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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얼마 전 일인데, 벌써 잊혀가는 사건 하나를 언급해야겠다. 국민신문고에 공익신고했던 사립학교 직원이 개인정보 유출로 협박을 받다가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한 사건이다. [내부 제보자 신원 보호도 못 하는 국민신문고(전남일보))]

공익신고를 포함한 일반 민원정보가 이해당사자에게 유출되면 늘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상급자의 부정비리를 하급자가 국민신문고에 제보했는데, 제보한 사람의 개인정보를 상급자에게 알린다면, 그 하급자가 어떤 대접을 받을지는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따돌림, 협박, 인사 불이익을 비롯한 각종 유무형의 폭력이 가해진다. 그런 식으로 민원인이 죽음에 이른 사건이 수많은 사건에 묻혀 잊혀가고 있다. 공익제보자 보호제도가 있고,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이 있고, 개인정보보호법도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법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민원인 정보유출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정보유출은 일정한 패턴으로 진행된다. 그 패턴은 바로 '차도살인'이다. 
  
차도살인(借刀殺人) -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이다(삼십육계 중 제3계)

'차도살인'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살펴보기 위해  지난 기사('비공개' 민원 넣어도 모두 다 아는 이상한 마을)의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

사례1. 집에 환자가 있으니 소독을 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소독기사는 바쁘다고 가버렸다. 반면에 이장 집은 아무 요청도 없었지만 마당까지 들어가 소독을 해주었다. → 보건의료원에 민원 제기 → 담당자는 이장에게 알림 → 이장은 민원인(나)에게 전화해 그런 민원을 하지 말라고 했다
 
보건의료원 방역 안내 보건의료원에서는 5월부터 10월까지 방역을 실시한다.
▲ 보건의료원 방역 안내 보건의료원에서는 5월부터 10월까지 방역을 실시한다.
ⓒ 임실군 보건의료원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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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2. 공동저온저장고 사용에 문제가 있어서, 임실읍사무소에 전기요금 포함 각종지원금에 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 담당자는 바로 이장에게 알렸다.

사례3. 이 참에 과거 적십자회비 및 불우이웃돕기성금강요에 대해 인터넷신문고에 비공개(비공유)로 민원을 제기했다. → 이 역시 담당자는 바로 이장에게 알렸다.

매뉴얼처럼 복되는 민원정보유출의 패턴

사례 1, 2, 3의 민원은 종류도 달랐고 담당자도 달랐지만, 민원을 처리하는 방식은 한결같았다. 모두 민원인 정보를 이해당사자(이장)에게  알렸다. 그렇게 해서 민원을 무마하려 했는데 이 패턴이 바로 차도살인이다. 빌린 칼(이해당사자)을 휘둘러 적(민원인)을 죽이는 방식. 그런데 이 방식이 마치 민원을 처리하는 공식 매뉴얼이라도 되는 것처럼 반복되었다. 개인정보 유출로 자살한 제보자의 경우도 마찬가지.

민원은 처리하지 않고, 민원인을 처리하다

차도살인은, 원문 일부를 인용해 설명하자면, 친구(이장)를 끌어들여 적(민원인)을 죽이되(민원을 무마하되)(=引友殺敵), 자신(담당 공무원)은 힘을 낭비하지 않는(=不自出力) 게 핵심이다.

공무원이 면전에서 왜 이런 귀찮은 민원을 하느냐고 화내고 거절할 수는 없기 때문에 암암리에 이해 당사자인 민간인에게 민원정보를 유출해 민원인을 처리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해 당사자들이 민원인에게 고맙다고 할 리는 없을 테니 민원인은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입게 된다. 민원인은 문제가 해결되겠지라고 순진하게 믿고 있다가 엉뚱한 곳에서 뒤통수를 맞는다. 내가 제기한 민원도 담당 공무원들은 차도살인의 방식으로 '민원인'만 처리했을 뿐 민원은 처리하지 않았다.

이전 기사에서 소개한 대로 이 일로 나는 동네의 욕받이가 되었고, 그러다 보니 대인기피증도 생겨 동네 사람을 피해 다니기도 했다. 이후 집 앞에 죽은 뱀이 던져져 있어서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무원들이 왜 민원을 처리하지 않고 민원인만 처리하려 하는 걸까?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여기고 통제만 하려던 군부독재시절의 유전자가 뼛속 깊이 남아 있는 것인지, 민원 대상자와 한통속이어서 그런 것인지, 민원인의 기를 꺾어놔야 몸이 편안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민원인의 처지에서 그 속뜻을 헤아리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정기적으로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교육을 받는 공무원들은 그 행위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개인정보 관련 교육을 받는다. 이런 교육 외에도 컴퓨터 시스템에도 관련 내용이 뜬다고 한다.
 공무원들은 개인정보 관련 교육을 받는다. 이런 교육 외에도 컴퓨터 시스템에도 관련 내용이 뜬다고 한다.
ⓒ 임실군청 제공자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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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3가지 예를 전체의 일인 양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몇 가지 사례를 더 소개하겠다.

