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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병법서 <36계>에서 제6계는 성동격서(聲東擊西)다.
 
"동쪽으로 소리 내고 서쪽을 쳐라. 적의 마음이 혼란스럽고 앞을 헤아리지 못하며, 곤괘(坤卦)가 밑에 있고 태괘(兌卦)가 위에 있는 형국이라면, 중심을 잡지 못하는 상황을 이용해 격파하라(聲東擊西. 敵志亂萃, 不虞, 坤下兌上之象, 利其不自主而取之)."
 
곤괘는 땅, 태괘는 물을 상징한다. 곤괘가 밑에 있고 태괘가 위에 있다는 것은, 땅 위에 홍수가 범람한 상태를 상징한다. 적이 그 정도 혼란에 빠졌을 때 성동격서 전법을 쓰라는 이야기다.

현지 시각으로 지난 1일 미국이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의 파기를 선언했다. 이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러시아가 협정 준수로 복귀하지 않으면 조약은 종결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에 러시아도 조약을 이행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6개월 뒤 조약은 폐기 수순을 밟을 것이다.

1987년 12월 8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사이에 체결된 INF 조약은 단거리(500~1000km) 및 중거리(~5000km) 지상발사 탄도미사일과 지상발사 순항미사일 그리고 그 발사 장치, 지원 구조물, 지원 장치를 철폐하기로 하는 협정이다.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 출신인 박준복의 <미사일 이야기>는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크루즈 미사일)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날아가는 궤적의 형태에 따라 탄도형과 순항형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멀리 떨어진 공처럼 비행 궤적 즉 포물선을 그리며 비행하는 것을 탄도탄이라 하고, 대기 중을 날아가는 비행기처럼 비행하는 것이 순항 미사일이다."
 
'러시아의 조약 위반' 말하지만... 트럼프의 속내

 
 INF 조약 조인식에 참석한 고르바초프와 레이건.
 INF 조약 조인식에 참석한 고르바초프와 레이건.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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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파기 선언은 언뜻 보면 러시아를 겨냥한 것처럼 보인다. 러시아의 조약 위반을 구실로 파기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러시아를 겨냥한 측면도 없지 않지만, 그보다는 중국을 겨냥한 측면이 더 크다고 볼 수도 있다.

지난 2일자 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에 '냉전시대 INF 핵 조약 죽다. 중국의 부각과 트럼프에 의해 죽임 당하다. 세계적 군비 경쟁 임박(The Cold War INF Nuclear Treaty is dead, killed by rise of China and Trump. A global arms race is next)'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들은 바에 따르면, 합중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작년 10월 연설로 의지를 밝히기 전에 이 조약을 폐기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가 언급한 사유는 러시아의 조약 위반설(說)과 중국의 군사적 증강이다."
 
트럼프가 외형상으로는 러시아의 조약 위반을 구실로 들었지만, 그에 더해 중국의 군사력 증강까지 거론했다는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INF의 구속을 받아온 데 반해, 조약 당사자가 아닌 중국은 이에 구애받지 않고 중거리 핵전력을 증강해 왔다. 그런 중국을 당장에 끌어들여 새로운 군축조약을 체결하기보다는, 일단은 INF를 폐기하고 중국과의 군비 경쟁을 촉진한 뒤 나중에 군축조약 체결 여부를 결정하려는 의도를 미국이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련제 중거리 탄도미사일인 SS-20의 발사대.
 소련제 중거리 탄도미사일인 SS-20의 발사대.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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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INF를 파기한 동기가 러시아보다 중국 견제에 있다는 점은, INF 효력 상실 뒤에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을 주로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 하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위 기사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은 현재 (INF에서) 금지돼 있는 미사일을 (INF 폐기 뒤) 유럽에 대규모로 배치하는 작업에 착수하게 될까? 아마 거의 힘들 것이다. 서유럽에서 이것(배치 작업)은 정부 및 일반대중 양쪽의 심각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INF 폐기 뒤에 러시아를 견제할 목적으로 미국이 서유럽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한 뒤, 위 기사는 '중부 유럽에는 소규모 배치가 가능하지만 러시아를 위협할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러시아의 보복 조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중부 유럽 국가들도 적극 협조하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INF 폐기 뒤에 미국이 주로 중국을 겨냥해 미사일을 배치할 수밖에 없다는 게 위 기사의 전망이다. 다른 언론 보도들도 대체로 비슷하다. 위 기사는 이렇게 말한다.
 
"의심의 여지 없이 이 지역(아시아·태평양)에서 워싱턴의 주요 전략 목표는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며,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은 지상 발사 중거리 미사일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무기를 배치하는 경쟁의 장을 추구하고 있다."
 
