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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I can speak >를 보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아이들이 정말 감동적인 영화라고 추천을 했습니다. 웃다가 울다가 그리고 마지막에 한참을 울었습니다. 무지했거나 무관심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뉴스를 보다 고 김복동 할머니의 별세소식에 잠시 멍했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저를 한참을 울린 영화의 그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을. 잠시 어찌할 바를 모르다 아이들과 함께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 소녀상과 함께 마련된 빈소를 찾기로 했습니다.
 
아무 말없이 빈소에 국화를 올리는 아이들을 보니, 오길 잘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 할머니의 빈소에 국화를 올리는 아이들 아무 말없이 빈소에 국화를 올리는 아이들을 보니, 오길 잘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 장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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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에 도착하니 어슴프레 어둠이 내리고, 오동동 빈소 옆을 지나는 일부 시민들의 모습이 간간히 보였습니다. 빈소 뒷편에는 할머니의 지난 모습이 담긴 사진과 간단한 안내가 게시되어 있었습니다. 할머니를 잘 모르시는 분들도 현장에서 인권운동가로 활동하신 할머니의 정신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1992년 UN에서 일본 '위안부' 피해자로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하며, 평화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로 온 생을 바쳤습니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워달라" 며, "재일조선학교 아이들을 위해 끝까지 힘 써달라"고 유지를 남기셨습니다.
 
빈소 뒷편에 마련된 故김복동 할머니의 생전 모습과 활동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 故김복동 할머니의 생전 모습 빈소 뒷편에 마련된 故김복동 할머니의 생전 모습과 활동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 장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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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잠시 할머니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빈소를 찾았습니다. 빈소를 지키시던 몇 분의 어르신들이 아이들에게 좋은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너희들 같은 아이들이 있어서 우리가 힘이 된다."
"찾아와 줘서 고맙구나."


그저 빈소를 찾아 국화 한 송이를 올리고, 술 한 잔에 향 하나 피우는 것이 고작이었기에 제가 오히려 송구했습니다.

등굣길에 넌지시 건넨 말에 당연히 가보자고 답하는 아이들을 보니 아버지로서 참 다행이라는 여겨졌습니다. 강물이 흐른 뒤 강은 말라도 그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는 법입니다. 역사는 바쁜 현대인의 삶에서 시시각각 잊혀지게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가슴에 담고 머리에 새겨야 합니다.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를 지키시는 어르신들처럼 소중한 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한국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 함께 게재합니다.


태그:#김복동할머니, #위안부문제해결, #아이캔스피크, #역사의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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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나누고 글로 남기고 손으로 만드는 삶을 꿈꿉니다. 강사이자 작가로 세상을 기록하고 싶습니다. <하루 48시간> 작가로 삶의 이야기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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