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포스터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포스터 ⓒ (주)디오시네마


중국 베이징의 스차하이(什刹海)는 호수에 비친 야경으로 유명하다. 거대한 호수의 물결은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야경을 담아낸다. 하지만 이 호수에는 스차하이 뒷골목의 다리가 불편한 노인, 아스팔트의 지독한 냄새, 지하철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구걸하는 아이의 모습은 담기지 않는다.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의 도입부는 물결이다. 이 물결은 화려한 도쿄의 모습만을 담아낸다. 그 이면에 숨은 죽음과 가난, 외로움은 담아내지 않는다. 화려한 밤의 불빛은 회색 빌딩에 가려진 인간의 소외와 아픔이 나오지 못하도록 더욱 환하게 밤하늘을 비춘다. 마치 어둠이 싫다는 듯이.
 
염세주의 여자와 희망을 꿈꾸는 남자

미카(이시바시 시즈카)는 낮에는 간호사, 밤에는 부족한 생활비 충당을 위해 술집에서 일한다. 그녀의 직업은 낮과 밤이 다르다. 낮이면 그녀는 죽음을 맞이한다. 돌보던 환자가 죽고 그 시신을 향해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밤이면 남성들이 모인 술집에서 즐거움을 판다.

누군가는 죽음에 슬퍼하고 고통스러워 하지만 누군가는 술과 함께 즐거움에 취한다. 미카에게 죽음과 사랑은 의미 없는 것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했고 사랑을 잃는 감정과 그 허무함을 일찍 알게 되었다. 미카에게 도쿄에서의 삶은 그 의미 없는 화려함만큼 죽음도 사랑도 허무하기 짝이 없다.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스틸 컷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스틸 컷 ⓒ (주)디오시네마

 
신지(이케마츠 소스케)는 일용노동직에 종사하고 있다. 학창시절 똑똑했던 그였지만 한쪽 눈을 실명하면서 공사판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신지는 세상을 반밖에 보지 못하지만 그만큼 그 반쪽에 대해 깊게 고민한다. 그는 공사판에서 많은 말을 내뱉는데 그 이유는 현실과 일터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그들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서이다. 평소의 신지는 책 읽기를 좋아하며 과묵하고 진중하다. 하지만 자신처럼 고독한 공사판의 동료들과 옆집의 노인을 위해 신지는 입을 연다. 그가 바라보는 반쪽의 세상은 희망을 안고 살아갈 가치가 있는 공간이다.
 
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신지는 가난하고 힘들지만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외로움과 소외에 빠진 동료들을 위해서는 거침없이 지갑을 열고 두서가 없는 말이지만 수다스럽게 입을 연다.

반면 미카는 삶을 죽기 위해 살아가는 의미 없는 걸음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신지와 미카의 만남은 쉽지 않다. 신지의 직장 동료이자 미카와 데이트를 하던 남자인 토시유키의 죽음 앞에서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아름답게 빛나는 도쿄의 야경, 청춘의 현실은...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스틸 컷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스틸 컷 ⓒ (주)디오시네마

 
신지는 토시유키의 죽음에 절망한다. 미카와 데이트를 시작하면서 활발해진 그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반면 미카는 그의 장례식장에서 웃음을 터뜨린다. 그녀는 죽음의 허무함에 대해 말하며 어차피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은 죽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사랑도 의미가 없다. 

염세주의적인 미카와 꿈이 있지만 자신의 현실 때문에 스스로를 어필하지 못하는 신지는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이 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도쿄의 밤하늘에서 빛이 아닌 블루(우울)를 바라본다는 점이다.
 
신지를 비롯한 일용노동자들은 화려한 도쿄에 있지만 본인들의 삶은 화려함과 거리가 멀다. 그들은 술집에 가서 돈을 써도 거지 취급을 받는 것처럼 도쿄 올림픽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지만 올림픽이 끝나면 갈 곳을 잃어버린다. 신지와 함께 일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은 많은 빚을 지고 이곳에 왔지만 올림픽이 끝나면 일본을 떠나야 한다. 그들은 도쿄의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기 위해 아침을 바치지만 밤의 불빛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아름답게 빛나는 도쿄의 야경 중 그들을 위한 불빛은 없다.
 
신지는 미카에게 밤하늘을 바라보며 파랗다고 말한다. 불빛들 때문에 사라진 어둠 속에서 신지는 우울함을 발견한다. 화려한 야경은 어둠을 가린다. 어둠에 갇힌 사람들은 그 안에서 소외감과 외로움, 그리고 우울함을 느낀다. 그들이 바라보는 밤하늘은 짙은 파란색인 블루, 즉 우울함이다. 하늘에 뜬 별은 어둠을 밝히고 나아갈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어주지만 달을 가려버리는 조명 불빛은 거리를 화려하게 화장시키고 회색건물에 갇힌 고독하고 외로운 이들을 가린다. 영화는 도쿄올림픽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방사능 수치를 은폐하는 일본의 모습을 담아낸다.
  
우울한 색을 담고 있는 도쿄의 밤하늘이지만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스틸 컷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스틸 컷 ⓒ (주)디오시네마

 
감독이 어느 시집에서 감정적인 영감을 얻어 완성한 이 이야기는 도쿄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우울한 감성을 담아낸다. 동시에 두 사람, 신지와 미카의 사랑의 동력인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삶이 하루하루 죽음을 위해 나아가는 과정이라면 인간에게 삶은 살아갈 필요가 없는 길이다. 하지만 그 길에 꽃이 필 때도 있고 시원한 바람이 불 때도 있기에 삶을 걸어간다. 신지와 미카는 서로에게 등불이 되어줄 만큼 빛나는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짙은 어둠 속에서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존재가 되어줄 수 있다.
 
하늘에 빛나는 별만 있다면 안정과 휴식을 취하는 밤은 사라진다. 빛에서 사는 이들이 있다면 어둠에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이들의 삶은 비록 외롭고 힘들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줄 수 있다고,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비록 도쿄의 밤하늘은 가장 짙은 우울함을 품은 색깔이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손을 잡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영화다. 2월 14일 개봉.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립니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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