사례 4. 다시 소독 관련 민원

이전에 내 소독민원 정보를 이장에게 알린 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담당자는 사과를 했고, 그 후부터 우리 동네 소독은 잘 되었다. 그러다 시간이 좀 흘렀고, 얼마 전부터 뒷집 할머니가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너희 집은 소독을 잘 해주는데, 왜 우리 집은 안 해준다냐?"라고.

나는 할머니 대신 담당자에게 전화해 똑같이 소독해 달라고 했다. 그 사이 담당자는 바뀌었고, 담당자와 잠시 언쟁이 오갔다. 언쟁 내용은 별도의 기사에서 다루겠다. 결과만 말하면 이번에도 담당자는 이장에게 알렸다. 이전 담당자가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담당자가 바뀌자 '차도살인'은 여전했다. '차도살인'이 매뉴얼이 아니라면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사례 5. 동네 사람들 간 싸움 붙이는 공무원

다른 마을에 사는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보조금으로 집집마다 설치해야 할 장비를 이장과 사이가 나쁜 자기 집에만 일부러 누락했다고 한다. 그 일로 민원을 하겠다고 해서 나는 조언을 했다. 민원하기 전에 담당 공무원에게 민원인의 정보를 이장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고, 민원 내용은 반드시 녹취하라고.

그는 내 말대로 했다. 어떻게 되었을까? 짐작했겠지만 이번에도 이장이 민원인(지인)을 찾아와 왜 그런 민원을 했느냐며 고발하네(시골에서 비교적 무서운 말이다), 어쩌네 하면서 민원인에게 화를 냈다. 그리고 동네는 이장 편과 민원인 편으로 나뉘어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다.

만연한 민원정보 유출

이렇게 내 민원 4가지, 내가 관여한 민원 1가지, 도합 5가지가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5라는 숫자 역시 통계학적으로 보면 무의미할 정도로 적은 숫자겠지만, 내 처지에서 보면 민원 정보가 100퍼센트 관계자에게 유출된 셈이다.

갑자기 떠오른 게 하나 더 있다. 얼마 전 장기요양보험 부정수급에 대해 쓴 기사에서 소개한 것처럼 국민건강보험공단 임실지사에서도 직원이 고객과 관련된 내용을 관련업체에 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지자체, 보건의료원, 건강보험공단 가리지 않고, 공공기관에서는 민원정보를 이해 당사자에게 친절하게 갖다 바친다.

'차도살인'은 우리가 익히 알던 '이이제이(以夷制夷)'란 말과도 얼핏 비슷한 면이 있다. 공무원들은 민원내용을 이장(및 이해당사자)에게 알리고 뒤로 빠진다. 그러면 이장이 민원을 한 사람을 제압하거나, 제압하지 못해도 이장파와 민원파의 동네싸움으로 변질되어 공무원은 구경만 하면 된다. 민원은 흐지부지되고 동네엔 갈등만 남는다.
   
다시 질문, 왜 민원을 해결해주지 않는 걸까

민원을 제기하면 그냥 처리해주면 된다. 소독을 공정하게 해달라고 하면 공정하게 해주면 된다. 정보공개를 요청하면 규정에 맞게 정보를 제공하면 된다. 줘야 할 걸 주지 않았으면 나중에라도 주면 된다. 그런데 왜 안 하는 걸까? 앞서 말한 것처럼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그러나 의심스러운 부분은 있다.

공무원과 이장은 농수로공사 등 각종 사업을 공동으로 수행한다. 그 과정에서 부실공사나 새나가는 돈들이 생기고, 새는 돈을 줍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흠을 감싸줘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건 아닐까? 물론 추정일 뿐이다. 많은 사람이 수군거리며 의문을 제기하는. (그 추정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것을 기사를 통해 알려나갈 계획이다)

정권이 바뀌었다, 공무원도 바꿔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공무원과 관료들은 바뀌지 않았다.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을 탄핵했지만 현장에서 국민은 여전히 '개돼지' 취급을 받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여전히 공무원들은 개(이장)를 풀어 돼지(국민)를 사육하려 한다.

칼(이장)을 빌려 적(민원인)의 뒤통수를 친다. 피해자들은 많지만 가해자는 숨어서 보이지 않는다. 그 와중에 어떤 민원인은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어떤 민원인은 회사에서 해고되었다. 그럼 민원인 정보를 유출한 공무원은 어떤 대가를 치렀을까?

(다음 기사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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