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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술을 만들기 위해 누룩과 술밥, 물을 같은 비율로 섞는다. 정월초하루가 다가올수록 항아리에선 술 익는 소리가 수런수런 나고 맛이 깊어질 것이다.
 맛있는 술을 만들기 위해 누룩과 술밥, 물을 같은 비율로 섞는다. 정월초하루가 다가올수록 항아리에선 술 익는 소리가 수런수런 나고 맛이 깊어질 것이다.
ⓒ <무한정보> 김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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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유의 설 명절이 다가온다. 가족과 친척들이 함께 모여 조상들께 새해인사를 드리고 서로가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덕담으로 정을 나누는 시간이다. 정성스레 마련한 음식과 함께 떡국으로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

예산 지역에 명절 아니어도 술 익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는 가정이 있다. 충남 예산군 신양면 죽천리 박천희(75)·이선희(70) 부부. 설을 앞두고 새 술을 빚는다는 소식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지난 달 21일, 마을 안으로 들어서니 한 집에서 밥 짓는 냄새 머금은 김이 퍼져 나온다. 술 단속을 나오던 시절, 혹여 술 익는 냄새 퍼질까 마음은 졸여도, 손은 놓지 못했던 박씨 어머니의 마음으로 이어져온 귀한 술이다.

"시집 오고 나니까 집에서 항상 이 술을 빚더라고요. 시어머니께 술 빚는 법을 배웠어요. 처음에는 많이 버렸죠. 잘못 만들면 시니까... 아버님 때부터 전해오는 술이라 우리 아저씨도 좋아해요. 이거 마시면 평소에 일할 힘도 얻고 그런대요. 그래서 한창 더운 7~8월만 빼고 만들어요."

이선희씨가 들려준 박씨 집안 가양주의 역사다. 그렇게 말하고는 잘 빻아놓은 누룩을 꺼내 깨끗한 천막 위에 고루 펼친다. 술밥이 다 되면 한 몸이 될 준비가 끝났다.

"누룩은 방앗간에서 밀로 만든 것을 사와요. 집에서 짚으로 싸 열흘 정도 더 띄우죠. 잘 떠야 좋은 술이 빚어지니 누룩 띄우는 것부터 중요한 과정이에요." 고두밥 짓는 찜솥을 여니 구수한 김이 얼굴을 크게 덮는다. 

"술밥 한번 드셔보슈." 박씨가 술 담을 항아리가 있는 방을 덥히기 위해 화목 보일러에 불을 넣다가 고두밥 푸는 것을 보고 한마디 건넨다.

김을 모락모락 내며 부서지는 밥을 뭉쳐 입에 넣었다. 보슬보슬하고 참 고소하다. 직접 농사지은 찹쌀과 멥쌀로 술밥을 지으니 맛이 좋을 수밖에.

정성 가득 차오르는 술

이씨가 밥과 누룩을 섞기 시작한다. 고루 섞일 수 있게 슬슬 식혀가며 충분히 버무려야 좋단다.

박씨도 대주걱을 가져와 거들며 재밌는 사연 하나를 전했다.

"우리는 밥이랑 누룩, 물을 거의 같은 비율로 넣어요. 물을 많이 안 섞으니까 도수도 웬만치 돼. 용수 박아서 맑은 술을 뜨는 게 아니고 소쿠리에 짜서 막걸리 같이 탁주로 저어가며 떠먹어요. 그러니 뻑뻐억해서 '뻑주'라고 불러유. 내 집서 내 입맛에 맞게 만들어 먹는거쥬. 허허."
 
박천희·이선희 부부가 함께 누룩과 술밥을 골고루 섞고 있다. 부부는 48년 세월동안 함께 오순도순 가양주를 빚어왔다.
 박천희·이선희 부부가 함께 누룩과 술밥을 골고루 섞고 있다. 부부는 48년 세월동안 함께 오순도순 가양주를 빚어왔다.
ⓒ <무한정보> 김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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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이곳에서 벼농사, 밭농사를 지으며 2남 1녀를 키웠다. 박씨가 15년째 맡아오던 마을 이장 자리를 지난해 내려놓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 집에 들러 '뻑주' 맛을 봤다. 면사무소 직원, 동네 사람들, 고물장수 할 것 없이 박씨는 사람들에게 술 한 잔 내어주고 손에도 쥐어줬다.

"옛날에야 이렇게 물을 적게 넣구 담궜간. 일꾼들 먹이려고 물 잔뜩 넣어 양을 늘렸지. 그러니 술이 맹맹하니 맛이 안 나지. 우리 집에선, 아버지가 직접 빚은 술을 좋아하시니까 어머니가 계속 빚으셨는데, 예전에 술 단속 나온다고 하면 자갈길 급히 오시다가 넘어지기도 하시고 그러셨쥬. 그런 세월 거쳐 지금까지 만드는 거유."

추억을 되새기는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어느새 누룩과 술밥이 하나가 됐다. 이것을 적정한 온도의 물과 잘 버무려 항아리에 담아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비율과 온도. 48년 세월 술을 빚는 동안 이씨의 손은 온도계, 눈은 계량기가 됐다.

"눈으로 손으로 해요. 골치 아프게 비율 따지남? 하도 오래하니 감으로 척척 잘 맞지. 발효시키는 것도 양마다 정도가 달라요. 다 담고 나면 수시로 들여다보면서 확인해야죠."

이씨가 양동이에 손을 담고 뜨거운 물과 찬물을 섞으며 온도를 조절한다. 옆에서 한번 쓱 보던 박씨가 "따뜻한 물 더 안 필요혀?" 하니, 이씨가 "한 동이만 더 가져 오셔요" 한다. 부부가 척하면 척이다.

정월초하루가 다가올수록 술 익는 소리가 수런수런 나고 맛이 깊어질 것이다. 이 귀한 술은 설 명절에 반주로 상에 오를 테고, 가족들은 술잔을 채우며 정을 나눌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도 실립니다.


태그:#집에서 담근 술, #가양주, #누룩, #뻑주,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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