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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도서관의 가치와 거리가 먼 칸막이 공부방을 도서관의 본래 역할에 맞도록 문화 창조 공간이자 민주주의 시민이 탄생하는 공간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도서관 사서들이 모여 공공도서관 개혁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8일 오후 2시, 3백여 명의 사서들이 국회도서관 대강당을 가득 채웠다. 이들은 '개인학습공간을 넘어 시민이 탄생하는 제3의 공간으로'를 주제로 '공공도서관 정책의 진단과 개선 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공공도서관 정책의 진단과 개선 방안
▲ 토론회 공공도서관 정책의 진단과 개선 방안
ⓒ 강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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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회의 첫 번째 발제는 권나현(명지대 문헌정보학) 교수가 맡았다. 권 교수는 근대 민주주의의 성장과 함께한 공공도서관의 본래 역할을 강조하며 칸막이 공부방에 문제를 제기했다.

"공공도서관은 누구나 무료로 자유롭게 지식‧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시민의 자기계발을 지원하고, 사회의 균형 발전과 평등을 실현해 사회 통합 장치로서 역할을 한다. 궁극적으로 공공도서관은 시민 역량 교육의 핵심 동력으로 민주주의를 성숙케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칸막이 공부방이 도서관을 점유해 공공도서관의 이러한 본질적 가치를 약화시키고 있다." 

식민 지배, 독재, 입시 교육으로 왜곡된 공공도서관

이른바 '칸막이 공부방'은 한국의 공공도서관에만 볼 수 있는 기형적인 현상이다. 당연히 미국과 유럽의 공공도서관에서는 볼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공공 공간의 사적 점유'는 공공도서관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공공성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한국에서는 칸막이 공부방이 공공도서관에 자리잡게 되었을까? 권 교수는 '식민 지배', '독재', '왜곡된 교육열' 등을 그 배경으로 지적했다. 

"일제 강점기에 공공도서관은 식민 통치의 수단으로 식민 체제에 순응하는 이를 양성했다. 또한 독재 시대에는 국민의 알 권리가 제한되고 검열이 이루어져 평생 교육을 지원하는 사회적 장치로서 도서관 문화를 형성하는 데 장애가 되었으며, 도서관을 학생들의 공부방으로 왜곡시켰다."
 
공공도서관의 변혁이 필요하다
▲ 권나현 공공도서관의 변혁이 필요하다
ⓒ 강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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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권 교수는 본래 공공도서관은 인권 향상과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19세기에는 시민 누구에게나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노동계급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역할을 했고, 20세기에는 다양한 문화와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취약 계층의 복지를 높여 인권 향상과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고 사회 통합의 장이 되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더욱 적극적인 지식‧정보 서비스를 통해 시민 개개인의 잠재된 역량을 일깨우고 성장시키는 역할을 하거나 도시재생의 거점이자 랜드마크로 역할하는 등 다양한 기능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으나 좌석을 사적으로 점유하는 공부방,
공공도서관의 역할과 사서의 전문 서비스 제공 기회 막아


권 교수는 한국 공공도서관의 공부방을 가리키며 '개인의 성공만을 위한 큰 자습실'이 아닌지 물으며, "공공도서관 기능에 역행하는 식민지 관행이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또한 사서의 전문 역량 개발 기회를 공부방 관리와 민원 처리로 소모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공부방으로 인해 시민의 행복과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기회 비용을 없애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마무리하며 공공도서관이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지식정보 기관이자, 문화 창조 기관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공공도서관 운영 현실
▲ 이용훈 공공도서관 운영 현실
ⓒ 강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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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발제는 이용훈(한국도서관협회 사무총장) 도서관 비평가가 맡았다. 그는 "한 사회의 미래를 보려면 도서관에 가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 사회의 도서관은 과연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가?"하고 물으며 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도서관법을 살펴보며, 칸막이 공부방(일반 열람실)은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으나, 좌석만을 사용토록 한 방'으로 "법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공공도서관에 공부방이 있게 된 배경으로, 그 또한 공공도서관에 대한 인식이 식민 지배로 인해 왜곡되어 이어져 왔음을 지적했다. 

"공공도서관은 시민혁명의 산물이다. 서구에서는 도서관이라는 공적 공간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은 일제의 식민 통치 수단으로 출발했다. 해방 이후에도 도서관에 대한 인식이 왜곡되어 이어졌다."

