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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돼지의 해가 밝았다. 그에 맞춰 돼지를 앞세운 다양한 상품과 덕담, 이벤트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 2일 SBS <생방송 투데이>는 황금돼지의 해를 맞이해 '대통 삼겹살' 콘텐츠를 내놨다. 이날 방송에선 다양한 삼겹살이 소개되며 모두가 황금돼지의 해를 기뻐했다.
  
방송을 보며 묘한 위화감을 떨칠 수 없었다. '돼지의 해니까 돼지를 먹으러 가자'라는 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황금돼지의 해랍시고 돼지 이모티콘, 캐릭터 등이 나오며 수많은 곳에 돼지가 새겨지지만 정작 살아 있는 '진짜' 돼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를 떠올렸다. 

#개사랑과 #돼지사랑 

인스타그램에 '#돼지사랑'을 검색하면 삼겹살부터 목살, 곱창 등 수많은 돼지 '고기' 사진이 뜬다. 돼지의 사체를 먹으면서 해시태그로 #꿀꿀 #돼지사랑 등을 달고 기뻐하는 모습이다.

이상한 기분을 뒤로하고 '황금개'의 해였던 2018년을 떠올리며 '#개사랑'을 검색했다. 화면이 사랑스러운 강아지, 개 사진으로 가득 찼다. 몇 년 전에 읽었던 멜라니 조이의 저서 <우리는 왜 개를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의 제목이 참 기가 막히게도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돼지는 돼지로 태어나지 못하고 돼지고기로 태어났다.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위) '#개사랑' 검색 결과 (아래) '#돼지사랑' 검색 결과.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위) "#개사랑" 검색 결과 (아래) "#돼지사랑" 검색 결과.
ⓒ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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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에는 '황금개'를 앞세운 상품이 쏟아졌다. 뿐만 아니라 반려견을 위한 장난감, 사료, 옷 등에 대해 다양한 이벤트도 진행됐다. '개'의 해라서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마찬가지로 황금돼지 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살아 있는 돼지를 위한 것은 없다. 아무도 텀블러에 돼지 캐릭터만 새기지 말고, 살아 있는 돼지의 삶에 주목해보자고 말하지 않는다. 개와 고양이에게 장난감이 필요하듯, 돼지에게도 장난감이 필요하지 않을까를 질문하지 않는다. 똑같은 황금, 똑같은 시기. 바뀐 것은 '개'냐 '돼지'냐 뿐이다.

살아 있는 돼지는 안 되지

돼지 캐릭터 상품을 보며 살아 있는 돼지를 떠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보다 불판에 구워지는 삼겹살 덩어리가 먼저 떠오르는 건 왜일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간단히 말하면 '눈에 안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살면서 우리가 살아 있는 돼지를 볼 기회는 거의 없다. 돼지와 교감할 기회는 더욱 없다.

어린 시절에 우리가 마주할 수 있었던 '살아 있는' 돼지라곤 (고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아기돼지 삼형제>나 <샬롯의 거미줄> 따위의 이야기책, 조금 더 생생하게라고 해봤자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뿐이다. 실제 삶에서 볼 수 있는 돼지의 흔적은 식탁에 올라오는 고기가 전부다.

그러니 코끼리 다리를 만지며 "코끼리는 두껍고 길고 둥근 기둥"이라 말하는 것처럼 "돼지=맛있는 고기"가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의 '진실'을 마주할 기회는 분명 있다. 돼지가 돼지고기가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대부분 어렴풋하게는 알고 있다. 모르더라도, 죽는 일이 돼지에게 유쾌한 일이 아님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미 '돼지=맛있는 고기' 공식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서, '진짜로' 살아 있는 돼지가 떠오를 때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존재를 거부한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생명을 취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고기를 먹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라는 생각이 충돌한 결과다.

이 불편함은 '동물' 돼지의 존재를 더욱 은폐한다. 결국 남는 것은 고기와, 웃고 있는 돼지 캐릭터뿐이다. 가상과 사체는 소비는 괜찮지만 그 뒤편의 생명은 괜찮지 않은, 씁쓸한 현실이다.

황금돼지의 해니까
 
황금돼지의 해를 맞아 돼지를 앞세운 상품이 즐비하다.
 황금돼지의 해를 맞아 돼지를 앞세운 상품이 즐비하다.
ⓒ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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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돼지의 해니까, 돼지띠의 해라는 이유로 더 많은 돼지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짜 돼지의 삶이 조금 더 조명되었으면 좋겠다. 멋대로 12간지에 돼지를 넣어놓고, 12간지를 해와 연결해두고 '올해는 돼지니까 돼지고기로 운수대통하자'는 것은 잔인하다. 단언컨대 돼지 캐릭터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이때, 우리가 고기를 바라보는 시선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청년언론 <고함20>에도 실립니다.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 육식주의를 해부한다

멜라니 조이 지음, 노순옥 옮김, 모멘토(2011)


태그:#황금돼지의해, #황금돼지, #2019년, #기해년, #돼지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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