾸아로 호수와 가까이 위치한 이곳은 예전부터 좋은 흙을 가지고 있어 도예가들이 많이 살았다. 발음도 어려운 '친춘찬'이라는 지명은 이곳 원주민 푸레푸차(Puréphecha)의 언어로 '벌새의 고장'이라는 뜻이란다.
특정 관광지가 아닌 평범한 마을이고 여행자들이 개인적으로 찾는 곳이 아니다 보니 시내에서 한 시간 남짓 가는 길이 그렇게 수월하진 않았다. 세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야 했고 정보도 다소 들쑥날쑥했다.
게다가 도착한 마을은 얼핏 도자기마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도자기를 파는 가게도 없었고 열려 있는 도예공방들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거리에 사람도 거의 없었다. 나에게 있는 정보는 동영상에 나왔던 여성 도예가 이름과 친춘찬에 갈 거라고 했더니 시내의 한 수공예점 주인이 추천해 준 그곳에서 가장 알려져 있다는 다른 도예가의 이름, 이렇게 두 명의 도예가 이름이 전부였다.
우선 유명하다는 도예가의 공방을 물어 찾아간 곳은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헛걸음인가? 몇 번 소심하게 노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한 동네 아주머니가 그렇게 약하게 두드리면 안 된다며 주변에 돌을 주워 문이 부셔져라 두드리며 이름을 불렀다. 그렇게 몇 분, 정말 기적처럼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기대한 것과 달리 젊은 남자 도예가였다. 잘못 찾아왔나 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두 이름을 보더니 그가 웃었다.
"두 분은 제 부모님이세요. 지금은 따로 지내시고, 공방도 따로 운영하신지 꽤 되었죠. 재미있네요.(웃음)"
놀랍게도 그는 내가 찾는 두 도예가의 아들 에르네스토(Ernesto)였다. 찾아간 공방은 아들인 에르네스토가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곳이었다. 작업실에 있는 본인의 작업들을 보여준 후 에르네스토는 나를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공방으로 차례차례 안내해 주었다. 재미있는 인연이었고 연결고리였다.
먼저 도착한 곳은 도예가 마누엘 모랄레스(Manuel Morales, 아래 마누엘)의 작업실이었다. 한창 마당에서 오전에 가마에서 나온 도자기를 관찰 중이었다. 마누엘의 작업은 전통도자기라기 보다는 현대도자기였다. 얼마 전 새로 만든 가마가 원하는 온도까지 올라가지 않아 이래저래 고민 중이라고 했다.
"내 작업은 모두 고온 도자기예요. 5대째 이어지는 도예가 집안이죠. 이전에는 전통도자기를 했었지만 아버지가 1980년대에 처음으로 물레와 가스 가마를 샀어요. 그 때부터 전통도자기 뿐 아니라 새로운 도자기 연구가 가능해졌죠. 흰 도자기에 갈색 장식이 아버지의 도자기였어요."
마누엘의 아버지부터 시작된 전통과 현대의 조화는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아버지보다 더 현대적인 장식에 관심을 가졌다. 현대적 기하학 무늬와 인디오 전통문양과 기호를 조합하는 그의 디자인은 전통과 현대를 잘 조합하고 있어 꽤나 유명하다고 한다.
동영상의 주인공 과달루페의 작업장은 집과 작업실을 겸하는 곳으로 건물이 너무 아름다웠다. 아쉽게도 그녀는 모렐리아 시내에 나간 상태여서 어머니와 함께 작업을 하는 딸인 루스(Luz)가 작업장 곳곳을 꼼꼼히 소개해 주었다.
작업장에는 넓은 지하창고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무언가 되기 위해 몇 해를 기다리고 있는 흙이 보관되어 있었고 몇 개월째 건조중인 아직 초벌 전인 큰 기물들이 있었다. 고스란히 도자기의 시간을 담고 있는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작업을 보고 배웠죠. 혼자되신 어머니가 흙으로 삶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 그 과정을 보았기에 저 역시 그 시간과 함께 하는 것이 의미가 있어요. 가장 즐거울 때는 어머니와 함께 공동작품을 만들 때예요. 엄마가 모양을 만들고 제가 장식을 한다거나 장식 중 조금 쉬운 부분은 제가 하고 엄마가 디테일한 부분을 채워 완성하는 식으로 함께 작품을 완성할 때 특별한 느낌이 들어요."
두 공방을 보고 돌아오는 길, 길목에 높게 쌓인 흙을 정리하고 있는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에르네스토는 그것이 이곳 사람들이 사용하는 흙이라고 알려주었다. 근처 산에서 가져오는 그 흙은 오직 친춘찬의 도예가들 만을 위한 것이란다. 그들에게 주어진 자연의 선물같은 것이리라. 오랜 세월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이 땅의 사람들은 그 흙과 함께 살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저는 운이 좋은 편이죠. 이미 많은 경험을 어릴 때부터 할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아직도 이곳 도예가들은 전통 작업을 바꾸는 것을 어려워해요. 그러다보니 점점 도예를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젊은 세대까지 이어지기가 힘들죠."
에르네스토는 자신의 작업뿐 아니라 마을을 위해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 앞으로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작은 도예마을 친춘찬에서 나는 특별한 도자기가 아닌 한 가족의 흙 이야기를 만났다. 그것은 그곳의 오늘 이야기였다. 5대를 거치는 긴 세월 안에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각각 흙으로 만들어내는 도자기는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 모두가 여전히 '흙의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반가웠던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