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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인권보호센터)에서 열린 ’민주인권기념관 이관식'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왼쪽에서 두번째)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2018년 12월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인권보호센터)에서 열린 ’민주인권기념관 이관식"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왼쪽에서 두번째)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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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의 충돌인가? 대선 레이스의 전초전인가?

지난 주 새로운 광화문광장 설계안을 둘러싼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신경전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눈길을 끌었다.

두 사람 모두 여당 소속이다. 권력을 쥐지 못한 야당 내부에서 지도력 선점 차원에서 세력 간 다툼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하다. 자유한국당 당권을 둘러싼 당내 이합집산이 잘 보여준다. 하지만 여당의 불협화음 내지 분란은 다르다.

지난해 말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수도권 주택 공급 부지에 서울의 그린벨트 지역을 포함하는 것을 놓고 심각한 의견 대립을 빚었다. 서울시가 그린벨트를 풀지 않고 대체부지를 제공하기로 정리되면서 박 시장의 '버티기'가 통한 셈이지만, 두 사람의 힘겨루기는 언론에도 거의 노출되지 않았다. 현직 장관과 같은 여당 소속 지방정부 수장이 싸우면 그 정치적 부담이 결국 대통령에게로 전가된다는 사실을 두 사람은 너무도 잘 알았다.

그러나 김부겸 장관의 선택은 김현미 장관과 달랐다.

박원순 시장이 21일 광화문광장 설계공모 당선작을 발표한지 이틀 만에 행안부 명의의 반박 보도자료가 나왔다. 정부서울청사의 일부 건물 및 부지를 역사광장의 일부에 포함한 서울시 설계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튿날(24일) 오전 서울시와 행안부의 실무담당자 간 협의 테이블이 마련됐지만, 다음날 조간신문(<한겨레>)에 "서울시 안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김부겸 장관의 발언이 보도됐다. 박원순 시장이 이날 마침 예정된 라디오 인터뷰에서 "세상에 절대 안 되는 일이 어딨느냐"고 맞받아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보도자료 배포와 장관의 공개 발언 모두 내부 이견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수면 아래에서 조정해온 여당의 전례와는 거리가 먼 행동들이다. 김 장관은 왜 박 시장과의 이견을 밖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서울시 안에 불만을 드러냈을까?

김현미와 달랐던 김부겸... 왜?

일단 "서울시가 발표한 설계안대로 우회도로를 조성하면 현 정부서울청사의 일부 건물(경비대‧안내실‧어린이집 등)이 일부 철거되고 전면 주차장이 없어진다"는 행안부의 우려가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행정안전부가 23일 공개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기본계획도
 행정안전부가 23일 공개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기본계획도
ⓒ 행정안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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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의 공론화는 2017년 4월 24일 "대통령 집무실을 정부서울청사로 옮기고 광화문광장을 재구성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부터 시작됐다. 이듬해 4월 10일에는 광화문 삼거리의 도로를 없애는 대신 월대를 복원하고 역사광장을 조성한다는 서울시와 문화재청의 기본계획안이 나왔다. 이때의 기본안에 더 세부적인 사항을 담은 것이 박 시장이 최근 발표한 설계공모 당선작이다.

그러나 기본계획안과 설계당선작 사이에 한 가지 변수가 발생했다. 1월 4일 청와대가 대통령 집무실의 광화문 이전을 포기한 것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전제로 서울시가 문화재청 등과 협의해 광화문광장 재구성안을 짜는 동안에는 김부겸 장관도 별다른 이견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게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모 심사위원장) 등의 일관된 설명이다. 김 장관의 의견 제시는 자칫 대통령 공약을 훼손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었다. 지난해 대통령의 의중을 살피다가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는 타이밍을 놓쳤던 김 장관에게 이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러나 대통령 집무실이 빠진 광화문광장은 얘기가 전혀 다르다. 이순신상 이전과 GTX 광화문 복합역사 신설 논란 등을 거치면서 새로운 광화문광장은 온전한 '박원순 프로젝트'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광화문광장은 차기 대선 1년 전인 2021년 5월에 완공된다.

공교롭게도 박 시장과 김 장관 모두 2017년 '문재인 대세론'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나란히 대선의 꿈을 접은 기억이 있다. 둘 모두 '2022 대선 재도전'이 유력하다. 그러나 새로 단장된 광화문광장에 '성공작'이라는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 2005년 청계천 복원을 마무리하고 대선주자로 우뚝 선 이명박 대통령의 예처럼 박 시장에게 큰 호재가 될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김부겸 장관은 설 연휴 이후로 예상되는 개각에서 장관 자리를 내려놓고 당으로 복귀할 것이 유력한 상황. 광화문광장 이슈의 주요 당사자로서 발언권을 행사하고 대선주자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정치인으로서는 절묘한 수를 놓은 셈이다.

이 총리 훈계의 정치학

비록 갈등이 표면화된 계기는 광화문광장 설계 문제였지만, 사태의 뿌리에 지방분권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박 시장은 정치 입문 전부터 연방제 수준의 과감한 지방분권을 주장해왔다. 지난해 이같은 이상에 근접한 문재인 정부의 지방분권 개헌안이 좌초된 것에도 그는 큰 아쉬움을 표시했다.

개헌이 무산된 뒤 김 장관의 행안부가 지방정부에 권한 일부를 이양하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박 시장이 중심이 된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는 23일 "중앙정부에 의한 통제, 관리는 달라진 게 없다"는 의견서를 내놓았다. 일부 지방정부 수장들은 "행안부 장관에게 지방의회 결정 사항에 대한 재의요구와 취소 명령권까지 준 지방자치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굴종을 강요하는 악법'"이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다음날 김 장관은 서울시의 광장 설계안에 대한 분노를 <한겨레> 기자에게 토해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광화문광장 쟁탈전'은 어떻게 막을 내릴까?

29일 국무회의에서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둘의 갈등에 빗대 "정부와 지자체 사이에 견해 차이가 거칠게 표출되면 국민은 불안해하시고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정부와 지자체는 어느 경우에도 절제를 지키며 견해 차이를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라고 훈계하는 풍경이 연출됐다. 휴가 중인 박 시장은 불참했지만, 김 장관은 이 총리의 말을 묵묵히 경청했다.

대권을 꿈꾸는 두 사람에게 역시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총리가 훈수를 둘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 달가운 상황 전개는 아닐 것이다.

박 시장의 핵심 참모는 "박 시장은 언제라도 김 장관을 만나서 툭 터놓고 현안을 얘기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했고, 행안부 관계자도 "(김 장관이) 더 이상 할 얘기는 없다, 서울시가 안을 가져오면 충분히 협의를 해보겠다"고 답했다.

태그:#김부겸, #박원순, #김현미, #이낙연, #광화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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