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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기록에 따르면, 일제 시대 전염병으로 인한 조선인의 사망률은 같은 땅, 즉 조선에 살던 일본인들의 1/10도 되지 않는다. 당시 어떤 일본인 우생학자는 조선인이 일본인에 비해 뇌가 작은 대신, 위장이 크고 튼튼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말, 조선인들이 머리는 나빠도 워낙 건강 체질이라서 전염병에 강했던 걸까?

실상은 단순하다. 조선총독부는 전염병으로 사망한 조선인에 대한 통계를 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전염병이 걸린 일본인들은 대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죽었지만, 조선인들은 치료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집에서 거리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그러니 전염병 사망자 통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세종 대왕이 편찬한 수많은 책들 중에 <향약집성방>이 있다. 향약, 즉 중국의 약재가 아닌 우리 땅의 약재를 다룬 책이다. 그러나 약재는 땅을 가려도 병은 땅을 가리지 않는 법. 중국 의학 서적을 정리한 이 책은 중국의 질병 분류 체계를 따르고 있다. 이 책에는 총 57개의 질병이 나오는데, 그중 10개는 그동안 조선 의학 서적에서는 질병으로 치지 않던 것들이었다. 콧병, 황달이 그렇다. 다시 말하면, 이 책이 등장하면서 조선 땅에는 갑자기 콧병과 황달 환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김승섭 <우리 몸이 세계라면> 표지
 김승섭 <우리 몸이 세계라면> 표지
ⓒ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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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섭의 <우리 몸이 세계라면>은 다양한 통계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건과 관련한 여러 가지 문제를 사회와 정책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조선총독부가 조선인의 전염병 사망 통계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은, 그들에게 보건 서비스를 제공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향약집성방>의 발간은 그동안 보건 대책에 포함되지 않았던 10개의 병증에 대해 사람들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건강과 평등

타이타닉 호가 침몰했을 때, 배에 탔던 사람들이 모두 죽은 건 아니었다. 영화에도, 구명보트에 타려는 사람들의 사투가 그려지고 있지 않은가. 사망자 통계는 무서운 사실을 드러낸다.
1등실 승객과 비교할 때, 3등실 승객의 사망률은 남성의 경우 1.24배, 여성과 어린이의 경우 20.4배 높았습니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차이입니다. (153쪽)

저자는 말한다. 1등실 요금이 더 비싼 것은 더 좋은 침실과 음식, 여가 활동에 대한 차이를 반영한 것이지, 목숨 값의 차이를 반영한 것은 아니라고. 그런데 나는 자꾸 다른 생각이 든다. 구명보트를 타고 살아남은 1등실 승객들은, 1등실 요금의 프리미엄에 위험에 대한 더 나은 보장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사람이란 자기 자신이 선 자리에서만 세상을 쳐다보는 존재 아니던가.

흡연이 건강과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제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 진실이다. 폐암과 죽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왜 흡연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일까.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스트레스, 감정 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흡연으로 발산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그 처지에 있지 않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힘겨운 선택에 의지박약이라는 딱지를 마음대로 붙이는 것은 상상력의 빈곤과 우둔함을 증명할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최근 수십 년간 급격히 상승했다. 그런데 평균수명의 변화를 소득 분위별로 살펴보면, 불편한 진실이 고개를 내민다. 2004년부터 2015년까지 12년간의 평균수명 변화를 살펴본 연구결과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는 평균수명이 3.91년 증가했지만, 상위 20%는 4.45년이 증가했다. 2004년 기준으로는 소득 상위 20%가 하위 20%에 비해 평균 6.05년 더 사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2015년 그 격차가 6.59년으로 벌어졌다.

정원사 이야기

차별은 차별을 낳는다.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기울어지기 마련이다. 2000년, 하버드대학 카마라 존스 교수는 <인종차별의 수준: 이론적 모형과 정원사 이야기>라는 논문을 출판했다. 흑인이자 여성인 존스 교수는 절묘한 우화로 차별 문제를 지적한다.

화분 두 개가 있다. 하나에는 빨간 꽃, 다른 하나에는 분홍 꽃이 피는 씨앗을 심었다. 얼마 뒤, 빨간 꽃은 아주 싱싱하고 예쁘게 핀다. 그런데 분홍 꽃은 볼품없고 시들시들하게 피어버린다. 사람들은 빨간 꽃이 예쁘다고 말하면서, 분홍 꽃은 왜 그 모양이냐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빨간 꽃을 선호하게 되고, 정원에는 빨간 꽃이 가득하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놓친 것이 있다. 애초에 화분에 담겼던 흙이 달랐다. 빨간 꽃 화분에는 비료가 섞인 좋은 흙이 들어갔던 것이다. 이것이 차별의 첫 번째 층위, 제도적 차별이다.
 
