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한국 시각) 제61회 그래미 시상식이 전파를 탔다. 지난해 60주년을 기념해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특별 무대를 꾸미는 등 나름의 변화를 주었지만, 결국 백인에게만 우호적인 상 몰아주기로 원성을 샀다. 결론적으로 당시 시청률은 21%나 떨어지며 위기론에 휩싸였다.
 
이번 그래미 역시 시작부터 '삐끗'했다. 흑인 래퍼 켄드릭 라마, 차일디시 감비노는 시상식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본식 공연을 거절했다. 마찬가지로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의 퍼포먼스 또한 프로듀서와의 갈등으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백인, 장르 편향적인 잣대로 대중문화 최고의 음악 시상식이란 타이틀을 잃어가던 그래미. 900여 명의 선거인단을 추가하고 여성 뮤지션 앨리샤 키스를 메인 MC로 내세우는 등 그간의 편향성을 걷어내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보였다. 그 이모저모를 살펴보자.
  
#1. 여성 
 

이번 시상식에서 가장 돋보인 건 단연, 여성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래미 최초 여성, 그중에서도 흑인 아티스트인 앨리샤 키스가 전체 시상식을 이끈 건 이례적인 장면이었다. 무엇보다 앨리샤 키스는 지난 < HERE > 음반을 기점으로 화장을 하지 않고, 곱슬인 자신의 머리를 애써 감추지 않는 등 어느 정도 진보의 노선을 밟아온 뮤지션이었기에 상징하는 바가 더 크다.
 
또한 오프닝부터 미셸 오바마, 레이디 가가, 제니퍼 로페즈, 배우 제다 핀켓이 함께 나와 '누가 세상을 이끄는가' 반문한 장면 역시 그래미 변화의 변곡점을 찍는다. 이외에도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여성 음악가의 약진을 고려하더라도, 세인트 빈센트, 두아리파, 자넬 모네,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 H.E.R, 카디 비 등 상대적 비중이 높았던 여성 음악가의 무대는 그래미가 여론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증거다.

#2. 유색인종
 
 가수 차일디시 감비노가 지난해 10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진행된 '아이하트 라디오 뮤직 페스티벌'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는 모습.

가수 차일디시 감비노가 지난해 10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진행된 '아이하트 라디오 뮤직 페스티벌'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는 모습. ⓒ AP/연합뉴스

 
미국 사회를 강력하게 고발하는 뮤직비디오로 큰 관심을 산 차일디시 감비노의 'This is America'가 본상에서, 그것도 두 개 부문의 트로피를 가져갈 것이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특히 시상식에 참여하지 않으면 상을 주지 않는 그래미 특성을 보더라도 이번 수상은 완전한 의외이자 뜻밖의 결과물이다.
 
다만 꺼림칙한 지점은 있다. 범 성애적인 사랑의 메시지를 앨범에 담은 자넬 모네,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영화 <블랙팬서>의 OST로 그간의 설욕을 달랠 수 있을지 주목받았던 켄드릭 라마의 수상 불발이 그것이다. 물론 차일디시 감비노 음악이 가진 충격파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명문대 출신에 <애틀랜타>란 자전적 코미디 드라마로 미국 신에서 일정 부분 입지를 누리고 있지 않은가.
 
안정적인 노선을 택할 수 있는 차일디시 감비노에게 본상 두 개를 몰아주고, 마지막 올해의 앨범은 유력 후보자로 거론되던 백인 입맛의 컨트리 뮤지션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에게 돌아갔다. 이로써 그래미는 나름의 경향 탈피와 또 나름의 경향 유지를 동시에 취하려고 한 듯 하다.

#3. 상징성

그럼에도 일보 전진은 확실하다. 그간 완강히 닫혀 있던 흑인 뮤지션에 대한 열린 시선을 보여줬고, 군데군데 변화를 향한 움직임을 나타냈다. 제61회 그래미가 담보한 건 앞으로 나아갈 평등, 그리고 음악으로 하나 될 다인종, 다국가의 합일이다.
 
유명세와 인지도를 겸비한 채 당당히 시상자로 참여한 방탄소년단의 등장부터 여성, 유색인종 포용 등 그간 가해지던 비판의 싹을 조금은 잘라낸 제61회 그래미. 그 혁신의 바람이 이미 시작됐다.
그래미 방탄소년단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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