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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상 입춘(4일)이 지났다. 요 매칠 매서운 한파 동장군이 꽁꽁 얼어 붙인 개울물 얼음이 봄기운에 조금씩 녹고 있다. 꽃샘추위가 남아있지만 봄이다.

음력 정월 초하루 설날이 벌써 하루 지났다. 설 차례도 지내고 처갓집도 다녀왔다. 연휴 마지막날은 시간이 비어 있었다. 모처럼 아내와 함께 송광사 불일암(佛日庵)을 찾았다.
 
불일암 암자로 가는 '무소유 길'
 불일암 암자로 가는 "무소유 길"
ⓒ 조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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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불일암 오솔길을 따라 줄을 있고 있다. 아마도 법정스님의 옛 정취를 찾기 위한 발걸음이 아닌가 싶다. 편백나무와 대나무 숲길을 따라 암자로 오르는 오솔길 '불일암 무소유 길'이란 편말이 눈에 띈다.

'무소유'란 글귀를 대새기며 길을 따라 오른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 법정 <산에는 꽃이 피내> 중에서

오솔길을 오고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대숲 사이로 스님의 주옥같은 글귀가 조각되어 세워져 있다.
 
덕조스님과 함께 절일 도와주는 사람들이 봄 맞이 텃밭 가꾸기를 하고 있다.
▲ 불일암 텃밭가꾸기 덕조스님과 함께 절일 도와주는 사람들이 봄 맞이 텃밭 가꾸기를 하고 있다.
ⓒ 조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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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에 땀이 날만큼 오르자 숲에 에워싸인 암자가 보인다. 산새소리와 함께 텃밭을 파는 농기구 소리가 듣기 좋다. 텃밭을 돌아 암자에 오르기 전 법정 스님의 상좌인 덕조 스님이 절을 도와주는 사람들과 함께 봄맞이 텃밭 파기를 하고 있다. 텃밭 파기 일이 많이 진행됐다. 겨울 내내 묵혀있던 땅속 속살이 밖으로 노출돼 있다. 거무스레한 흙에서 풋풋한 봄기운이 솟아난다. 새 생명의 싹을 틔울 텃밭이다.

일찍이 법정스님이 이곳에서 수행하면서 가꾸었던 텃밭이다. '새봄의 흙냄새를 맡으면 생명의 환희 같은 것이 가슴 가득 부풀어 오른다. 맨발로 밟는 밭 흙의 촉감, 그것은 푸근한 모성(母性)이다'라고 봄을 기술했다. 누구보다 더 자연주의자였던 스님의 숨결이 느껴진다.

멀리 창원에서 일부러 절일을 도와주러 온 양윤호 거사님의 온 몸은 땀투성이다. 지금 퇴비를 거름으로 써서 텃밭을 다져나야 토양이 숙성돼 3월 4월께 날씨가 따뜻해지면 상추며 치커리 등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다고 한다. 거사님은 3월 말 4월에 고추, 오이, 가지, 방울토마토를 직접 심어 보라고 한다. 누구를 텃밭 손님으로 모셔 와야 하나 벌써부터 고민 중이다.
  
봄을 기다리는 매화꽃 몽우리
 봄을 기다리는 매화꽃 몽우리
ⓒ 조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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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조 스님은 손으로 가리켜주면서 아직 매화꽃은 피지 않았다고 말씀해 주신다. 암자 오른쪽에 자리 잡은 매화나무에는 꽃망울이 맺혔다. 봄비 오면 곧 꽃망울을 터뜨릴 기세다. 일찍이 법정 스님은 '매화는 반개(半開)했을 때가, 벚꽃은 만개(滿開) 했을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라고 하였다. 남녘 이곳저곳에서 벌써 매화가 피웠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지만 불일암의 매화는 아직도 따스한 봄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암자 앞 태산목은 겨울을 잊는 듯 초록의 자태를 보이고 있다. 그 옆에 낙엽이 다 떨어진 앙상한 가지만을 모두 드러낸 채 조용한 침묵을 지키고 있는 후박나무가 서있다. '서너 자밖에 안 되던 묘목'을 암자 앞에 심어 놓고 성장과장을 지켜보면서 꽃피던 녀석을 보면서 기뻐했던 법정 스님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불일암 처마 밑으로 멀리 보이는 후박나무
 불일암 처마 밑으로 멀리 보이는 후박나무
ⓒ 조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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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를 몸소 실천하시던 법정스님. 이제는 법정스님과 하나가 되어버린 후박나무 앞에서 두 손 모아 합장을 하였다. 그리고 스님에게 결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두 팔 벌려 껴안아 보았다. 한 아름되는 후박나무에서 봄기운이 느껴진다. 스님의 정취가 느껴진다.

오는 3월 11일이면 법정스님이 입적한 지 9년째다. 3월의 따스한 봄날에 텃밭에는 새 생명들이 피어날 것이다.

태그:#불일암, #덕조스님, #법정스님, #무소유, #송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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