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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 <버블로 고>에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1990년으로 간 주인공이 시간 약속을 정확하게 하지 않고 외출했다가 상대방을 만나지 못할 뻔한 장면이 나온다. 상대방은 마구 열을 내면서, 약속을 잡을 때는 정확히 어디서 언제 만날 건지 합의하고 집에서 나오는 것이 기본이라고 훈계한다. 주인공은 2007년에서 1990년으로 겨우 17년 과거로 여행했다. 하지만 그때는 무선전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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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서 시간이란 무엇인가

조금 더 과거로 가보자. 철도가 도시들을 연결하고 나서야, 사람들은 통일된 표준 시간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전에는 각각의 도시와 마을에 자기만의 시간이 있었다. 태양이 가장 높은 곳에 떠오를 때가 정오다. 이를 기준으로 한 그 마을만의 시간은 광장 시계탑에 표시 되었다.

그런데 그 이전에는 어땠을까? 도시마다 시계탑을 갖추고 있던 유럽 도시와는 달리, 동양 문화권에서는 시간에 대한 관념이 더 느슨했다. 조선시대에는 12지로 나눈 시간을 썼다. 밤 시간은 '경'이라는 단위로 따로 다루었는데, 12지 시간보다도 더 부정확했다. 어두운 시간을 대략 다섯 조각으로 나누어 1경부터 5경까지 세었다.

세세한 시간 구분은 없었다. '1각이 여삼추'라는 말에도 나오는 '각'이라는 시간 단위가 15분 정도에 해당하지만, 이것은 어림짐작하는 시간 단위로 쓰였을 뿐이다. 조선시대에 두 사람이, '내일 진초시 3각에 만나세'라고 하는 일은 없었다고 봐야 한다. 조선시대 관료는 묘시에 출근하여 유시에 퇴근했지만, 계절에 따라 근무 시간이 최대 네 시간이나 차이가 날 수 있었다.

모든 일이 느리게 진행되는 전근대 사회에서 정확한 시간의 측정은 별 필요가 없었다. 개화기에 들어 기차가 등장하고 나서야 조선에도 드디어 정확한 시간이라는 개념이 필요해졌다. 정확해진 시간은 식민지 수탈에 활용되었다. 테일러와 포드가 나타나서, 노동자가 서랍을 여는 데 0.7초, 신호를 확인하는 데 2.2초 하는 식으로 작업시간을 나누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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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연대기> 표지
 <시간 연대기> 표지
ⓒ 에이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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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연대기>의 저자 애덤 프랭크는 질문한다. 1시 17분이라는 개념이 과연 암흑시대 중세 유럽이나 송나라 때 중국에 있었을까?
구석기시대 조상들에게 우주는 전체였고, 시간은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45쪽)

시간이란 우주 질서의 한 부분이었고, 구석기인에게 시간이란 순응해야 하는 자연법칙이었다. 중력에 거스를 수 없듯이,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맞춘 생활 리듬은 그들에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이에 비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시간을 '관리'해야 한다. 아이들은 방학이 되면 하루 일과표를 만든다. 시급으로 환산한 시간의 가치를 계산하고, '시간 예산(time budgeting)'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

동서양의 시간관념은 왜 달라졌을까?

서양에서 일반인들에게 회중시계가 보급되는 시점까지도 중국 황제는 개인 시계를 가지지 않았다. 오랜 기간 전 세계 과학을 선도하던 중국은 왜 시계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까.

애덤 프랭크에 따르면, 현대적 시간 계측의 원형은 다름 아닌 수도원에서 시작된다. 하루에 여러 차례 기도를 해야 했던 수도승들이 해가 떠 있는 낮이라는 시간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조과(matins)로 시작하여 만과(vespers)를 지나 종과(compline)으로 끝나는 7개의 시과가 그것이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은 무려 6개로 나뉘지만, 해가 진 이후에 포함되는 시과는 하나뿐이다.

물론 하루가 10진법이 아닌 12진법에 의한 시간으로 나누어져 있는 이유는 바빌론의 유물이다. 그러나 과학자 또는 점성술사가 아닌 일반인에게 시간이 침투한 것은 훨씬 후의 일이다.
유럽에서 시계가 발명되기도 전에 하루를 정확하게 나누려고 했으며, 게다가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식 시계까지 만들려고 했다는 사실은 중요하긴 하지만, 실제로 그런 시계를 사용한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123쪽)

찬찬히 살펴보자. 선사 시대, 인간은 자연의 일부였고,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태양이 지배하는 시간에 맞추어 살았다. 그러나 농경을 시작하면서 인간은 적어도 절기에 맞추어 특정한 행동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이어 종교적인 이유로 마야인이나 로마인은 달력을 만들기 시작했다. 중세 수도원에서는 기도 시간을 맞추기 위해 하루를 더 잘게 나누었다.

