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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부지는 절부지(節不知)에서 나온 말로 계절이나 때(時)를 모르는 어리석음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농사에서 파생된 이 말은 오늘날의 농업현실을 꼬집기도 한다. 계절에 상관없이 일 년 내내 농산물이 나오고 있어서 농사를 짓는 나도 제철이 언제인지 헷갈릴 정도다.

철부지 농산물은 제철에 나오는 그것과는 고유의 맛과 향이 확연하게 다른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절기에 따른 자연의 기운을 받은 농산물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생산자와 소비자가 선택할 수 없는 것도 지금의 농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화 이후의 이러한 관행농업의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으며, 혹시라도 그 책임을 농민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이 땅의 농민은 항상 국가권력과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끊임없는 수탈과 희생을 강요당했기 때문이다.
    
토종은 왜 사라졌는가

<씨앗, 할머니의 비밀>은 아홉 명의 할머니 농부를 통해서 토종으로 길러낸 음식과 농사에 얽힌 고단한 삶을 들려준다. 할머니는 지속가능한 농사를 이어온 토종종자의 몰락과정에서도 씨앗을 한 가지라도 더 지켜내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평생을 농사로 살아온 할머니에게 씨앗은 함부로 할 수 없는 자식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전 세계의 국가들이 오랫동안 전통으로 물려온 고유한 농업은 화학산업이 발전하면서 위기를 맞는다.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녹색혁명의 농업기술은 농사를 짓는 방법과 대를 이어져 내려온 토종씨앗을 효율과 생산성이 없는 버려야 할 유산으로 치부했다.

한국은 1970년대부터 국가주도로 본격적인 화학산업의 부산물인 화학비료와 농약을 농촌에 투입하고 개량된 종자를 보급한다. 전통적으로 내려온 농법과 토종종자를 지키려는 농민을 국가는 '빨갱이'라는 반공이데올로기를 덧씌우기도 했다.
 
"처음엔 우리도 남들처럼 약을 쳤어요. 1년을 농사를 지으면서 보니까, 논에 가니까 다 죽었더라고요. 미꾸라지도 죽고 개구리도 죽고 뱀도 죽고, 이거 내가 남을 죽이는 농사를 짓는구나. 남 살리는 농사를 지어야지. 죽이는 농사를 지으면 안 되겠다. 그 다음 해에 농약을 끊었어요."
 
농약의 폐해는 생태계를 파괴할 뿐 만이 아니라, 농민의 삶에 직접적인 위험을 주는 독극물이었다. 농약에 대한 정보와 사용법을 제대로 모르는 농민들은 농약중독으로 쓰러지거나 죽어갔다. 요즘 건강식으로 먹는 효소의 역사는 농약과 관련이 있다. 카톨릭농민회는 일본에서 농약중독을 해독하는 데 효소를 쓴다는 것을 알았다. 일본에서 효소를 배우고 돌아와 약초와 풀을 베어다가 효소를 만들었다.

1980년대 들어서 시작된 유기농 운동은 농약사용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참여하는 농민과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한살림' 생활협동조합으로 조직됐다. 땅은 농민들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먹는 소비자도 같은 마음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호소를 했던 것이다.
 
"유기농은 건강을 살리고 밥상을 살리고 땅을 살리는 거지. 나만 건강하자고 내 건강만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쌀과 함께 밥을 지어서 먹고 있다
▲ 토종밤콩 쌀과 함께 밥을 지어서 먹고 있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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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남기는 농사

전통적으로 내려온 유기농사를 계속 짓겠다고 해서 지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농촌지도소에서는 농약을 치라고 닦달했고, 토종종자가 아닌 개량종자로 농사를 짓지 않으면 농협수매도 받지 않았다. 국가권력의 폭력을 견디지 못한 농민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미국에서 값싸게 들어오는 수입 밀가루가 밥상을 점령하면서 토종 앉은뱅이 밀을 농협에서는 수매하지 않았다. 판로가 막히고 값싼 수입밀가루에 토종 밀은 점차 사라져갔다.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쌀은 수입해서 먹으면 된다고 했다. 대체 작물로 논에 수박을 심으라고 비닐하우스 시설을 짓는 큰돈을 국가에서 빌려줬다. 농촌을 빚더미의 늪에 빠지도록 유혹한 것도 국가권력이었다.

빚을 내지 않으려는 농민들은 토종 농산물을 생산했지만 농협에서는 수매하지 않았다. 시장에서도 농약과 비료로 키워낸 크고 때깔 좋은 깨끗한 농산물에 밀렸고, 유기농으로 길러낸 토종농산물은 점차 사라져갔다.

토종종자가 사라진 농촌은 IMF 외환위기 때 국내 종자기업은 외국에 팔렸다. FTA 자유무역으로 농산물시장을 전면개방하면서 농업은 급격히 쇠락해갔다. 농민들은 외국의 종자회사에서 만든 일회용 씨앗으로 불리는 F1(filial generation, 1세대) 종자를 해마다 돈을 주고 사야 한다. 품질도 좋지 않은 외국산 씨앗은 부르는 것이 값으로, 몇 배씩 폭리를 취하는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직접 구매하는 농민들도 있다.
 
"농민들이 씨앗 없이 어찌 살겠어요? 지남철처럼 붙어살아야 해요."
"토종은 받아서 쓸 수 있어서 매년 사지 않아도 돼 좋아요."
 
끊어질 듯하던 토종종자는 할머니의 할머니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왔다. 국가가 외면한 농업과 토종종자 되살리기는 전국여성농민회와 텃밭을 일구는 도시농부도 참여하는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여전히 많은 토종농산물은 할머니들의 텃밭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언니네텃밭' 협동조합과 토종을 지키려는 농민들은 소비자와 직거래를 하고 있다. 토종을 지키는 농민에게는 소비자의 관심과 응원이 많이 필요하다.

씨앗, 할머니의 비밀 - 할머니가 차린 토종씨앗 밥상과 달큰한 삶의 이야기

김신효정 지음, 문준희 사진, 소나무(2018)


태그:#토종종자, #언니네텃밭, #유기농, #씨앗, #앉은뱅이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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