 "내게 오지 마. 분홍 꽃인 나는 아름답지 않아. 내 자손이 아닌 빨간 꽃으로 이 세상을 채워야 해."
 "내게 오지 마. 분홍 꽃인 나는 아름답지 않아. 내 자손이 아닌 빨간 꽃으로 이 세상을 채워야 해."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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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원에 꽃이 많아지면서 정원사가 필요해진다. 싱싱한 빨간 꽃이 기억에 남아 있는 정원사는 분홍 꽃보다 빨간 꽃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빨간 꽃에 더 정성을 들인다. 빨간 꽃이 가득한 정원에 분홍 꽃 씨앗이 날아와 꽃이라도 피우려고 하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뽑아버리기까지 한다.

이것이 개인적 차별이다. 사람들의 선호라는 모양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애초에 제도에 의해 잉태된 것이 발전한 것이다. 빨간 꽃을 늘 보던 정원사에게는, 분홍 꽃에게도 기회를 주면 어떨까를 생각할 이유가 별로 없다.

차별의 가장 아래 층위에는 내재적 차별이 존재한다. 정원에 꿀벌이 날아든다. 꿀벌이 분홍 꽃에게 다가가서 꽃가루를 수정하려 하는데, 분홍 꽃이 말한다.
"내게 오지 마. 분홍 꽃인 나는 아름답지 않아. 내 자손이 아닌 빨간 꽃으로 이 세상을 채워야 해." (174쪽)

사람은 자신이 사는 세계의 질서를 내면화한다. 그래서 이제 분홍 꽃은 스스로를 비하한다. 미국에 사는 흑인이나 우리나라에 사는 '혼혈인'들은 이런 생각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재화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제도적, 개인적, 내재적 차원의 차별은 서로를 강화하는 악순환의 체계를 만든다. 인종이란 개념은 우생학과 함께 무덤으로 들어간 지 오래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흑인, 황인 따위의 단어를 쓴다. 그래서 '인종은 존재하지 않지만, 인종차별은 존재한다'라고 저자는 강변한다.

차이를 포용하되 차별에는 맞서야 한다

유방암은 부유한 여성이 더 많이 걸린다. 이건 세계 어느 나라건, 통계가 존재하는 어떤 시기이건 상관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왜 그럴까? 아이를 늦게 낳거나, 호르몬 보충제를 많이 사용하는 것과 같이, 부유한 사람의 생활습관 중에 유방암 발생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부유한 여성의 유방암 발병률이 높은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이 유방암 조기 검진을 통해 암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방암 발병률과는 달리, 유방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저소득층이 압도적으로 높다. 암 진단 시기가 늦어지기 때문에 손을 써보지도 못하고 사망하는 사례가 많아서다. 1기 유방암은 5년 생존율이 99%지만, 4기 유방암은 22%에 불과하다. 암 발생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국 그 다양한 요인을 유발하는 인자는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반문한다.
한국인 사망원인 1위인, 매년 8만 명에 가까운 목숨을 앗아가는, 아마도 당신과 나를 사망에 이르게 할 이 질병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203쪽)

평등이란 개념은 쉽게 달성하기는커녕 쉽게 머릿속에 떠올리기도 어렵다. 그래서 타이타닉 1등실 승객은 자신이 지불한 더 비싼 요금에 사실은 목숨 값이 포함되어 있다고 믿을 것이다. 그러나 사다리의 더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불평등이 유리하기만 할까? 아파르트헤이트 당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 부유층처럼, 담을 쌓고 경비병을 고용하면 삶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2014년 리처드 레이트 교수는 소득불평등과 관련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어떤 사람들은 내 직업이나 소득 때문에 나를 무시한다'라는 질문에 대해 1점에서 5점 척도로 얼마나 동의하는지를 조사한 것이다. 이것을 '지위 불안 점수'라고 부른다. 어느 사회에서나 소득이 낮을수록 더 높은 지위 불안 점수를 보였다.

그런데 소득불평등이 심한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전 소득 수준에 걸쳐 더 높은 지위 불안 점수를 기록했다. 소득불평등이 높은 사회에서 최상 소득 분위에 속하는 사람의 불안 수준이, 소득불평등이 낮은 사회에 사는 최하 소득 분위 사람과 비슷했다. 소득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는 가장 부유한 사람조차 상대방이 나를 무시할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는 말이다.

자신이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불평등을 옹호하는 것은 아둔함의 소치일 뿐이다. 인류가 진화하는 길에 놓인 가장 시급한 숙제는 아마도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는 것이 아닐까. 차이를 포용하되, 차별에는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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