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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개혁하자는 논의가 일어난 지는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그 논의의 핵심은 지금과 같은 지역구의원 중심의 소선거구제도 하에서는 국민의 의사를 공정하게 대변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비례대표제를 확충하여 정당지지도를 감안한 비례대표의원을 늘리자는 이른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선거법을 개혁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개혁하자는 것은 지금과 같은 제도 하에서 구성된 국회는 마음에 들지 않으니, 그것을 더 나은 것으로 바꿔보자는 것인데, 이런 제도 덕분에 국회의원이 되고 재미를 보는 사람들은 속으로 불만과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한편 최근의 여론조사를 보면, 현재의 선거제도가 국민의 뜻을 잘 반영하지 못하며, 따라서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의견이 66% 가량입니다. 국회에 대한 불신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국회의원 선출방식을 바꿔야 할 필요성은 충분하다고 할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가 인데, 지금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것이 그 대안으로 올라와 있습니다. 그런데 여론조사에 나타난 바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것이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라든가 '처음 들어본다'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고, 그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불가피하게 발생할지도 모르는 의원수의 증가에 대하여는 국민 10명중 8명이 분명하게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국회의원의 수를 늘리는 것이 꼭 반대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를 권고 드리고자 합니다. 국민들은 왜 국회의원이 한 사람이라도 늘어나는 것에 반대할까요? 그것은 그들이 대부분 -물론 일 잘 하고 존경할만한 의원들도 많습니다만- 할 일은 하지 않고 국민의 혈세로 지불되는 아까운 비용만 축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각 국가기관 중에 가장 불신을 받고 있는 곳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회를 지목할 것입니다. 국회가 일은 하지 않으면서 돈은 많이 쓰는 '고비용 저효율'의 대표적 기관이라고 많은 국민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할 일은 하지 않고, 어떤 경우에는 해서는 안되는 일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세계최고의 대우와 특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한국의 국회의원입니다.

국민들이 국회의원의 수를 늘리는 일에 경기(驚氣)에 가까운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맘에 안 드는 사람들이 돈과 권력을 휘두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봅시다. 국회가 아무리 맘에 들지 않는다 해도 그것을 없앨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대통령이 맘에 들지 않는다 해서 대통령직을 없앨 수 없듯이, 국회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국회로 만드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국회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의원을 뽑는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제대로 일하는 국회의원 그리고 비용을 적게 쓰면서도 효율적인 국회를 만들 수 있는 어떤 방안이 있을까요?

국회의원 수를 크게 늘린다면?

