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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Montenegro) 코토르(Kotor) 구시가는 작은 광장들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골목이 마치 혈관처럼 길게 뻗어나 이어지고 있었다. 가장 좁은 골목은 두 사람이 나란히 설 수도 없을 정도로 좁다. 여행자들은 이렇게 좁은 길을 두고 내가 지나가겠다는 뜻의 '렛미 패스(Let Me Pass)'라는 별명을 붙였다.
 
코토르 골목길. 좁은 골목길에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 코토르 골목길. 좁은 골목길에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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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좁은 골목길에서 여행자들의 물결에 묻혀 내가 가려는 다음 광장으로 이동했다. 골목길 발코니 위 화분 속에서는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었다.

베네치아공화국 시절부터 아드리아 해 남부의 주요 교두보였던 코토르. 선장과 선주들이 중심이 되어 이끌었던 귀족 도시였다. 그래서 나는 코토르의 해양역사를 전시하고 있는 코토르 해양박물관(Kotor Maritime Museum)을 찾아가기로 했다. 이곳은 원래 17세기 후반에 코토르로 이주한 그르구리나(Grgurina) 가문에서 1732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그르구리나 궁(Grgurina Palace)이었다.
 
코토르 해양박물관. 코토르 뱃사람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 코토르 해양박물관. 코토르 뱃사람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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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부터 보카 마린(Boka Marine)이라는 해양협회가 유물을 모으기 시작했고, 1900년에 이곳에 박물관을 열었다. 1938년까지 박물관은 점차 확대되어 건물 1층을 방문객들에게 개방하였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2년에 건물 전체가 리모델링 되어 박물관으로서의 면목을 갖추었다. 코토르를 덮쳤던 1979년의 끔찍했던 대지진에 건물이 무너지면서 박물관은 문을 닫았지만, 1989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

친절한 박물관 직원의 안내를 받아 나는 1층 전시실로 들어섰다. 중앙 홀에는 16~18세기에 몬테네그로의 해상 교역을 주도했던 바다 사람들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물들은 그들이 몬테네그로 주변 외국의 군함과 상선에서 활발히 활동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당시 거대한 적이었던 터키에 대항하여 아드리아해와 지중해에서 해상무역의 새로운 길을 건설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코토르 선박의 역사. 범선 등 코토르 선박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 코토르 선박의 역사. 범선 등 코토르 선박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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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시실에는 코토르 만 리산(Risan) 마을의 유력한 가문이었던 이벨리치(Ivelic) 가문의 거실이 과거 모습 그대로 전시 중이다. 이 거실의 과거 유산들은 이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었던 블라디미르 이벨리치(Vladimir Ivelic)가 장식했던 범선의 그림들로 둘러싸여 있다.

모든 그림들이 범선이니, 전시실 안에 과거의 바다 내음이 진하게 전해오는 것 같다. 코토르 만의 바다에 이 거대한 범선들이 운항하던 모습은 아름답고도 장관이었을 것이다.
 
중앙홀 전시실. 그 옛날 코토르 바다의 내음이 전해지는 듯 하다.
▲ 중앙홀 전시실. 그 옛날 코토르 바다의 내음이 전해지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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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의 유리 진열장에는 나폴레옹 군대와의 전쟁에서 이벨리치 가문이 프랑스 군으로부터 압수한 프랑스제 무기가 남아 있다. 유리 진열장 안에 한 가문의 총, 칼이 한 가득 들어 있다.

당시 코토르의 귀족들은 열강들로부터 자신들의 영토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쳐가며 싸웠던 것이다. 이 전시실 안에 들어서면, 작은 바닷가 도시의 경제적 번성 뒤에는 스스로 총으로 무장하여 가족들을 지키던 귀족 가문들의 투쟁이 있었음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그런데 흥미를 끄는 내용은 코토르의 귀족들이 해적에 대항했다는 내용이었다.

"여기, 마르코 이바노비치(Marko Ivanovic)라는 선장의 초상화가 걸려있는데, 그가 1756년 피라우스 항에서 해적들과 싸우다 숨졌다고 되어 있어. 페타르 젤라릭(Petar Zelalic) 대위도 해적과의 전투에서 보여 준 용기로 지중해의 몰타 기사단에 들어갔다고 자랑스럽게 기록되어 있어."

"작고 부유했던 코토르의 바닷가에는 항상 이들의 재산을 노리던 해적들이 자주 출몰했지. 스스로 자신들의 재산을 총칼로 지켜야 했던 이들의 역사가 처절하군."


박물관에 전시된 구식무기들도 주로 코토르 만에서 코토르 인들이 해적들과의 해상 전투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무기들이다. 오스트리아산 소총 스툭스(stucs)와 소총의 화약, 구경이 큰 라이플 총 트롬본(trombun), 터키식 단도 등이 진열장 안에서 아직도 날카롭게 빛나고 있다.

