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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족들로 바다를 가득 메운 만리포 만리포해수욕장이 서핑족들로 수놓아졌다. '만리포니아'라는 별칭을 얻고 있는 만리포해수욕장이 해수욕철이 끝난 지난 8일과 9일 서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만리포해수욕장이 서핑족들로 수놓아졌다. 2018.9.9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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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훑을 생각이라면 그에 앞서서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언제 닥칠지도 모르는 부러움에 맞설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는 것.

유명 레스토랑의 브런치 메뉴나 귀여운 고양이는 아무리 봐도 부럽지 않다. 잘하고 있다! 이리저리 피해 다닌다. 빈티지 찻잔을 수십 조씩 가진 사람과 바르셀로나에 가 있는 사람은 조금 부럽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만약에 부러움 지수가 조금 오르거든 이렇게 생각해보자. 인스타그램 속의 이미지는 환상적으로 연출된 삶의 조각인데, 무방비 상태인 내 삶(휴일 대낮에 이불을 덮고 누웠다든지)과 단순 비교에 들어가면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한시름 놓던 차에 복병을 만났다. 이번에도 고화질 액션캠이 담아낸 파도타기 영상 앞에서 무너졌다. 정확히 배 한복판에서 부러움이 솟구쳐 올라서 온몸으로 번져나갔다. 왜 저 영상의 주인공은 내가 아닌가? 꾸며진 삶의 환상인지, 단순 비교에 의한 뻔한 효과인지 분간할 겨를도 없이 그것은 내 마음의 정중앙을 파고들었다. 이로써 나에게도 '부러움 지뢰'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서핑이라는 부러움 지뢰를 공유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최초의 액션캠을 만든 고프로(GoPro)의 CEO 닉 우드먼이 억만장자 대열에 오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릴 적부터 서핑 마니아였던 우드먼은 어느 날, 35mm 방수 카메라를 팔목에 고정한 채 서핑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친구들에게 영상을 보냈더니 폭발적인 관심이 쏟아졌고 그는 액션캠을 사업화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서핑일까? 나에게 서핑은 평소엔 죽은 것처럼 잠잠하던 호기심이 깨어나는 모험이다. 굳이 나이탓을 하고 싶지 않지만 슬프게도 언젠가부터 좀처럼 무엇이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파도를 타는 기분만큼은 간절하게 알고 싶었다. 

생각해 보라. 등에 안장을 얹을 수 있는 가축이나 사나운 야생 동물을 올라타고 싶은 마음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지만 파도는 그렇지 않다. 인류 최초로 보드 하나에 의지해서 파도를 타겠다고 마음먹은, 그 무모하고 과시적인 사람은 누구일까? 무슨 이유로 그 위험하고 제멋대로인 것을 타려고 했을까?

 파도는 뒤에서 온다

결국 친구와 나는 서울에서 양양으로,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서 한참 달리다가 서프 캠프가 자리한 한적한 해변에 도착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핑을 배우러 간 두 여자의 모험을 다룬 로드무비처럼, 재미있고 편한 것만 상상하며 환상을 키웠다. 단언하는데 영화가 삶에 끼치는 해악은 수치로 환산해서 알릴 필요가 있다.

서핑 포인트까지 낑낑거리면서 서프보드를 옮기면서, 뜨거운 모래사장에서 한 시간가량 자세 연습만 하면서, 파도에 떠밀려온 보드에 머리를 얻어맞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면서, 환상이 물거품처럼 사그라들었다. 이 모든 과정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정확히 반대였다. 지루하고 고생스러웠다.

곡절 끝에 물에 들어갔지만 파도를 탔다기보다 물에서 뒹굴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신속하고 폼나게 일어서고 싶었지만 무서워서 주저하다가 번번이 타이밍을 놓쳤다. 엎드려서 두 팔로 노를 젓는 일명 '패들링'만 잘한다고 칭찬을 들었다. 그건 순전히 팔의 힘이 세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전날 연습한 동작이 몸에 익었는지, 둘째 날엔 테이크오프(보드 위에서 일어서는 동작)가 한결 매끄러웠다. 문제는 전날과 다름없이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였다. 코치가 겁많은 초심자를 위해서 파도를 골라줬고 모두가 마치 급식소에서 배급을 기다리듯, 파도가 배급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차례가 돌아왔고 보드 위에 엎드려서 파도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긴장감이 마구 증폭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파도는 무조건 뒤에서 온다. 파도는 나를 봐도 나는 파도를 볼 수 없다. 파도가 다가온다고 코치가 알려주면 패들링을 하기 시작했다. 파도가 얼마나 큰지, 어디까지 다가왔는지 전부 상상에 맡겨두고 침착하라고 되뇌었다. 

정말이지 운동의 언어는 뻔뻔스럽기 짝이 없다. 가장 핵심적인 동작을 설명하는 언어는 전부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이다. 예를 들어서 '힘을 뺀 채로 절도 있게', '생각을 해도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곳'이란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통용된다. 

서핑도 마찬가지다. 뒤에서 파도가 오는데도 침착한 동시에 신속하게 일어서야 한다. 무엇보다 흔들리는 보드 위에서 온몸에 힘을 뺀 채 흔들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 여기에 멀리 보라는 주문까지 추가된다. 보드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면 시선이 발로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때 무조건 전방을, 멀리 봐야 균형을 잡을 수 있다. 

그래서 내가 한 번이라도 파도를 탔느냐고? 운동의 언어를 빌려서 말하자면 파도와 스치긴 해도 만나지는 못했다. 양양에서도 제주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파도가 뒤에서 밀어주는 순간의, 놀랍도록 매끈하고 속도감 있던 그 감각만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결론은 사는 이유를 잘 모르듯이 파도를 타는 법도 모르겠다는 거다. 내가 아는 것은 뒤에서 오는 파도처럼 꾸미려야 꾸밀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삶을 일단 살고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흔들리는 곳에 서서 흔들리지 않고, 절대로 낙담하지 말고 멀리 보며. 파도를 타는 순간보다 허우적거리는 시간이 훨씬 길지만 어쩌겠는가. 혹시 또 아는가, 쉬지 않고 허우적거리다가 보면 언젠가 능수능란하게 파도를 타게 될지? 

"파도가 집채만 한데 이게 절대 과장이 아니에요. 파도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모양이 다 보인다니까. 나중에 든 생각은 대자연이 무섭다는 거였어. 무슨 신이 만든 통돌이 세탁기에 돌려지는 기분이에요."

이제 막 서른이 된 P는 평소엔 크로스핏과 주짓수, 여름엔 서핑, 겨울엔 스노보드를 즐기는 엄청난 여자다. 그날도 우리는 10Km 달리기 대회에 참가했고 당분과 카페인이 절실해서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P는 서퍼들의 성지인 발리에서 질리도록 파도를 탔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지?' 

조금 위험한 반려동물 같은 호기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큰일이다. P가 또 부러움 지뢰를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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