인간은 자신의 필요에 맞추어 시간이라는 개념을 변화시켜 왔으며, 그 변화는 다시 인간의 과학과 문명, 그리고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500쪽이 넘는 <시간 연대기>의 결론은 사실 그것뿐이다.
시간에 대한 경험과 개념은 언제나 인간이 실제적인 물질과 접촉할 때 변화한다. 변화는 우리가 나무, 금속, 섬유, 유리 같은 물질을 가공하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하면서 시작되고, 결국 이러한 물질이 새로운 형식으로 역사에 개입하면 우리는 시간을 거쳐, 그리고 시간 안에서 문화를 새로운 방법으로 조직하게 된다. (142~143쪽)

산업혁명에 의해 공업 생산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받은 인류는 농업 시계에 맞추어 사는 것이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다는 사실에 직면했다. 그래서 테일러와 포드는 노동자의 일분일초를 효과적으로 쓰려고 했다. 그렇게 초 단위까지 잘게 쪼개졌지만, 아직 사람들 사이에 통일된 시간 개념이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표준 시간은 교통과 통신, 즉 시공간을 하나로 묶을 필요에 의해 대두되었다. 기차가 스케줄에 맞추어 달리고 승객들이 언제 역에서 기차를 기다려야 하는지 알아야 했기 때문에 표준시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방송 역시 표준시 개념 정립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라디오 방송이 동시에 전국에 전해지면서, 공간적으로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최초로 '지금'이라는 개념을 인지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이 되어, 이제는 테일러나 포드와 같은 경영자가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시간을 관리해야 하는 생산성 강박증의 시대가 도래했다.
약속시간을 색색으로 표시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각 약속시간마다 상대방의 연락처와 해야 할 일들을 연결시켰다. 인간의 생활은 정보관리 활동이 되어버렸다. (324쪽)

시간 개념이 인간 생활에 미친 영향

인간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시간을 정의하고 관리했지만, 그렇게 변화한 시간의 정의 역시 인간의 생활에 영향을 미쳤다. 휴대전화의 등장은 별다른 사전 조정 없이 사람들이 서로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동하는 통신 수단이 발명되기 전에는, 만날 시간과 장소를 사전에 확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표준 시간이라는 개념의 발명 이전에는 먼 지역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이런 약속조차 가능하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뉴턴은 절대적 시간을 우주로부터 분리시키고,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현상과 지구가 태양 주위를 회전하는 현상을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했다. 시간과 공간을 물질로부터 분리시킨 뉴턴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능케 한 인물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시공간이 서로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개념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빛의 속도에 근접하면, 정지계와 비교하여 시간은 느려지고, 길이는 짧아지며, 질량은 늘어난다. 하지만 이게 인간의 생활에 무슨 변화를 주었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변화가 있었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GPS는 특수상대성 이론 없이 가능하지 않다.
 
 GPS가 작동하려면 네 개의 위성이 필요하다
 GPS가 작동하려면 네 개의 위성이 필요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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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S 장치는 네 개의 위성과 교신하여 위치를 확정한다. 세 개는 공간의 한 점을 특정하기 위해 사용되고, 나머지 하나는 위성의 시계와 지상의 시계 사이의 오차를 보정한다. GPS용 위성은 약 3.8km/s의 속도로 돌고 있는데, 이 정도 속도에서도 위성의 시계는 지상의 시계에 비해 매일 0.000007초 만큼 늦어진다.

한편, 지구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위성은 지구의 중력에 의해 휘어진 시공간을 움직인다. 그래서 위성에 실린 시계는 지상의 시계보다 하루에 약 0.000045초 빠르게 움직인다. 이 두 가지 오차를 수정하지 않는다면, GPS가 확정하는 지상의 위치는 너무나도 형편없는 근사치가 되어 버린다.
GPS 이야기는 새로 만들어진 물질이 역사를 바꾸어놓은 좋은 예이다. GPS에는 20세기의 위대한 과학혁명인 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이 모두 들어 있다.(349쪽)

시간의 문화사

시간은 결국 문화다. 법이나 종교와 같은 다른 문화 현상과 마찬가지로, 시간 개념도 인간에게 영향을 미쳐왔다. 부모가 아이에게 시계 보는 법을 가르칠 때, 부모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하나의 문화를 가르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객관적 시간이라는 개념이야말로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집단 신화'의 아주 훌륭한 사례다.

나는 시간의 정체에 대해 알고 싶다. 그래서 시간의 화살에 관한 강의를 듣고 우리 우주의 초기 조건을 설명하는 책들을 읽었다. 원제가 '시간에 관하여(About Time)'인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아직 해갈되지 못한 나의 시간에 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이 책도 우주물리학의 시각에서 시간의 문제를 다루는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양자역학적 다중우주론이 와닿지 않는 이유는, 내가 지금 존재하는 이 우주 외의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 한들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시간이 빅뱅과 함께 시작했든 아니든, 시간의 화살이 다중 우주 관점에서 존재하든 아니든, 나와 무슨 상관인가? 나는 오히려 '우리에게 시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집중했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아니면, 이 책의 저자가 말하듯, 시간과 인류는 계속하여 서로 영향을 미치는 관계를 이어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언젠가 시간의 진실한 정체가 밝혀졌을 때, 그 발견이 또다시 우리 인류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 호기심은 여전히 쓸모가 있겠다.

참고문헌
애덤 프랭크, <시간 연대기>
정연식, "조선시대의 시간개념"
Jing Daily, "The Chinese Have Always Had a Weekness for Wat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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