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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5월'과 '광주'는 그 언어 자체만으로 많은 사람들, 특히 청춘들에게 비통함과 슬픔, 충격, 참담함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것은 곧 '유신잔당'인 전두환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과 항쟁, 혁명 담론의 원천이 됐다. 누군가의 평가처럼,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한국사회를 민주화로 나아가게 한 1987년 6월항쟁은, 실상 1980년 '5월 광주'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5월 광주', 구체적으로는 '광주학살'의 원흉과 종범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가해자들은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있고, 이따금씩 자신들의 가해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쏟아낸다. 한편으로는 현재 제1야당이자 보수 정당인 자유한국당의 DNA로 남아있다. 지난 8일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한국당 의원의 '5.18 망언'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 곱씹어 봐야 할 이유
 
기자간담회 하는 나경원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0일 국회에서 방미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기자간담회 하는 나경원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0일 국회에서 방미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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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가 더욱 심각하게 봐야 할 대목은, 위 세 의원의 망언을 수습하기 위해 나선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의 발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난 9일 나경원 원내대표는 "일부 의원들의 발언은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며 자유한국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높이 평가한다"라면서도 "다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존재할 수 있으나 정치권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라 밝혔다.

여기서 우리는 새삼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 그리고 "정치권의 사회적 갈등 조장"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게 된다.

우선 자유한국당 김진태, 김순례, 이종명 의원의 망언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나아가 "다양한 해석"의 범주에 해당될 수도 없다는 점은 이미 정치권과 여러 매체에서 지적한 만큼 더 이상 왈가왈부할 가치조차 없다. 또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언사를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으로 호도하는 것은, 역사학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그런데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국민이 분열되지 않도록 역사를 하나로 가르쳐야 한다"라면서 숱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극력 밀어붙였던 한국당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운운하는 것은 실소를 넘어선 난센스다.

여당 때는 '국론분열 걱정'... 야당 때는 '다양성 존중'?

돌이켜보면, 박근혜 정권 당시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툭하면 '국론분열' 프레임을 뒤집어씌우며 '종북=비국민'으로 몰아세우곤 했다.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댓글공작) 논란 때도 그랬고, 2014년 4.16 세월호 참사 직후를 비롯해 정권의 위기 상황 때마다 늘 그랬다. 그러더니 이제와서는 태도를 바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다양성'을 운운하며 한국당에 대한 비판과 매도를 회피하려는 속셈이다.

집권 여당 시절에는 '국론 통일'이라는 파시즘적 논리로 통치하고, 야당 시절에는 민주주의의 원리와 절차를 이용해 자신들의 책임을 벗겨 내거나 재집권을 기도하는 이중 잣대다. 이는 한국당, 더 나아가 한국 보수의 오랜 습성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당시, '대통령 탄핵'이라는 민주주의의 절차와 원리를 활용해 과거 군사독재의 부역자들이 살아남고자 시도했다(한홍구, <대한민국사>3, 139~140쪽 참조). 2004년 3월 12일 당시 김기춘 한나라당 의원(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의결서를 헌법재판소에 접수하는 장면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김기춘 당시 국회 법사위원장(두 번째)이 탄핵 의결서 정본을 헌법재판소에 접수시키고 있다. 그 양 옆으로 한나라당과 민주당 법사위 간사인 김용균 의원과 함승희 의원이 보인다.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김기춘 당시 국회 법사위원장(두 번째)이 탄핵 의결서 정본을 헌법재판소에 접수시키고 있다. 그 양 옆으로 한나라당과 민주당 법사위 간사인 김용균 의원과 함승희 의원이 보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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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의 다양성 있는데 갈등 조장은 삼가"... 이게 무슨 말?

9일 나경원 원내대표 발언의 문제점은, 이중 잣대에만 있지 않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나 원내대표의 발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 또는 이해 자체가 결핍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나 원내대표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의 다양성"을 운운하는 동시에 "정치권이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주장한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주지하다시피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는, 사회적 갈등의 반영인 동시에 필연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사회적 갈등을 전제로 하고, 또 사회적 갈등을 당연한 결과 또는 비용으로 감수하는 원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권이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지 말아야 한다'는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민주주의 정치를 포기하자는 의미와 다름 없다. 이는 더 나아가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 시절의 '국론 통일' 프레임과 통한다. 민주주의 정치의 죽음 혹은 포기는 자연히 국론통일과 같은 파쇼적 논리로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는 주장과 "정치권이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는 나 원내대표의 주장은 그 자체로 상호 모순이다. 전자는 민주주의 원리를 강조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민주주의 정치를 포기하자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더 나아가 한국당 정치인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수준을 드러내는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공당의 원내대표는 그 당의 국회의원 전원을 대표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자신들의 무기로 활용할 줄만 알았지, 정작 민주주의의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 및 그 실천 의지는 부재한 것이 아닐까.

5.18 진상규명위에 소극적인 한국당이...
 
 왼쪽부터 김진태, 김순례, 이종명 자유한국당 의원.
 왼쪽부터 김진태, 김순례, 이종명 자유한국당 의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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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좀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자유한국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높이 평가한다"라는 나 원내대표의 발언이 지닌 문제점이다.

이에 대해선 현재까지 정치권과 언론에서 별다른 지적이 없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과연 한국당에게 광주항쟁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높이 평가"할만한 자격이 있는 걸까. 

지금도 5.18진상규명위원회 참여에 소극적인, 나아가 5.18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 시작을 되레 방해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한국당이 "5.18의 역사적 가치를 평가"한다는 자체가 몹시 불쾌한 일이지 않은가?

결국 '평가'란, 미시적 권력 관계의 관점에서 볼 때 상대적으로 좀 더 우월한 위치에 있는 자가 그렇지 못한 자에게 관철하는 행위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지금 나 원내대표가 했어야 할 적절한 발언은 '자유한국당은 1980년 광주학살에 대한 책임을 두고두고 통감하고 있으며 이제부터라도 광주학살 진상규명에 적극 나서겠다' 정도가 아니었을까.

민주주의는 '책임에 대한 회피' 그리고 그 저변에 깔려 있는 '비겁함'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

만일 진정으로 자유한국당이 광주항쟁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한다면, 또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이라면, 이제라도 광주학살의 가해자로서 지니고 있는 자신들의 DNA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에 대한 청산 작업과 함께 5.18진상규명위원회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만일 그 DNA를 버리지 못하겠다면, 앞으로도 자유한국당은 김진태, 김순례, 이종명 의원 식의 망언을 계속 쏟아내면 된다. 그리고 역사와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한 시대의 역사 속으로 퇴장하면 될 뿐이다. 그게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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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