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을지로에 재개발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란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을지면옥'이 철거 위기에 놓였을 줄은 몰랐다며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요한 건 냉면집이 아니다. 세운상가를 둘러싼 을지로 일대의 역사와 오늘의 문제를 조명하고자 한다. - 기자 말

(* 지난 기사 '을지로에서는 인공위성도 만들 수 있다'(http://omn.kr/1h5m7)에서 이어집니다.)

 
폐업을 하루 앞둔 평안상사와 홍성철 사장. 60년 만에 텅빈 가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폐업을 하루 앞둔 평안상사와 홍성철 사장. 60년 만에 텅빈 가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 최황

관련사진보기

 
을지로에서 60년 동안 평안상사를 운영해온 홍성철 대표를 만나봤다. 평안상사는 1958년 개업한 곳으로, 공구와 공구 부속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던 상점이다. 창업자인 아버지로부터 평안상사를 물려받아 대학원 졸업 후 30년간 운영해왔다는 홍 대표는 지난 1월 둘째주 주말을 끝으로 폐업 절차를 밟았다.

"대 이은 가게에 동경 있었다"... 하지만 가게는 곧 사라진다
     
평안상사는 한국전쟁 때 평안북도에서 내려온 홍성철 대표의 아버지가 지은 상호다. 그는 평소 거래처에 전화할 때면 "여보세요?"라는 말 대신"평안하십니까?"라는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 으레 거래처 관계자들 역시 "네, 평안합니다"라고 답했단다.

홍 대표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했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는 학자로 남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하지만 그가 30세 때 평안상사를 물려받지 않겠냐는 아버지의 권유에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을지로로 출근했다. 아버지의 일본 출장에 동행하면서 대를 이어 가업을 물려받은 작은 가게들을 많이 봤던 홍 대표는 "대를 이은 가게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60년을 이어온 가게는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예정이다.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
 
을지로에 불어닥친 재개발 바람. 사진은 평안상사가 있던 건물의 1월 31일 모습이다.
 을지로에 불어닥친 재개발 바람. 사진은 평안상사가 있던 건물의 1월 31일 모습이다.
ⓒ 최황

관련사진보기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 - 우리는 이 질문에 아주 성실하고 솔직한 답을 찾아야 한다.

보통의 경우 기와나 한복 등을 떠올리는데, 사실 그건 조선의 문화유산이지 '한국'의 것이 아니다. 한국의 문화유산은 지난 100년 안에 만들어진 것들을 토대로 찾아야 한다. 그래야 미래의 사람들이 '한국의 유산'을 향유하며 문화를 이어갈 수 있다.

지난 100년 동안 만들어진 현대 문화유산의 가치를 너무 쉽게 포기한다는 것이 동시대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커다란 문제 중 하나다. 경복궁이나 광화문이 조선이 남긴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듯, 세운상가와 을지로에 형성된 제조업단지 생태계는 20세기 현대 한국이 남긴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을지로 일대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제조공업 단지는 하나의 생태계를 이뤄왔다. 을지로의 역사는 서울의 역사이자 한국의 현대사를 대표하는 표본이다.
 을지로 일대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제조공업 단지는 하나의 생태계를 이뤄왔다. 을지로의 역사는 서울의 역사이자 한국의 현대사를 대표하는 표본이다.
ⓒ 최황

관련사진보기

  
특히 세운상가에서 시작돼 1km 넘게 마치 기차처럼 이어진 건물과 을지로에 남아있는 20세기 초반에 지어진 일본식 건물들은 물론, 20세기 중후반에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들 역시 건축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이런 건물들에 대한 현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고 오직 재개발을 이유로 철거한다면 한국 사회가 20세기 내내 메워온 흔적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1970년대나 1980년대에 지어진 단독주택들만 해도 분명 한국의 현대사가 남겨둔 중요한 주거문화유산이자 건축유산이지만, 21세기가 시작된 이래로 재개발을 작동시키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서울에서 그 자취를 감추고 있다.

아파트나 빌라를 짓는 건설사들은 건물과 토지가 만들어내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30년의 시간만을 바라보고 지어진다. 건물이 사적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만 인식될 뿐, 한 사회의 외형과 이미지를 구축하는 사회적 재산으로서의 가치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사라질지 모르는 20세기의 흔적  

이런 문제적 현상이 잘 작동되도록 정부나 자치단체가 돕고 있다. 을지로의 제조업 단지를 허물어 버리고 '주상복합아파트'가 지어질 수 있게 된 배경에도 서울시의 재개발 허가라는 도움이 있다.

이런 식의 도시 개발 담론이 만들 가까운 미래엔 동시대에 지어진 건물과 조선시대에 지어진 건물만 남아 20세기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묻고 싶다. 이곳에 한 번이라도 방문한 적이 있느냐고. 박원순 시장이 이야기하는 '문화와 예술 그리고 도시'는 실제 '문화와 예술 그리고 서울'과 얼마나 멀리에 있는가에 대해 우리는 진솔한 대화를 나눠봐야 한다.

냉면은 이곳에서 철저하게 부수적인 것이다. 철거는 오늘도 진행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던 서울시의 브랜드 'I Seoul U'는 결국 '재개발'을 뜻한 건 아니었을까? 이 이미지는 필자가 박원순 서울시장을 위해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던 서울시의 브랜드 "I Seoul U"는 결국 "재개발"을 뜻한 건 아니었을까? 이 이미지는 필자가 박원순 서울시장을 위해 만들었다.
ⓒ 최황

관련사진보기

 
[지난 기사]
① 을지로 하면 을지면옥?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http://omn.kr/1h5ke)
② 을지로에서는 인공위성도 만들 수 있다 (http://omn.kr/1h5m7)

태그:#을지로, #서울, #재개발, #도시재생, #박원순
댓글7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