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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됐다. 다 왔다. 서울에 도착하니 마음이 탁 놓였다.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또 다른 시작이었다. 자전거길 위에서 하루를 마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K의 집에서 묵기로 미리 연락을 해두었다. K는 이태원에 살고 있었다.

도심에 진입할 차례였다. 잘 닦인 자전거 길을 벗어나 빵빵거리는 차와 몰려나오는 사람들, 빽빽한 건물과 그 사이사이의 좁은 골목길을 맞닥뜨려야 했다.

한강 자전거 길을 달리면서 어느 다리로 올라가야 하는지 눈으로 살폈다. 강남에서 강북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다리의 입구를 찾지 못해서 벌써 몇 개째 다리를 지나치는 중이었다. 한참을 달리니 다시 다리가 보였다. 한남대교였다.

이번에는 놓치지 말아야지. 자전거를 세워놓고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입구를 물었다. 다리로 올라가는 입구가 어딘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강변 주위에는 전부 차도인데 다들 어디서 어떻게 온 걸까.

몇 사람에게 더 묻고 나서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사실 그 사람도 확실히 모르는 눈치였는데, 친절하게도 함께 다리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입구일 만한 곳을 짐작하여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었다. 입구가 맞았다.

올라가 보니 다리 위에는 차들이 쌩쌩 다니고 있었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없었다. 그 위에서 한강을 바라보았다. 동네 작은 강만 보고 살다가 한강을 보니 꼭 바다 같았다. 한강을 볼 때마다 바다 같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는 아직 내가 보지 못한, 한강보다 더 넓은 강들이 많겠지. 탁 트인 전경을 감상하고 있자니 해방감과 동시에 가슴 한 구석에 적적함이 몰려왔다. 해가 지고 있었다. 여유를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자. 얼마 안 남았다. 다시 안장에 엉덩이를 올려놓고 페달을 밟았다. 한남대교의 저쪽 끝에 다다르니 거기가 이태원이라고 했다. 오목조목한 골목도 많았고 어두워질수록 사람이 점점 불어났다. 자전거를 타기엔 적합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자전거길을 탈 때는 몰랐는데 좁은 공간으로 들어오니 자전거 양 옆으로 부착된 패니어가 다른 사람들에게 부딪힐까 봐 꽤 신경이 쓰였다. 괜히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안 되겠다. 지하철로 점프하자. 나는 자전거를 끌고 지하철역 입구로 향했다. 내려오기는 어떻게 내려왔는데, 올라가는 게 문제였다. 에스컬레이터를 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자전거 여행기를 읽으면서 궁금한 점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계단을 오르는 걸까. 무거운 짐을 가득 싣고 달리다가 계단이나 자전거로 이동할 수 없는 구간이 나오면, 그땐 어떻게 되는 걸까. 그 궁금증을 직접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

간단했다. 그냥 오르면 되는 거였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패니어에는 크로스로 맬 수 있는 끈이 포함되어 있다. 달릴 때는 끈을 안쪽으로 잘 넣어두고 달리다가, 필요할 때는 끈을 꺼내어 일반 크로스백처럼 매고 다닐 수 있었다.

자전거에서 패니어를 떼내어 끈을 펼친다. 양 어깨에 하나씩 패니어를 메고, 두 손으로 자전거를 번쩍 들어 올린다. 그 상태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참 쉽죠? 맨몸으로 오를 때처럼 성큼성큼 오르기는 어렵다. 짐도 무겁고 자전거 부피도 커서, 계단에 부딪히지 않게 각도를 살피며 한 번에 한 계단씩 올랐다. 한 번 움직이는데 소모되는 힘이 적지 않았다. 계단 위에 설 때마다 숨을 고르느라 더욱 더뎠다.

낑낑거리며 하나하나 계단을 밟고 있는데 어느 순간 자전거가 스윽 가벼워졌다. 뒤를 돌아보니 아저씨 한 분이 짐받이 부분을 잡아 들어주고 계셨다. 어안이 벙벙해서 뒤돌아본 채 서 있으니 '계속 가요, 저 위에까지 잡아드릴게요' 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걸음이 한결 쉽고 빨라졌다.

길고 긴 지하철역 계단을 벗어나 마침내 평지에 다다랐을 때는 만세라도 부르고 싶었다. 고맙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아저씨는 벌써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중이었다. 아저씨의 모습과 함께 나의 두려움과 걱정도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뜻밖의 상황이 닥치는 것에 대한 겁이 많았다. 그땐 또 다른 뜻밖의 상황이 나를 도와줄 수도 있는 거였다. 지하철 계단에서 아저씨가 등장한 것처럼 말이다.

덧: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한다.
 
달리는 동안 숱한 계단과 오르막을 만나게 된다.
 달리는 동안 숱한 계단과 오르막을 만나게 된다.
ⓒ 이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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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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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쓰고 글을 쓴다. 자전거를 타고 춤을 추고 여행을 하는 사람. 글을 쓰고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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