러시아 주변보다는 중국 주변에 친미국가나 미군 기지가 많이 모여 있다. INF 폐기 뒤에 중국을 겨냥한 중거리 미사일이 좀 더 많이 배치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INF 파기가 겉으로는 러시아를 겨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중국과의 군비경쟁을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INF 파기는 트럼프의 성동격서 전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INF 파기, 신질서가 오는가 

하지만, 이론상으로만 본다면 트럼프의 성동격서는 성공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적군이 곤괘 위에 태괘가 있는 대혼란을 겪고 있을 때 유효한 방법이 성동격서다. 동쪽을 치는 척하면서 서쪽을 치는데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적진이 혼란스러울 때 성동격서가 효과를 발휘한다. 적군이 정신 바짝 차리고 온 사방을 주시하고 있을 때는 하나마나한 방법이다.

지금의 중국은 곤괘 위에 태괘가 있는 정도의 혼란을 겪고 있지 않다. 트럼프의 미국 못지않게 시진핑의 중국도 신경을 바짝 쓰고 있다. 그래서 적어도 성동격서라는 측면에서는, INF 파기가 중국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이번 파기가 촉발할 군비경쟁으로 중국이 코너에 몰릴 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현재로서는 단언하기 힘들다.

이번 파기의 영향은 그보다는 다른 데서 찾는 게 더 나을 듯하다. 미·중 대결구도를 중심으로 세계질서가 정착되는 계기 중 하나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INF 체결이 구질서를 '해체'하는 데 기여했다면, INF 파기는 신질서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INF 체결 당시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자화자찬의 발언들을 내놓았다. 레이건은 "최대의 성과"라고 자평했고, 고르바초프는 "핵시대 역사상 미증유의 조치"라고 자찬했다. 당시 사람들도 그런 말에 동조했다. 평화문제연구소가 1988년 발행한 <통일한국> 제49권에 실린 '미·소 정상회담의 총결산: 최대 성과 INF 철폐조약'은 조약 체결의 의의를 이렇게 요약했다.
 
"미·소는 이제 서로의 이해의 폭을 넓히고 새로운 데탕트(화해) 시대를 개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중거리 핵전력을 감축하는 INF 체결은 실제로 냉전질서 해체에 기여했다. 미·소 군비 경쟁을 진정시키고 핵 없는 시대의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세계가 탈냉전을 기대하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됐다. 1989년 11월 9일의 베를린 장벽 붕괴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미제 중거리 순항 미사일인 GLCM을 확인해보는 소련측 검사관. 1988년 해체 전의 모습.
 미제 중거리 순항 미사일인 GLCM을 확인해보는 소련측 검사관. 1988년 해체 전의 모습.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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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 체결은 한국에도 영향을 줬다. 소련과의 긴장 완화는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을 고려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됐다. 당시 미국이 주한미군을 운용하는 1차 목적은 소련의 동아시아 진출 견제였다. INF 체결로 소련과의 긴장관계가 크게 이완됐으므로,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과 중국을 견제하는 데 필요한 수준으로 주한미군 감축을 고려하는 게 당연했다.

이 같은 미국의 태도 변화를 보고 한국 정부는 긴장했고, 미국은 이를 이용해 방위비 분담을 요구했다. 1988년 6월 5일자 <한겨레>의 '주한미군 경비 한국 분담 한미행정협정에 어긋나' 기사에 따르면, 미국의 분담 요구를 당해내지 못한 한국 정부는 이미 이때 방위비 분담 방침을 내부적으로 결정해 두고 있었다. INF 체결 등으로 인한 미·소 긴장 완화가 1991년부터 한국이 방위비를 분담하는 결과로 이어졌던 것이다.

1987년의 미국은 INF 체결을 통해 소련과의 긴장완화를 추구했다. 이것은 냉전 질서를 해체하고 탈냉전의 도래를 촉진하는 기능을 했다. 32년 뒤인 2019년에 미국은 INF 파기를 통해 중국과의 긴장관계를 강화시키고 있다. 이것이 미·중 중심의 신질서를 정착시키는 계기 중 하나로 작용할 가능성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INF 파기가 성동격서 효과를 연출하면서 새로운 세계질서를 창출할 가능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동쪽 방향을 칠 것처럼 하면서 서쪽 방향을 치는 미국의 공략법은 '또 다른 방향'에 불똥을 튀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중국을 겨냥한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자면, 중국과 가까운 나라 혹은 지역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미국이 한국·일본·대만·필리핀이나 괌·알래스카 등을 배치 지역으로 고려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불똥이 튀길 '또 다른 방향'에 한국이 포함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의 머릿속에서는 '이참에 이문을 남기자, 그냥 배치하지 말고 미사일을 팔아넘기자'는 발상이 나올지도 알 수 없다.

이는 사드 배치 때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겪었던 곤란을 중거리 미사일 배치로 인해 또 다시 겪을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러시아를 겨냥하는 것 같던 INF 파기가 실은 중국을 겨냥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 같은 나라들로 불똥을 튀길 가능성에 신경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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