국회의원들이 엉터리로 쓰는 돈들이 최근에 많이 불거졌습니다. 입법활동을 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본업인데도 입법활동비라는 것이 따로 지급된다고 합니다. 거기에다가 용처를 알 수 없는 특수활동비라는 것이 있고, 연수니 시찰이니하는 명목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합니다. 1억 원이 넘는 세비에다가 개인비서 같은 역할을 하는 보좌진을 8명이나 쓸 수 있다고 하니 국가가 법으로 보장하는 특권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민주평화당의 정동영 의원이 최근에 국회의원의 수를 늘리는 대신 의원세비를 반으로 줄여 받을 용의가 있다는 발언을 했는데, 국회의원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자 참으로 용기 있는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국회의원의 수를 늘리는 것이 절실하다는 의사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지금 국회개혁의 주제가 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라는 문제는 '연동형'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사람들의 이해를 약간 어렵게 만드는 감이 있습니다. 연동형이라는 말은 지역이라든가 후보자 같은, 무엇과 무엇을 관련시키고 함께 묶는다는 뜻이겠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정해져야 할 내용이며, 지금은 구체적인 내용이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국회구성에 있어서 비례대표의석을 확대하자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거제도개혁의 명칭을 그냥 '비례대표제개혁'이라고 한다면 국민들이 더 쉽게 납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비례대표제는 1960년대에 독일에서 활발히 논의되었고, 지금은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의 보편적인 선거제도가 되었습니다. 종래의 일반적인 선거제도인 소선거구 다수대표제하에서는 한 사람의 당선자 이외의 사람들에게 찍은 국민의 투표는 그냥 사라져버립니다. 그것은 투표의 성과가치의 불평등과 왜곡을 초래합니다. 득표수와 의석확보수의 비례성이 침해되고, 대표자(의원)의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대표성이 의심스럽게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선거할 때 후보자의 '인격과 자질'을 보고 투표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당을 보고 투표합니다. 정당이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후보자 개인을 보고 그가 어떻게 직무를 수행할지 짐작할 수 없습니다. 정당은 거기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언동이나 그 강령을 통하여 어떻게 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의식과 사회의 구조, 국가의 기능이 변화했습니다. 옛날의 민주주의를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적 의회민주주의라고 한다면,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대중적· 다원적 정당민주주의가 되었습니다. 이 변화에 대응하는 선거제도가 바로 비례대표제입니다. 즉 정당에 투표하여 국민들의 지지를 많이 받는 정당에게 의석수를 많이 배분하는 것이 현대사회의 구조변화에 맞는 제도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생각이 타당한 것이라면, 이 제도를 도입하자는 의견에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2015년 우리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현재의 국회의원 정수 300명을 유지하는 선에서 지역구 의석을 200명, 비례대표의석을 100명으로 하자는 개혁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려면 현재의 지역구 의석 253석 중 53석을 줄여야 하는데, 개혁을 위해서 내 의석이 없어져도 할 수 없다고 동의할 의원은 없을 것입니다. 지난 연말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표들이 선거법 개정을 위해서 단식을 했는데, 이 3당은 지역구 220석, 비례대표 110석을 내용으로 하는 개혁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국회 총의석이 330석으로, 지금보다 30석의 의석이 불어나는 것이므로 국민들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습니다. 민주당은 중앙선관위안과 같이 300석 내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조정하자는 안을 내놓았습니다.

모두 과감한 개혁이 아니라 조심스럽고 점진적인 개혁안을 제시했습니다. 한편 자유한국당은 선거제도개혁에 여전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 당의 나경원 원내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의원정수의 확대 없이는 불가능한데, 그것은 국민이 반대하므로 어려운 일이라고 하기도 하고, 시급한 것은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이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선하는 개헌이라고 했습니다. 또 책임총리제 개헌을 하겠다고 약속을 하면, 일단 논의는 해 보겠다고도 했습니다.

나 원내대표는 국민들의 의사가 현재의 의석수를 유지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국민들이 '현재의 의석수도 많은데, 더 늘리자고 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느낍니다. 국민들의 속마음은 국회의원수를 더 줄여야 하며, 할 수만 있다면 국회를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좋다고 할 정도로 국회에 대한 불신과 증오심은 극에 달해 있습니다. 국회의원을 200명 또는 100명으로 줄이겠다는 의견을 일찍이 안철수· 허경영 같은 이들이 주장한 바 있습니다. 국민들의 속마음을 읽고 거기에 편승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나는 국회를 정상화시키기 위해서 의원수를 늘리는 문제, 그것도 아주 획기적으로 늘리는 문제에 대하여 국민들이 심사숙고해 보시기를 제안합니다.

