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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스릴러'라는 신종 언어를 창시하며 높은 시청률로 막을 내린 <스카이캐슬>. 입시를 소재로 다룬 이야기가 공포감을 선사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자녀 교육이란 목표를 위해 부모가 모든 가치관을 저버리는 순간, 수많은 가치들이 비틀어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유명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미 14년 전에 이 점을 착안한 것 같다. 소설 <호숫가 살인사건> 말이다. 
 
 소설 '호숫가 살인사건' 표지.
 소설 "호숫가 살인사건" 표지.
ⓒ 랜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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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위해서라면 사체유기도 감수하는 부모들이 호숫가 산장에 모이면서 범죄가 시작된다. 이들이 최초에 산장에 보인 것부터가 유명 사립중학교 진학을 위해 외아들들을 모아서 합숙 교육을 하기 위해서다. 한 가정 당 부모 두 명과 아들 한 명씩 네 가정이 모이고, 거기다 학원 강사까지 해서 총 13명. 아가사 크리스티식의 불길한 인원수가 밀실의 역할을 하는 산장에 모인다.

원래는 재혼한 가정의 남편이 빠지면서 12명뿐이었으나 그가 일말의 책임감을 안고 산장으로 나중에 합류하게 되면서 모든 것이 틀어지게 된다. 그가 온 후 그의 불륜 상대가 예고 없이 뒤따라 왔다가 그날 밤에 살해된다. 그리고 살해된 사체를 유기하기 위해 부모 전원이 굳게 입을 다물기로 합의를 본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격적일 사건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인간의 기본적 도덕을 외면한 부모들의 추악한 민낮을 계속해서 들추어 낸다.

소설 속에 나오는 일본의 6학년 아이들은, 꼭 드라마 <스카이캐슬>에 나오는 고등학생들처럼 입시 성공에 대해 엄청난 압박을 받는다. 소설에 나오는 대사를 소개한다. 일본의 부모자녀간 주고받는 이야기인데, 어느 시점이 되면 '내가 한국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인가' 의문을 갖고 여러 번 지나간 이야기들을 들추게 된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서 좋은 대학을 나오는 게 결국 이익이니까 지금은 열심히 공부만 하라고 했잖아.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나라에서 학력을 중요시하는 건 바뀌지 않을 거라고 늘 말했잖아." - 2장 '비밀의 밤' 중에서

쇼타와 그의 엄마 미나코가 나누는 대화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난 후 미나코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서 '사립중학교에 가기 싫다면 가지 않아도 좋다'고 말하자 아들 쇼타가 쏘아붙이는 장면이다. 이제 13살이 된 소년은 세상을 너무 알아버렸다.

"좋은 학교에 가지 않으면 손해만 볼 거라고 한 건 엄마잖아. 나쁜 짓을 하고 돈을 받는 공무원도 도쿄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그런 자리에 있는 거라고 하지 않았어? 역시 도쿄대학을 나온 다른 공무원이나 경찰이 감싸주니까 형무소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겠지. 이 세상은 출세한 사람이 최고잖아." - 2장 '비밀의 밤' 중에서

자신이 평소에 했던 이야기들을 고대로 아들 쇼타로부터 돌려받은 미나코는 할 말을 잃는다. 부모가 이런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어린 나이부터 입시 전쟁에 나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적 능력과 경제력을 이미 갖추고 있는 상류층 부모는 자신이 살아온 세상을 잘 알기에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들이 이룬 것을 자식 세대에서 잃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거나, 가능하다면 늘릴 수 있기를 원한다.

이야기 속 부모들은 자녀의 입시 성공을 위해 가정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들도 저버리거나, 혹은 버려야 하는지를 두고 고민한다. 가정이 자녀의 성공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건만 가치의 전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들이 이룬 무형과 유형의 자산들을 지켜야 한다는 기준이 세워지는 순간 도덕적 가치들이 희생되는 것이다. 이것이 옳지 않다는 걸 어렴풋이 알면서도 입시 경쟁 레이스를 뛰기 시작한 이들은 그 발을 빼낼 수가 없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자녀에게 성공의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은 과연 부모로서 해야할 소중한 의무 중에 하나인 것인가.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는 나 자신도 결코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고민하며 발을 옮기고 있다는 것으로 작은 위안을 삼아본다.

요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게 유행이던데, '소소하지만 확실한 교육'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자유로운 영혼, 시름 잊은 나들이’ 에도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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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작가, 임학박사, 연구직 공무원, 애기엄마. 쓴 책에 <착한 불륜, 해선 안 될 사랑은 없다>, <사랑, 마음을 내려 놓다>. 연구 분야는 환경친화적 임업 마케팅 및 불법 벌채 근절 제도 연구. 현재 중국 상하이에 거주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