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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 삽교읍에는 하포리라는 지명이 있다. 평야로 이루어진 마을의 동쪽으로 삽교천의 제 1지류인 하포천이 흐른다. 내가 하포리로 가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버스를 타고 예산군 오가면 양막에 내려서 논 사이의 오래된 길로 30여 분을 걷는다. 두 번째는 삽교역에서 사촌 형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간다. 자동차를 이용해 편히 가는 세 번째도 있지만 나는 첫 번째 방법을 좋아한다.

흙과 거름 내음이 코끝으로 스며들고 넓은 초록색 논 사이 길로 그림 같은 풍경들이 펼쳐진다. 아버지의 고향인 하포리로 가는 길에는 할머니, 큰아버지, 큰어머니, 젊은 시절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들이 빛바랜 흑백 사진처럼 남아 있다. 하포리의 추억은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내게도 잔잔한 향수가 되어 흐르고 있다.

명절에는 어머니와 함께 지금은 사라진 통일호를 타고 하포리에 갔다. 통일호는 1955년부터 2004년 3월 31일까지 운행된, 무궁화호 보다 낮고 비둘기호 보다는 등급이 높은 기차였다. 영등포역에 도착한 기차에는 장항선이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장항선은 예산, 홍성, 대천 등등 충남의 주요 도시들을 연결 해주는 노선이었다.
현재는 장항역이 신역사로 이전 되고 장항선의 종착역이 호남선과 연결되는 익산 역으로 바뀌었다.

통일호는 유난히 덜컹 거렸다. 가끔 홍익 매점의 아저씨는 주전부리할 과자와 소시지, 오징어, 음료수를 가득채운 이동식 카트를 밀고 왔다. 낮고 건조한 목소리로 간식거리가 지나가고 있음을 알려 주기도 했다. 가느다란 그물망에 담겨 있는 삶은 계란과 함께 마셨던 칠성사이다 한 모금의 맛은 정말 좋았다. 흔들리는 객차와 객차 사이의 통로에서는 바람과 함께 실려 오는 농촌의 모습이 보였다.

붉은 노을이 하포리에 내려앉을 무렵 아궁이 앞의 큰 어머니는 볏짚을 한 움큼 넣고 녹이 슨 송풍기를 돌리셨다. 눈이 많이 오던 날 오는 길에 춥지는 않았는지 어린 조카의 손을 "호 호" 불어 가며 맞이해 주셨다. 지은 지 50년은 남짓한 시골 초가집의 사랑방에는 고유의 나무 향이 있었다. 여름 방학 때 하포리를 가면 할머니는 대청마루에서 팔베개를 하시고 사랑방과 연결된 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 시원타. 시원타" 하셨다.

사랑방에는 라디오만 수신이 되고 도시로 유학을 떠난 사촌 누나의 고장이 난 카세트가 있었다. 사랑방 창문을 열면 바로 눈앞으로 구름이 종종 떠다니고 논두렁 위의 청개구리가 보였다. 코끝으로 느껴지는 풀 내음과 청량하고 맑은 공기를 마셨다. 서울에서 듣던 라디오 DJ의 목소리와 함께 듣는 노래가 기분 좋은 설렘을 주었다.

시골집 안방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조그만 벽장 옆의 농협 달력에 열차 시간표가 붙여 있었다. 큰아버지는 누군가 기차를 타러간다고 하면 항상 그 종이를 보시고는 언제쯤 출발하면 된다고 알려 주셨다. 마당에는 지하수를 끌어 올려 물이 나오던 몸통은 주전자 모양이고 작두처럼 생긴 손잡이의 펌프가 있었다. 한여름 사촌 형과의 등목은 무더위를 날려 버릴 듯한 시원함을 안겨 주기도 했다. 소에게 여물을 먹이고 볏 집을 입에 가져다 대면 맛있게도 잘 받아먹었다. 큰 어머니가 광에서 사과 하나를 꺼내 주시면 윗도리 소매에 쓱 문질러 한 입에 아삭 베어 물었다.

방조제로 물길을 막기 이전의 삽교천으로 연결된 하포 천에는 물고기가 참 많았다. 갯벌도 있어서 아침에 사촌 형이 잡아온 어른 손바닥만 한 게들이 양동이 가득 거품을 물고 있었다. 삽교천 방조제는 충청남도 당진과 아산을 연결하는 삽교천 하구를 가로막아 홍수와 바닷물의 역류로 인한 자연 재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1979년 10월 26일에 준공식이 있던 날 박정희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참석한 공식 행사였다. 

