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서 한국과 일본은 숙명의 라이벌이다. 역대전적으로는 한국이 일본에 월등하게 앞서있다. 하지만 일본은 최근 비약적인 발전을 통해 뚜렷한 성장곡선을 그렸고, 단숨에 아시아 정상으로 올라섰다. 최근 기세만 놓고 보면 오히려 일본이 한국을 넘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2019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우승컵을 놓고 다툴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한일의 명암이 엇갈렸다. 한국은 중동의 복병 카타르에게 덜미를 잡히며 8강에서 탈락한 반면 일본은 이란을 꺾고 결승에 안착했다.
 
일본, 이란 제압하고 명실상부한 아시아 최강 입증

일본은 지난 28일(한국시각) 아랍에미리트(UAE) 알 아인의 하자 빈 자예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란과의 2019 AFC 아시안컵 4강전에서 3-0으로 승리했다.

'사실상의 아시안컵 결승전'으로 불렸지만, 경기 전까지 추는 이란으로 크게 기우는 분위기였다. 이란은 일본전을 앞두고 이번 대회에서 12득점 무실점을 기록하는 등 완벽에 가까운 포스를 드러내며 극찬을 이끌어냈다. 수비 축구만 잘한다는 오명을 씻고, 공격에서도 파괴력 넘치는 플레이를 선보인 바 있다.

반면 일본은 전승으로 4강에 올랐지만 매 경기 한 골 차 승리에 그칠 만큼 졸전이 이어졌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전부터 16강 사우디 아라비아, 8강 베트남전까지 일본답지 않은 실리축구로 승리를 거두자 현지 언론의 비판이 쏟아졌다.
 
 2019년 1월 28일 오후 11시(한국시간), 아시안컵 4강 이란과 일본의 경기. 일본의 타쿠미 미나미노 선수(가운데)가 이란의 아쉬칸 데자가 선수(오른쪽)의 태클과 모르테자 포랄리간지 선수(왼쪽)의 수비를 피해 공을 드리블하고 있다.

2019년 1월 28일 오후 11시(한국시간), 아시안컵 4강 이란과 일본의 경기. 일본의 타쿠미 미나미노 선수(가운데)가 이란의 아쉬칸 데자가 선수(오른쪽)의 태클과 모르테자 포랄리간지 선수(왼쪽)의 수비를 피해 공을 드리블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하지만 이란의 압승이 될 것이란 예상과 다르게 오히려 일본의 완승으로 끝났다. 일본은 피지컬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터프한 몸싸움과 강한 전진 압박으로 이란을 괴롭혔다.

이란의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볼 점유율을 높이며 특유의 패싱 플레이를 시도했다. 그동안 걸어 잠그며 '선 수비 후 역습'으로 나왔던 일본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었다. 결국 일본은 후반에만 3골을 몰아치는 화력을 앞세워 이란을 대파했다.

세대교체 성공한 일본, 베스트 11 모두 유럽파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세대교체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있었다. 일본 대표팀을 상징했던 카가와 신지, 오카자키 신지, 혼다 게이스케, 하세베 마코토(대표팀 은퇴) 등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를 당시 주역들이 대거 명단에서 제외됐다.

모리야쓰 하지메 감독은 도안 리츠, 미나미노 타쿠미, 도미야쓰 다케히로, 엔도 와타루, 기타가와 고야, 시오타니 츠카사 등 새 얼굴들을 과감하게 발탁했다. 특히 모리야쓰 감독은 경기마다 상대의 맞춤 전략을 통해 승리를 챙겼다. 이란전은 수비적인 스타일을 과감하게 버리고 공격 축구로 세 골 차 대승을 거뒀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번 이란과의 4강전에서 베스트 11 전원이 유럽파 소속이라는데 있다. 일본의 선수층은 매우 두텁다. 잉글랜드, 스페인, 독일, 프랑스, 터키, 벨기에,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등 유럽 전역으로 뻗어있다.
 
 2019년 1월 28일 오후 11시(한국시간), 아시안컵 4강 이란과 일본의 경기. 일본의 오사코 유야 선수가 선제골을 넣은 후 환호하고 있다.

2019년 1월 28일 오후 11시(한국시간), 아시안컵 4강 이란과 일본의 경기. 일본의 오사코 유야 선수가 선제골을 넣은 후 환호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일본은 아시안컵 우승 4회로 최다 우승팀이다. 2000년대에는 무려 세 차례 정상(2000, 2004, 2011)에 올랐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는 벨기에를 탈락 직전까지 몰고갔다.

심지어 이번 아시안컵의 경우 일본 내에서도 성적에 큰 관심을 두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세대교체는 성공했고, 당당하게 실력으로 결승에 올랐다.
 
'제자리 걸음' 한국, 일본에 뒤처지는 현실

이에 반해 한국축구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라는 지적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축구대표팀은 지난해 파울루 벤투 감독을 선임한 뒤 분위기 쇄신에 성공하며 승승장구했다. 코스타리카, 칠레, 우루과이, 파나마 등 강팀과의 평가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등 무패 행진을 내달리며 59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그러나 아시안컵에서 보인 모습은 실망으로 가득했다. 벤투 감독이 추구하는 능동적이면서 빌드업을 중시하는 전술이 좀처럼 통하지 않았다. 중국은 한국을 상대로 전방 압박을 시도하며 공격적으로 나섰지만 필리핀, 키르기스스탄, 바레인, 카타르 등은 수비에 치중했다.
 
 25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자예드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아시안컵 대한민국 대 카타르 8강 경기. 정우영이 패스를 하고 있다.

25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자예드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아시안컵 대한민국 대 카타르 8강 경기. 정우영이 패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에 후방 빌드업이라는 말이 무색했다. 상대의 압박을 벗겨낸 뒤 빠른 패스 전개와 직선적인 공격으로 골을 잡아낼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지 않았다. 밀집 수비에 대한 파훼법을 준비하지 못한 티가 역력했다.

매 경기 압도적인 볼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5경기 6득점에 머물렀다. 무엇보다 벤투 감독은 어느 팀을 상대하더라도 항상 일관된 4-2-3-1 포메이션과 똑같은 전술을 반복하기 일쑤였다. 벤투 감독의 유연하지 못한 전술 운용은 일본의 모리야쓰 감독과 크게 대조적이었다.

선수단 관리도 대회 내내 말썽이었다. 에이스 손흥민은 컨디션 난조와 혹사로 인해 평소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고, 기성용과 이재성, 황희찬 등이 부상에 시달렸다.
 
주장 완장 꼭 쥔 손흥민 25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자예드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아시안컵 8강전 한국과 카타르와의 경기가 끝난 뒤 손흥민이 주장 완장을 손에 쥐고 그라운드를 나서고 있다.

▲ 주장 완장 꼭 쥔 손흥민 25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자예드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아시안컵 8강전 한국과 카타르와의 경기가 끝난 뒤 손흥민이 주장 완장을 손에 쥐고 그라운드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은 지난 59년 동안 아시안컵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더 이상 '아시아 맹주'라고 자부할 자격이 없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나온다. 축구대표팀은 2007년과 2011년 대회에서 각각 4강에 진출했고, 지난 2015년 아시안컵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번 대회 성적표는 8강에 머물렀다. 2004년 아시안컵 8강 탈락 이후 15년 만에 4강 진출에 실패한 것이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 승리,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한국 축구 부흥기가 다시 찾아오는 듯했다. 그러나 이번 아시안컵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제 이상적인 결과만 기대하기보다 현실을 인정하고 구체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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