개개인의 자기 계발, 취업과 창업 지원하는 열린 공간 되어야

그러다가 1990년대 공공도서관의 제 역할 찾기 노력, 2000년대 민간의 도서관 운동이 있었고, 최근에 공부방 없는 공공도서관이 늘어나게 된 역사가 있었음을 설명했다. 더 나아가 공공도서관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시민 사회를 형성하고, 개개인의 자기 계발을 도우며, 나아가 취업과 창업을 지원하는 열린 공간으로 변화하는 새로운 추세도 소개했다. 

또한 공공도서관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도 바뀌고 있다며 "개인 학습 공간 위주의 활용이 도서관의 다양한 프로그램 이용에 방해가 된다는 시민의 견해가 많다는 점도 참고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칸막이 공부방의 기능 전환에 대해 몇 가지 제안을 했다. 첫째, 기존의 별도로 구분된 공부방을 도서관의 자료와 서비스 공간 속으로 통합하는 안이다. 둘째, 저소득층 등 배려가 필요한 계층을 위해 도서관과는 별개의 공간에 공립 독서실을 설치해 운영하는 안이다. 
 
개인학습공간을 넘어 시민이 탄생하는 제3의 공간으로
▲ 토론회 개인학습공간을 넘어 시민이 탄생하는 제3의 공간으로
ⓒ 서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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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에 이어 지정토론이 있었다. 오지은 광진정보도서관 관장은 칸막이 공부방에 관해 서울과 경기도의 공공도서관을 전수 조사한 데이터를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2000년대 공부방 설치율은 69%, 2010년대 공부방 설치율은 약 54%로, 공부방 설치는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이 외 도서관 크기별 공부방 설치율, 도서관 총 좌석수 중 공부방 좌석 점유 비율, 공부방 운영비도 계산했으며, 공부방 민원의 유형까지 정리했다.

오지은 관장은 공부방 민원의 유형을 분석하며 "공간의 사적 점유를 넘어 서비스의 사유화를 요구하고 있다"며 "공공시설을 경쟁적으로 사유화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부방에 대해 "공공도서관의 전문성을 저해하는 요소"로서, "다양한 서비스를 요청하는 새로운 시대적 상황에 맞게 공공도서관에서 분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도서관은 창작 활동 공간의 역할 회복하고,
학생의 학습‧청년의 취업‧중년의 재취업, 각 기관마다 지원해야


대신 오지은 관장은 지자체 차원의 '목적별 최적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즉, 취약계층 아동과 청소년의 학습 지원, 청년 구직자 학습 지원, 조기은퇴자 재취업 학습 지원 등을 제안했다. 목적이 유사한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각 기관마다 전문화된 기능별 공간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칸막이가 사라진 군포시중앙도서관
▲ 이성희 칸막이가 사라진 군포시중앙도서관
ⓒ 서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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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이성희 군포시중앙도서관 팀장은 기존에 있던 공부방을 없애고 새로운 공간으로 바꾼 경험을 소개해 관심을 받았다. 

군포시중앙도서관은 2016년 자료실 재배치 사업으로 모든 공간의 문과 칸막이를 없애고 전층에서 자유로운 자료 열람이 가능토록 했다. 덕분에 다양한 도서 전시와 소개도 하게 되었다. 이후 도서관 이용자가 다양해지고 만족도도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시민을 위한 사서의 서비스도 좋아졌다고 밝혔다. 

"이용자 층이 다양화되었다. 특히 가족 이용자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용자가 자료실에 머물러 있는 시간, 책을 읽는 시간도 늘어났다. 무엇보다 사서가 이용자에게 사서다운 서비스를 많이 제공하게 되었다."

한편 이권우 도서평론가는 "도서관을 '스카이 캐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며 공부방을 비판하고, "도서관은 창조의 공간, 창작 활동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회는 3시간 동안 참여자들의 높은 집중도와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이용훈 비평가는 "공공 서비스도 적극적으로 도전해야 한다."며 "더 좋은 도서관 서비스를 원하는 시민들과 연대하자"고 제안해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날 토론회는 안민석 국회의원이 주최하고, 한국도서관협회‧경기도사서협의회‧서울시공공도서관협의회가 주관했다. 신기남(국회의원,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장), 최경환(국회의원), 한국도서관협회 회장 이상복,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박영숙(느티나무도서관 관장), 경기도사서협의회 대표 윤명희(파주시중앙도서관 관장), 서울시공공도서관협의회 오지은 공동대표, 문화체육관광부 도서관정책기획단 단장 하부용 등이 함께했다.
 
학교도서관도 마찬가지 문제를 겪고 있다며, 학교도서관도 함께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 열띤 토론 학교도서관도 마찬가지 문제를 겪고 있다며, 학교도서관도 함께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 강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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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공공도서관, #혁신, #공공성, #시민,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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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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