방조제가 생겨난 이후에는 물길이 가로막혀 피라미정도 만 근근이 보일 뿐 갯벌은 사라졌다. 어린 시절 사촌 형과 함께 그물 가득 물고기를 잡던 추억이 사라진 하포 천을 바라볼 때면 참 안타깝다. 장마철이면 홍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가뭄 극복을 할 수 있으며 자연 그대로의 물길을 막아서 얻는 이점도 있다.

하지만 4대강 사업에서 보듯 인위적으로 흐르는 물을 막으면 유속이 느려진다. 그로 인한 오염된 강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금강과 4대강 유역에서 해마다 녹조가 나타난다.

'녹조라떼'라는 말이 있다. 물빛이 녹색이 되는 현상을 빗대어 말하는 신조어이다. 여주 보의 준설공사 때문에 천 마리 이상의 물고기가 집단폐사를 하고 멸종 위기의 어종조차 사라질 수도 있다고 한다. 4대강의 호수화로 인한 생태계 파괴는 환경오염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 등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준다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다.

지구의 70 %는 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의 몸 또한 70 % 이상의 물로 구성되어 있다. 생명의 근본인 물이 고이면 오염이 되고 썩는다는 것은 상식 이다. 흘러가는 물처럼 산다는 것이 순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 마음속의 흐르는 물이 가로막혀 고여 있다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게 살아가야 할까. 강물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우리와 공존 하며 살아간다. 그들이 사는 터전을 오염 시키고 파괴 한다면 우리는 보다 많은 것을 잃을 것이다. 물질적인 것들도 있지만 강물에 비친 해질 녘 노을을 바라보면서 친구들과 물고기를 잡았던 유년의 소중한 기억들을 갖지 못하게 되고 사람과 사람을 소통할 수 있는 감성을 잃어버릴 것이다.

추운 겨울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 손을 꼭 붙잡고 버스를 타려 30여 분을 걸어서 양막을 향해 걸어갔다. 구름 사이로 한 줄기 내려오는 햇살과 함께 멀리서 바퀴 옆으로 흙먼지를 흩날리며 좁은 시골길을 달려오는 버스가 정말 좋았다. 어린 나는"이 다음에 어른이 되면 저 버스를 운전하는 사람이 될 거야"라는 다짐을 해본 적도 있었다.

매년 명절이면 뉴스에서 연휴기간 동안 고속도로의 정체구간이며 통행량과 도착시간을 실시간으로 알려 준다. 비록 고향을 가고 오는 길이 힘들겠지만 도시의 숨 가쁜 일상 속에서 돌아가고 싶은 고향의 향수를 간직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시골이 고향인 지인들은 내게 복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 집 식구들은 연휴동안 무얼 하며 지낼까 고민 끝에 쇼핑 몰에 가서 식사를 하고 영화도 보며 집에서 빈둥빈둥 거린다. 광화문의 서점에 둘러보고 인근에 있는 고궁을 둘러보기도 한다.

지난 여름 이제는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큰 사촌형 가족만이 살고 있는 하포리에 아내, 두 딸아이와 함께 다녀왔다. 예산 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양막을 지나 하포리로 가는 길을 걸었다. 그 길을 따라서 할아버지는 청양을 떠나 하포리에 자리를 잡으셨고, 당신과 할머니의 상여가 지나갔고, 큰아버지 큰어머니가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셨고, 아버지는 그 길을 따라 학교를 오갔고, 군대를 다녀왔고,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갔고, 결혼을 한다며 어머니를 데려왔고, 어느 날 나를 품에 안고 한 손에는 누이의 손을 잡으며 그 길을 걸어서 하포리로 돌아왔다.

참 아쉽다. 늦은 시각임에도 제 친구와 히히덕, 히히덕 거리며 통화를 하고 있는 큰 딸아이와 지금 내 곁에서 스마트 폰으로 짱구 시리즈를 보며 배꼽을 붙잡고 깔깔 대며 웃고 있는 둘째 딸 아이 에게도 내 어린 시절 기억의 일부를 전해 주고 싶지만 이제는 기회조차 줄 수 없다. 우리 두 딸아이가 풀 냄새 가득 맡으며 다리 아프다고 투덜거리며 걷다가 바라본 멀리 하포리의 풍경과 아빠와 함께 걸었던 시골 거름 내음 나던 하포리로 가는 길만이라도 기억 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어릴적 명절 때면 내려갔던 아버지 고향인 충남 예산의 하포리에 대한 기억을
써봅니다


태그:##설, ##설 명절, ##명절, ##고향,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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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속에서 행복을 찿아가는 가영이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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