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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시작됐다. 2019년은 연휴가 제법 긴 편이다. 덕분에 일가친척 면면이 돌아보고도 한숨 돌릴 짬이 있다. 아무리 가족이고, 오래 알고 지내온 친척일지라도 사람을 만나는 건 중노동이다. 미투 운동에 힘입어 가부장 문화 짙은 이 땅에도 다소 균열이 생겼지만, 여전히 '시-자 들어가는 집에 드나드는 건 골치 아픈 일이고, 시대착오적인 '꼰대'들의 잔소리를 감내하는 일도 보통이 아니다. 그래서 연휴가 마냥 즐겁지는 않다.

그래도 어른들이 하는 말처럼, 옛날이 좋았다. 왜냐면, 옛날엔 명절 때나 돼 한번 얼굴 보지 평상시엔 서로 소식 나눌 일도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떤가? 한 예로, 며느리들이 소셜미디어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게 한두 해 일이 아니다. 손자 얼굴 보고 싶다고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영통(영상통화)은 영락없는 '시가 CCTV'다. 유행가 가사에도 나오는 "너와 나의 연결고리~"는 무슨! 당장에 끊어 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도 아니었을 거다.

그런데 문제는 얼마나 자주 연락하고 지내게 됐는지를 가리키는 피상적인 빈도수가 아니다. 까짓것 연락 주고받을 때마다 정신을 안드로메다로 보내면서 자본주의 미소와 친절로 포장하면 그만이다.

진짜 문제는 각자의 가치관과 내면이 속속들이 담긴 사적인 공간이 온라인에 전시돼 있다는 데에 있다. 실제로 스마트폰 대중화와 함께 너도나도 SNS로 엮여 들어간 초창기(2010년대)에 많은 이들이 '꼰대'들로부터 데임을 당했다. "너는 어딜 그렇게 싸돌아 다니냐?",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줄 몰랐다" 등, 사례는 차고 넘친다.

한편 이와 같은 시행착오 덕분에 소셜미디어 개국 시기를 지나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불편한 문명의 이기에 적응한 일면도 있다. 자기검열을 거쳐 게시물을 올리거나, 아예 계정을 비활성화시키는 등 나름의 방법을 강구한 것이다.

위와 같은 온라인 거리 두기는 가족 혹은 직장상사 등을 대상으로 할 때 분명 효과가 있다. 효과라 함은, 내 정신상태가 스트레스로 오염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바운더리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온라인에서도 거리 두기는 나 자신에게 유익하다.

그런데 너도나도 이렇게 대처하는 시대에 사는 이 사회 전체는 과연 어떤 모양새일까? "내 맘 편하면 그만이지"로 그칠 수도 있지만,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내 사는 꼬락서니가 문제 있다고, 혹은 내 사상이 불경하다고 잔소리하는 '꼰대'들, 혹은 그런 사람들을 걸러내듯이 우리는 각자의 온라인 플랫폼에서 불편한 소리를 내뱉는 사람들을 필터링하면서 지내고 있다.

아니 '필터링'이라는 말이 갖는 우회적인 느낌은 잠시 빼두자. 우리는 꽤나 능동적으로 차단을 일삼으며 지내고 있다. 뉴스피드와 타임라인에는 어차피 내가 수긍할만한 이야기들만 넘친다. 다른 가치관 혹은 논조는 찾기 어렵다.

더구나 관심사가 유사한 이들을 알아서 골라주고, 관심사가 아닌 것들은 자동으로 걸러주는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마주하지 못하도록 보이지 않는 장벽을 친다. 이와 같은 현상에 관하여 엘리 파리저(Eli Pariser)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2012)에서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표상들을 주입시키는 자기선전"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페이스북 친구가 오천 명이고 인스타 팔로워가 만 명이어도 뉴스피드와 타임라인은 마냥 청정지대다. 다른 논점이 비집고 들어설 틈이 없다. 바꿔 말하면 학교나 직장에서 마주치는 나와 다른 생각들, 즉 부대끼는 생각들과 접할 일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도통 남의 말을 듣질 않는 사람을 가리켜 독불장군이라 하는데, 요즘은 온라인 플랫폼이 그런 독불장군들을 양산하는 시스템이 되어 버린 것 같다.

한병철은 <타자의 추방>(2016)에서 이처럼 다른 생각과 낯선 생각이 배제된 온라인 네트워크를 같은 생각들끼리만 똘똘 뭉친 "무간격의 공간"이라 칭한다. 참 섬찟한 얘기다. 남의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나는 존재할지 몰라도 그 공간에 타인은 없다. 때문에 초연결사회임에도 갈수록 사회가 극으로 치달아가고 혐오와 배제가 도드라지는 데에는 위와 같은 이유도 큰 몫을 차지하리라 본다.  
만약 명절에 되지도 않는 흰소리를 늘어놓으며 진격하는 이들을 마주한다면, 부담스러워 말자. (사진은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만약 명절에 되지도 않는 흰소리를 늘어놓으며 진격하는 이들을 마주한다면, 부담스러워 말자. (사진은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 M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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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명절에 되지도 않는 흰소리를 늘어놓으며 진격하는 이들을 마주한다면, 부담스러워 말자. 그나마 살면서 몇 되지 않는 진짜 나와 다른 타인 중 하나다. 내게 다른 생각과 낯선 생각을 늘어놓으면서 찐한 충격파를 내뿜는 그런 진짜 타인 말이다.

지금은 그런 타인이 희귀한 시대다. 만나면 보기 싫고 말도 섞기 싫은 이인 건 어쩔 수 없다. 어쩌면 심한 내상을 입을 수도 있다. 그럴 땐 연휴가 길어서 다행이라고 내 마음 다독이자. 불편한 사람 만나고 돌아서서 미세먼지 바람일지라도 찬바람 힘껏 들이키자. 그럼 된다. 그게 사람살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cottsblackbox.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태그:#설연휴, #설명절, #타인,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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