망국적인 여야구도 깨뜨릴 제3지대 넓어져야

지금 우리의 국회는 무엇이 문제입니까? 우리 헌법은 국회의원은 각자가 다 독립기관으로서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46조)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데 현실은 국회의원은 모두 자기 소속 정당의 충실한 정치적 병사 또는 거수기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국회의 행태를 봅시다. 여당은 대통령과 정부의 말이면 무조건 따릅니다. 야당은 정부의 정책을 무엇이든 반대만 합니다. 국민은 없고 당리당략만 있습니다. 나라의 희망을 볼 수 없는 것은 입법부라는 국가의 최고 중차대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 국회가 이 모양 이 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국회를 개혁하지 않고는 희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여당과 야당, 이 두 개의 정당만이 지속될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는 선거제도 때문입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나라와 국익을 위해서는 일치단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직업윤리라도 갖고 있다면, 양당제도 나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국회는 집권한 정당과 오로지 그것에 반대하는 것을 명분으로 삼는 정당만이 살아나갈 수 있고, 단지 살아나간다는 것 뿐만 아니라 온갖 특권까지 누릴 수 있게 만들어진 구조입니다. 이는 혁파되어야 합니다.

나는 그 방안의 하나로서 의원정수의 획기적인 확대를 제안합니다. 지금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불과 몇 십명의 증원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현재의 지역구 의석을 그대로 인정해 주고, 그 절반에 해당하는 비례대표의석을 배정한다면 총의석은 380석이고, 만약 지역구의석과 동수의 비례대표의석을 배정한다면 총의석수는 506석이 됩니다. 의회주의의 원조격이라고 생각되는 영국하원의 의석수는 650석이며, 인구비율로 따지면, 영국의 인구가 한국보다 1500만 명이 많은 수준인데, 한국의 국회의원이 506명이 되는 경우에 비로소 1명의 의원이 대표하는 국민의 수에서 한국과 영국이 비슷해집니다.

한국 국회의원이 다른 나라보다 특권과 돈을 많이 쓰는 것은 그 수가 적기 때문입니다. 특권은 그것을 누리는 사람들의 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사람 수가 많으면 특권도 사라지고 비용도 적게 들기 마련입니다. 지금 300명의 의원 한 사람에게 8명의 보좌진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지금 여의도 국회의사당에는 사무처에 소속된 직원 빼놓고도 2400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인으로 봉사하는 의원까지 합하면 2700명입니다. 만약 이들 모두가 국회의원이고, 보좌관이 받는 정도의 대우를 해준다고 가정할 때, 그때의 국회의 모습이 지금과 비교해서 질이 떨어지고 비효율적이 될까요? 지금처럼 나라를 생각지 않고 당파적 정쟁만 일삼는 국회가 될까요? 국회의 문턱(진입장벽)을 아예 없애버리고, 돈이나 특권이 아니라 사명감과 직업윤리에 투철한 국회의원을 찾기가 오히려 쉽지 않을까요? 허울뿐인 대의제를 집어치우고, 진정한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직접민주정적 시민국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국회의원의 문제를 국회의원 스스로가 결정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정의의 원칙에 반합니다, 국회개혁은 국민, 국민이 구성한 특별기관이 처리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국회의원의 수를 늘리는 것은 오히려 필요한 일이고, 그 대신 국회의원의 특권과 대우는 과감하게 줄여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망국적인 여야구도를 깨뜨려서 그 두 세력 사이에서 관망하고 옳은 편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제3지대가 넓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국민의 뜻을 대표할 사람들의 선택지가 많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거제도개혁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잘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꾸려져서 1월말까지 개혁안을 만들고 2월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했지만, 자유한국당은 일찍부터 2월 임시국회를 보이콧하겠다면서 단식인지 늦은 식사인지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 내년 4월에 지금과 같은 선거법 하에서 총선이 이루어진다면, 그런 조건 속에서라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훌륭한 한 표를 던져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 선택의 기준은 이렇습니다.

1. 선거개혁을 반대하는 정당에게 투표하지 맙시다.
2. 선거법보다 먼저 헌법부터 고쳐야 한다는 말은 선거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3. 국회의원 수를 늘리지 않는 선에서 개혁하겠다는 말은 속으로는 하고 싶지 않다는 말입니다.

 
이병훈 전주대 명예교수(헌법학)
 이병훈 전주대 명예교수(헌법학)
ⓒ 이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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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병훈씨는 전주대 명예교수(헌법학)입니다.


태그:#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개혁,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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