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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대 1. 2016년 서울시 국공립 어린이집 평균 경쟁률입니다. 국공립 어린이집 입소가 바늘구멍 통과하기에 비유되니 '로또 보육'이란 말까지 나옵니다. 국공립 어린이집이 더 나은 보육을 제공할 거란 기대가 반영된 현상입니다. 그런데 또 한 편에서는 "일부 국공립은 원장의 소왕국"이라고, "무조건 믿고 아이를 맡기지 말라"는 말도 나옵니다. 이 간극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왜 일부 국공립은 학부모들의 믿음을 배신하는 걸까요? <오마이뉴스>가 그 이면을 추적했습니다. 앞으로 매일 12회에 걸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편집자말]
 
2015년 2월 4일,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열렸던 '땜질식 보육정책 규탄 기자회견' 당시 퍼포먼스 모습.
 2015년 2월 4일,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열렸던 "땜질식 보육정책 규탄 기자회견" 당시 퍼포먼스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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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참, 직원들 첫 월급으로 원장에게 빤스 하나씩 선물하면 김영란법에 걸리남."

2018년 6월 1일, 춘천 국공립 A 어린이집 홍아무개 원장은 교사들에게 첫 월급을 주고는 카톡으로 '빤스' 얘기를 꺼냈다. 어린이집 개원 후 한 달여가 지난 시점이었다. 교사가 "맛있는 거 대접한다"고 하자, 원장은 "생각도 안 했던 거 같은데 엎드려 절 받으면 체한다"며 넘어갔다.

그렇게 마무리된 줄 알았다. 아니었다. 홍 원장은 2018년 6월 말에, 7월에, 8월에 또 카톡으로 '빤스'를 언급했다. 원장은 "빤스 하나로도 충분하다, 애쓴 만큼 대접받고 싶다"고 했다. 이에 대해 어린이집 교사는 '갑질'이라 표현했다.
 
"갑질도 심각했어요. 자꾸 선물 사달라고 하더라고요. 자기 팬티 사달라고. 아예 대놓고 말했어요. 첫 월급 탔을 때랑 두 번째 월급 탔을 때 호봉 올랐을 때 등등. 원장 남편한테는 양말 선물, 본인에게는 팬티 선물해 달라고..." 
 

교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뿐만이 아니었다.

홍 원장은 교사에게 "아침 인사 할 때 자리에 멈춰 서서 인사하고 지나가세요, 걸어가면서 누가 인사해요? 못 배워서 그래"라고 핀잔을 줬다. 주말에도, 명절에도, 퇴근 후에도 업무 지시 카톡이 이어졌다. 홍 원장은 오후 9시 30분경 교사에게 "아이들 앞에서만 밝지 말고 원장님의 기쁨조가 되어줘, 내가 애쓰기보다는 샘들의 재롱을 보며 하하호호 하고 싶어"라고 카톡을 남기기도 했다.

A 어린이집 교사는 <오마이뉴스>와 만나 "다른 어린이집 원장님들도 겪어봤지만 이렇게 처우하는 분은 처음 봤다"라며 "왕과 노예 같은 느낌이었다"라고 토로했다.

춘천시의 묵인 혹은 방조... "시에서 뽑은 원장, 책임 통감해야"
 
춘천의 한 시립 어린이집 학부모들이 춘천시에 제출한 탄원서. 어린이집 부실 급식 문제를 고발하며 해당 원장을 즉각 해임하라고 촉구하라는 내용이다.
 춘천의 한 시립 어린이집 학부모들이 춘천시에 제출한 탄원서. 어린이집 부실 급식 문제를 고발하며 해당 원장을 즉각 해임하라고 촉구하라는 내용이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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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같은" 원장님이 운영하는 원 뒤에는 이를 묵인 혹은 방조하는 춘천시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부실급식 논란이다. (관련 기사 : "반찬으로 손톱 반 만한 오이 2개, 아이들 '개'취급") 내부고발에 나선 교사들은 "원장이 운영비를 아끼기 위해 아이들 급식비부터 줄여야 한다는 말을 늘 해왔다"며 "고기 없는 소고기 떡국이 배식 됐고, 반찬으로 아이 손톱 반만 한 오이 2개가 나간 적도 있다" 했다.

분노한 학부모들이 움직였다. 원장을 당장 해임하라고 춘천시에 탄원했다. 학부모들은 홍 원장에 위탁을 준, 시립 어린이집에 대한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춘천시의 책임을 함께 묻고 있다.

