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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동구에 있는 세계 최대 조선소 현대중공업 정문.
 울산 동구에 있는 세계 최대 조선소 현대중공업 정문.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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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첫 달의 마지막날, 시민경제와 관련해 두 가지 빅뉴스가 나왔다. 하나는 노동계로부터 반대 목소리가 높은 '광주형 일자리'의 전격적인 협약, 또 하나는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한다는 소식이었다.

뉴스의 진원지가 있는 도시 울산시민들은 무척 놀라는 모습이다.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라는 지역 주력이자 세계적 기업, 최대 노조가 있는 지역에서 두 가지 소식은 시민경제에도 아주 민감하기 때문이다.

당장 지역 주력 노조인 현대차노조가 광주로 급히 달려가 "자동차산업이 포화상태라 안 된다"며 반대목소리를 냈다. 같은 시각 정치권과 노동계도 울산에서 반대 목소리를 냈다.

그 즈음 울산지역에서는 또다른 거대노조 현대중공업노조가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다. 전날인 30일 저녁부터 나오기 시작한 소식이 이날 기정사실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31일 오후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지분 전부를 현대중공업에 출자하는 방식으로 매각방침"을 발표했다. 매각과 함께 대우조선에 2조5000억원의 공적자금 지원도 추진하며,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 지분 전량을 인수해 지주사로 전환된다는 소식이었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과 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소는 물론 대우조선도 모두 조선 통합지주사 소속으로 포함되며 거대 조선사가 탄생하는 것이다.

당장 이 소식에 민주노총 울산본부 등 노동계가 "속전속결로 진행된 인수합병 진행 결과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던 밀실 거래가 수면 위로 밝혀지며, 정부의 친재벌 반노동 정책들이 하나둘 빗장을 벗고 이 세상으로 나온 날이다"고 평했다.

비단 민주노총뿐 아니라 국내 3대 거대조선사 중의 2개 조선사가 합친다는 뉴스는 그야말로 매머드급이라 시민사회의 충격도 컸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한다는 소식에 노동계는 물론 시민사회와 진보정당 등도 "아무도 모르게 물밑 작업을 가져온 정부와 현대중공업을 성토한다"는 분위기다. 그 이유는 지난 수년간 "조선업을 살리자"며 힘을 모은 시민들의 노력이 대기업의 인수로 귀결됐다는 자괴감 때문이다.

"조선경기 살리자"에 구조조정도 어느정도 이해하는 분위였는데...

울산지역 주력기업인 현대중공업 회사 측은 지난 5년간 '조선경기 위기'로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 과정에서 원하청 포함해 3만 5천명 이상의 노동자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일자리를 잃었지만 지역여론은 다소 이를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지역경기마저 어려워지자 현대중공업 노조가 "부실경영의 책임을 오로지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전가한다"고 외쳤지만 글로벌 조선경기 침체라는 프레임으로 인해 이 목소리는 큰 호소력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현대중공업이 과거 입찰비리로 인해 지난해부터 정부가 진행한 수조원 대의 방위산업 공공입찰에 참여하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를 때 지역계는 현대중공업의 입찰참여를 정부에 호소하고 여론을 모았다.

결국 이같은 결집된 여론에 힘입어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법이 현대중공업의 공공선박 입찰참가 자격제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현대중공업은 공공입찰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에 지역계가 일제히 환호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지역 주력기업이 살아야 주민들이 산다"는 간단한 논리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조선산업 노동자들의 구조조정은 어느정도 인정되는 여론도 모아진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힘든 과정을 거친 후 조선경기가 점점 살아난다는 뉴스가 나올 즈음,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한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그동안 현대중공업 노조와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고통을 겪었지만 정몽준-정기선 총수일가는 사재 출연은 고사하고 자산만 늘렸다"고 호소했고, 그 때문에 지난 25일 7개월만의 협상 끝에 성사시킨 1차 잠정합의안을 부결시킨 바 있다.

하지만 경제를 살리자는 지역여론에 노사는 결국 2차 잠정합의안을 도출했고 31일 조합원 찬반 표결을 앞둔 상태였다. 이 표결은 대우조선 인수 소식에 수면 아래로 사라지고 인수합병시 발생할 조합원들의 구조조정에 대한 두려움만 되살아 나고 있다.

현대중공업 회사측은 지난 30일 출근길에 뿌린 회사소식지 <인사저널>에서 "경영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아직 일감 부족, 매출 감소, 손익 부진이 여전한 상태이지만, 다소 회복세를 보이는 수주에 대한 기대감으로 임단협을 마무리하고 새출발을 하자"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31일 노조 찬반투표를 의식한 소식지였다.

하지만 31일, 노조와의 어떠한 사전 협의도 없이 대우조선 인수합병 소식이 발표되자 노조는 물론 지역계가 충격에 빠진 것이다.

지금도 지난해 일감이 없어 문을 닫은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문은 지금도 노동자들이 순환휴직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줄곧 어렵다던 회사 측이 어떤 재정으로 수조 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는 기업인수합병에 나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조선경기로 대변되어온 현대중공업과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그동안 힘을 모아온 지역 구성원들이 31일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 소식에 놀란 것은 그동안 노동자들의 호소가 지난 수년 간 있어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여론도 요동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태그:#현대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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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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