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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가족'이 기준인 한국의 명절 문화에서 비혼은 '천덕꾸러기'거나 '낯선 존재'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비혼 인구가 날이 갈 수록 증가하고, '정상가족'의 틀이 조금씩 깨지면서 새로운 명절문화를 원하는 목소리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프로비혼러'들에게 다른 명절의 가능성을 들어봤습니다.[편집자말]
양고기 볶음
 양고기 볶음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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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을 맞이해 기막힌 레시피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름하여 토마토 양고기 볶음. 일단 양고기를 사야 하는데, 나는 주로 이태원이나 차이나타운, 가락시장 등에서 구매한다. 어느 부위든 상관없다. 인터넷으로 주문해도 된다. 이 요리는 양고기를 구하는 것으로 반 정도 끝났다고 보면 된다.

이제 토마토소스와 방울토마토를 준비한다. 방울토마토는 살짝 삶아서 껍질을 버리고 알맹이만 쓴다. 마늘과 양파, 당근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둔다. 준비가 됐으면 팬에 오일을 두르고 토마토소스와 방울토마토, 준비한 야채를 넣고 볶는다. 소스가 슬슬 끓기 시작하면 양고기를 넣는다. 기호에 따라 고수를 넣어도 좋다. 여기에 우유나 레드와인을 넣기도 하지만 나는 커리파우더와 쿠민을 뿌려 볶는다. 끝내주는 맛일 테다.

대관절 느닷없는 레시피를 소개한 이유는 이렇게 명절 연휴를 보내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10년 전 즈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재산 분배 문제였는지 뭔지로 아버지 형제들끼리 대판 싸운 이후 우리 가족은 명절에 연연하지 않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설과 추석은 긴 연휴가 돼버렸고, 그동안 한번도 고민한 적 없던 것들을 고민해야 했다.

"뭘 먹지?"

명절을 친척과 함께 보내며 차례를 지내는 걸 당연하게 여기던 때는 한번도 해본 적 없는 고민이었다. 그렇게 근 10년이 지나자 이제 우리 가족은 연휴 내내 하나씩의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고 있다.

몇 년 전, 나는 비혼을 선언했다. 부모님께도 결코 내가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아 대를 잇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단단하게 못을 박았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와 직면했다. 그동안 내온 축의금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뒤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인간은 태어나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여러 의례를 거친다. 관혼상제로 대표되는 일련의 의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인의 삶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인식해온 개념이었다. 적어도 과거의 어느 시점까지는 그랬다.

명절, 이번엔 좀 변화해보자
 
명절이 언제까지 이런식의 모습으로 남을 이유가 없다.
 명절이 언제까지 이런식의 모습으로 남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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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에게 관혼상제 같은 의례가 있다면 인간의 사회 혹은 공동체라 할 수 있는 집단에도 의례라는 것이 있다. 크리스마스나 석가탄신일, 광복절이나 노동절이 이런 사회적 의례에 포함된다. 당연히 설날이나 단오, 추석과 같은 전통적 명절도 사회적 의례로 묶을 수 있다.

인간의 의례 중에서 탄생과 성장, 죽음과는 달리 결혼은 이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된 지 오래다. 필요하다면 하고 굳이 필요 없다면 안 해도 그만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의례에서 명절은 결혼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가족들이 필요하다고 합의하면 하면 되고 그렇지 않다면 안 해도 그만인 것이다.

이제 곧 설이니 설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설날은 '삼가다', '조심하다'라는 의미의 '사간다'라는 옛말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짐작된다. 언제부터 설을 특별한 날로 지정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새해가 시작되는 날에 특별히 몸과 마음을 정비하고 경거망동을 삼가는 의미로 이런저런 의식을 치러왔던 기록이 중국어 문화권 곳곳에 남아있다.

이런 자투리 지식이야 사실은 알거나 말거나고, 우리에게는 빨간 잉크로 인쇄된 날이 얼마나 길게 연결돼 있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시대가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100km가 넘는 입자가속기를 건설하거나 달 뒷면에 탐사선을 보내거나 로켓의 추진체에 제어장치를 달아 안전하게 착륙시켜 재활용하는 시대다.

이런 시대가 도래하면서 '홍동백서' 따위는 원래 존재하지도 않던 거라는 엄청난 사실도 발견됐다. 게다가 명절이나 제사 음식은 모두 양반 남자들이 준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 정체불명의 칼럼은 명절을 거부하고 싶은 사람들과 명절마다 "결혼 언제 할 거니?"라는 질문을 들어야 하는 청년들과 어쩌다 비혼을 선언한 자식 때문에 생각지도 못했던 손익을 따져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우리가 설날의 기원이 어땠는지 알 수 없듯, 전통이니 의례니 하는 것들은 변화를 거듭하기 마련. 삶이란 이런 변화하는 과정이 빽빽하게 나열되어있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이번 설엔 용기를 내어 양고기 토마토 볶음을 하면서 변화를 능동적으로 이끌어보자는 것이다.

뒤에 이야기 하자던 그 축의금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이놈이 결혼 안 한다며 선언을 했다니까 글쎄! 나 원 참. 그나저나 이번 토요일에 뭐하냐?"며 친구들과 술 약속을 잡곤 하신다. 나는 원고료를 받으면 양고기를 사러 갈 생각이다.

태그:#설날, #전통, #비혼, #양고기,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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