17~18세기의 차가운 철제 권총은 코토르 만에서의 과거 해전에서 해적에 대항하여 사용되었다. 큰 진열장 안에는 금과 은으로 화려하게 도금된 짧은 소총 레데니스(ledenice)와 즐라티크(zlatke)가 있다. 18세기의 무거운 소총인 일명 푸스코니(puskoni)도 전시되어 있다.
 
권총의 예술성. 해적에 대항해 사용했던 권총이 너무나 아름답다.
▲ 권총의 예술성. 해적에 대항해 사용했던 권총이 너무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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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보아도 전투에 사용되었던 총이 너무나 예쁜 예술품이야. 무기에 안 어울리는 말이지만 장인이 온 정성을 들여 만든 작품을 보는 것만 같아. 방 하나가 온통 창과 칼 등의 무기로 가득 채워져 있네. 당시 코토르가 해적들과의 싸움에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는지 알겠어."

전시실 중에는 1,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코토르와 관련된 전시실도 있다. 유명한 전시물은 1차 세계대전 당시인 1918년에 코토르 만까지 들어온 오스트리아의 전함에 대항해 반격을 시도한 순양함 산켓 게오르크(Sankt Georg)이다. 순양함 모형 아래에는 당시 반란에 참여했다가 코토르 교외에서 처형당한 용감한 선원 4명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들은 거대 전함에 맞서 선상 폭동을 조직한, 독립의 영웅으로 추앙 받고 있었다.

전시실 한 켠에 마련된 구축함 자그레브(Zagreb) 뱃머리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역사적 흔적이다. 1941년 4월 당시 밀란 슈파시크(Milan Spasic)와 세르지 마세라(Sergej Masera) 중위는 구축함 자그레브를 적의 수중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함께 이 전함을 코토르 만에 침몰시켰다고 한다.
 
코토르의 전함. 세계대전 당시 활약하던 독립영웅들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 코토르의 전함. 세계대전 당시 활약하던 독립영웅들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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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독립영웅들의 사진은 구축함 자그레브 유물 위에 전시되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 몬테네그로는 21세기에 독립하기 전까지 부단한 독립의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마치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하는 이들의 행동은 몬테네그로 인들의 마음에 독립의 열망으로 계속 이어져 왔던 것이다.

한참 동안 역사 산책을 즐기던 나는 해양박물관에서 나와 다시 코토르의 햇살을 즐겼다. 나는 박물관 답사에 다리가 지친 아내와 함께 몬테네그로 음식여행에 나서기로 했다. 코토르 구시가에 자리잡은 식당들은 대부분 해산물과 파스타를 주로 팔고 있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몬테네그로 가이드 이바나가 구시가 안내 도중에 추천해 주었던 페스카리아 데카데론(Pescaria Dekaderon)이었다. 트리푼 성당(St. Tryphon Cathedral) 앞의 넓은 광장에 야외 좌석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식당이다. 

우리는 코토르 특산 해산물과 함께 몬테네그로의 피자, 차(茶), 터키 커피를 주문했다. 해산물 접시에는 오징어, 새우, 홍합이 으깬 감자와 함께 나왔다. 몬테네그로에서는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에 음식을 짜게 내는 그들만의 전통이 있는데 이 해산물들도 역시 맛이 약간 짜다. 음식 짠 게 싫은 사람들은 싫어할 맛이지만 오징어 등과 어울린 짠 맛이 묘하게 어울려 만족스러웠다.
 
코토르 음식. 해산물의 짠맛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상당히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 코토르 음식. 해산물의 짠맛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상당히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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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놀라운 맛은 터키 커피였다. 몬테네그로도 터키의 지배를 받았던 국가여서 터키의 음식문화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데, 터키 커피가 대표적이다. 마치 걸쭉한 검은 죽같이 생긴 터키 커피는 외관상으로도 호기심을 끌만큼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 맛은 커피의 쓴 맛을 모두 집대성해 놓은 것 같은 강한 쓴 맛이었다.

우리는 식당에 한동안 앉아서 대성당 광장 앞을 찾아온 여러 나라의 여행객들을 구경했다. 열심히 걷다가 다리를 편하게 앉아서 쉬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게다가 이국적인 음식을 먹고 몸이 나른해지니 마치 느낌은 술이라도 마시고 앉아 있는 것 같다.

코토르 성을 나와 우리는 차가 있는 시 외곽의 주차장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육지 깊숙한 곳에 있는 코토르 만까지 들어온 거대한 크루즈 선박이 시야를 압도하면서 웅크리고 있었다. 그렇게 큰 선박이 푸른 아드리아 해의 바다 위에 둥둥 떠 있었다.
 
크루즈 선박의 위용. 바다 깊숙이 들어온 크루즈 선박 크기가 시야를 압도한다.
▲ 크루즈 선박의 위용. 바다 깊숙이 들어온 크루즈 선박 크기가 시야를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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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기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여행기를 게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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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