한 학부모는 "시에 민원을 넣으니 담당자가 증거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걸 하라고 공무원들이 있는 거 아니냐"며 "춘천시의 대응에 더 화가 난다"고 성토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시에서 뽑은 원장인데 시에서도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라며 "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적 관리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목소리 높였다.

시 측은 "떡국에 소고기를 세 개 넣었는지 한 개 넣었는지 우리가 알 방도가 없다, 닭 한 마리로 20명이 먹었어도 처벌 규정이 없다"는 입장을 밝혀, 학부모들은 분통을 터트렸다고 한다. 춘천시 보육아동과 관계자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사태가 발생하기 전 추가 점검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시 관리·감독 공백은 다른 곳에서도 드러난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지난해 3월 말부터 4월 30일 개원 전까지 한 달가량 해온 노동에 대한 임금을 8개월 후인 11월 20일에 받았다. 11월 6일 춘천시 국공립 어린이집 전반의 문제점을 다룬 기자회견이 열린 후 춘천시청은 서둘러 A 어린이집 감사를 진행했다. 시가 나서자 원장은 그제야 임금을 계산해 지급한 것이다.

교사들은 '개원 전 노동'에 대한 임금을 8개월 만에 받았지만, 홍 원장의 월급 수령은 제때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를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홍 원장은 그해 2월부터 4월까지 총 947만 4340원의 임금을 받았다.

개원 전부터 어린이집에서 일한 교사는 "4월에는 거의 매일 출근했고 주말 출근도 많았다, 많게는 하루에 13시간도 일했다"며 "그런데도 원장이 6월에 개원 특별수당이라며 20만원을 준 게 다였다, 일 터지고 나니 최저시급 계산해서 개원수당 포함 148만원을 줬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시는 <오마이뉴스>에 보낸 서면답변을 통해 "보육사업안내에는 원장을 제외한 국공립어린이집 보육교사에게 개원 전 인건비를 지급할 수 있는 규정이 없으며, 시의 행정조사 후 원장에게 미지급 임금 관련 시정조치를 명하였다"고 밝혔다. 또 춘천시는 "어린이집 문제발견과 관련하여 연간계획을 수립하여 점검을 실시하고 있으나 모든 어린이집의 불법·부당행위를 사전에 모두 적발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김호연 민주노총 보육노조 비리고발센터장은 "근로기준법을 원이 지키고 있는지 춘천시가 확인하지 않는 건 책임 방기"라며 "이처럼 시가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원장이 인건비와 급식비를 줄이면서 수익을 발생시킬 수 있다, 시가 도둑질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원장에게 원을 내어준 꼴"이라고 주장했다.
  
남편에게 돈 빌리고 어린이집 돈으로 갚아도... 춘천시 "문제 없다"
   
2015년 2월 4일,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열렸던 '땜질식 보육정책 규탄 기자회견' 당시 모습.
 2015년 2월 4일,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열렸던 "땜질식 보육정책 규탄 기자회견" 당시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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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지 않은 문제도 있다. 홍 원장은 남편에게 돈을 빌리고 어린이집 돈으로 이를 갚았다.

홍 원장은 어린이집 초기 운영자금 명목으로 2018년 3월과 5월에 각각 100만 원, 500만 원을 빌렸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최아무개씨, 다름 아닌 홍 원장 남편이다. 'A 어린이집 차입금 운영계획' 문서에 따르면, 인건비와 급간식비·운영비 명목으로 남편에게 빌린 500만 원은 7월 이후 60만 원씩 꼬박꼬박 상환하도록 돼 있고 실제 60만 원씩 갚아나갔다. 3월에 빌린 100만 원 역시 지난해 7월 모두 갚았다.

춘천시는 "사회복지시설 재무회계규칙에 따라 단기차입은 당해 회계연도에 상환할 수 있는 차입금 범위 내에서 개인에게 차입이 가능하다"며 "남편에게 돈을 빌리는 것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센터장은 "어린이집 운영이 어려우면 차입금을 잡을 수 있지만, 대출이 아니라 남편에게 돈을 빌렸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지점"이라며 "A 어린이집은 돈이 없다며 인건비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으면서 어린이집 돈으로 차입금은 또 갚아나갔다, 앞뒤가 안 맞는다"고 비판했다.

홍 원장이 '남편'에게 빚을 지고 있던 즈음인 2018년 4월, 어린이집 계좌에서 ○○○로 176만 원이 이체됐다. 공기청정기 구입비였다. 공기청정기 구입금은 고스란히 보조금 명목으로 시에 청구됐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이 업체에 홍 원장 아들이 근무한다는 점이다. 또한 어린이집은 매달 ○○○에 정기적으로 살균을 맡겼는데, 그 담당자가 홍 원장의 아들이다. 홍 원장은 이 업체에서 주방세제와 손 세정제 등을 따로 구입하기도 했다.

A 어린이집 교사는 "개원하고도 원장이 물티슈도 안 사줬다, 항상 돈이 없다고 애들 걸 쓰라고 했다"라며 "그런데 아들이 다니는 ○○○에서 주방세제 만 원짜리, 소독제도 2만 원짜리 비싼 거를 막 사더라"고 전했다.

아들과의 계약은 문제가 없을까. 시는 "문제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춘천시는 "청정기 지원 사업은 보조사업으로 원장이 관련법에 따라 자체적으로 업체와 계약을 맺어 진행되며 직원(이 아들인지) 여부가 계약 관련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애초에 시가 홍 원장에 위탁을 줘서는 안 됐다는 지적도 있다. 홍 원장의 전력 때문이다. 홍 원장이 A 어린이집 원장으로 오기 전 있었던 춘천의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횡령 및 근무태도 등의 문제로 권고사직됐다는 것이다.

춘천의 다른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는 "홍 원장이 근무한 센터에서 일했던 생활복지사에 따르면, 찌질한 횡령이 있었다고 한다"며 "아이들이 캠프에 갈 때 삼겹살 20~30만 원이면 충당될 것을 80만 원어치 가량 사서 나머지를 집에 가져가거나, 저녁 급식에 나온 소고기 등 반찬 가져갈 거를 먼저 챙겨놓고 과일을 몇 박스 씩 사서 지인들에게 파는 등의 일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제때 출근하지 않고 마사지를 받으러 가는 등 근무태도도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홍 원장에게 A 어린이집이 위탁되는 것을 보고 센터 관계자는 "분명히 비리 문제로 그만둔 건데 어떻게 시립 원장으로 가나 쇼킹했다"고 회상했다.

이에 대해 춘천시는 "지역아동센터에서 건강상의 이유로 사직한 것으로 확인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방선거 기간 그가 갔던 곳... 권력 유착 의혹

홍 원장은 지난해 지방선거 기간 중에 최동용 전 춘천시장 선거 사무실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것도 어린이집 교사를 대동한 채, 업무시간 내에 발생한 일이다. 동행했던 교사는 "5월 23일 오후 5시 반에 원에서 출발해 10분에서 15분 정도 사무실에 머물렀다"라며 "다른 선생님들은 일찍 퇴근시키고 그 선생님들은 모르게 하라며 나와 다른 교사를 데리고 갔었다, 내가 왜 거길 가야 하나 의아했다"고 말했다.

이후 2018년 6월 12일 오후 5시 46분 홍 원장은 "나 혼자 댕겨올게~ 최OO 유세장"이라고 어린이집 교사에게 카톡을 남기기도 했다. 이 역시, 업무시간 내인 오후 5시 46분에 남긴 메시지였다.

시 측은 "몰랐다"는 입장이다. 춘천시는 서면답변을 통해 "해당 사항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지 못하였으며, 앞으로 관련 어린이집에 보육 교직원 전임규정 및 복무규정을 준수할 수 있도록 지도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각종 문제 제기에 대해 홍 원장의 입장을 확인하려고 연락을 취했고, 반론을 받았다. 그러나 홍 원장은 "시간이 흐른 뒤 진실을 공개적으로 밝히겠다"며 자신의 입장을 기사화하고 싶지 않다는 의견을 밝혀 왔다.
 
"국공립 어린이집 위탁 문제는 잠재된 시한폭탄"

"국공립 어린이집을 장기 위탁받으면 어린이집이 '내 거'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마음대로 원을 주무르는 거죠. 춘천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전국 각지에서 기상천외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김호연 민주노총 보육노조 비리고발센터장의 말이다. 그는 "CCTV로 교사들을 감시하고 품평회를 진행하고, 1년간 2억 원의 돈을 횡령하고. 종교 활동을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자 교사를 해고하는 일 등이 모두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센터장은 "국공립 어린이집 위탁 문제는 잠재된 시한폭탄과 같다"고 말한다. "지자체는 맡겨 버리고 관리 감독은 하지 않으니 언제 어디서 문제가 터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가 내놓은 답은 하나다. 시 '직영'이다. 김 센터장은 "1차적으로 위탁 과정을 투명화해야 하고 장기적인 대안으로 지자체가 직접 원장·교사를 고용하며 직접 운영하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그:#춘천, #국공립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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