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우성.

배우 정우성이 설연휴를 앞두고 영화 <증인>으로 관객과 만난다. 이한 감독의 신작으로 영화는 법정 장르물의 틀 안에서 인간의 따뜻함을 표현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억울한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온 인권변호사가 한 대형 로펌에 들어간다. 이번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가진 자를 대변해야만 한다. 승진이 걸린 중요한 재판에서 그는 진실을 목격한 자폐아 지우(김향기)를 알게 되며 다시 한번 흔들린다. 신념을 버린 줄 알았지만 일말의 양심을 확인한 셈. 그런 의미에서 영화 <증인>은 인간의 신념과 삶의 방향을 묻는 작품이기도 하다.   

배우 정우성이 그 인권 변호사 순호를 맡았다. 청춘의 상징에서 어느덧 선과 악, 폭력과 권력이라는 거대 담론에 몸을 던졌던 그가 오롯이 한 개인이 돼 관객과 만나게 된 것.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등 특유의 따뜻한 시각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봐 온 이한 감독과 손을 잡았다. "시나리오를 받아 읽는 것만으로도 치유받는 느낌이었다"고 그가 고백했다.

"영화의 시작점이 순호의 타협이잖나. 그 타협으로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지우라는 아이를 운명처럼 만나며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그러면서 성장하는 것이지. 타협하기 전 자신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봤는지 지우를 통해 깨달으면서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인물로 해석했다." 

"온기를 느껴보고 싶었다"

영화의 주 배경은 법정과 서울 광화문 일대. 순호가 근무하는 대형 로펌이 있는 곳이다. 직접적으로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 사회의 주요 부조리했던 사건들이 떠오를 법하다. 소비자를 배반한 기업을 변호한 대형 로펌,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던 변호사들이 은유적으로 담겨 있다. <증인>의 미덕은 바로 그런 부조리한 현실 요소가 인간적인 캐릭터 틈새에 잘 스며들어 있다는 점. 정우성 또한 "그 인간적 온기를 느껴보고 싶었다"며 동의했다.

"이한 감독님의 전작을 보면서 작은 일상에 숨어 있는 소외된 사람에 대한 편견을 건드리고, 무거운 주제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공유하는 분이라 생각했다. 같이 해보니까 정말 심성이 좋으시고, 이 사회가 따뜻하게 바뀌길 원하는 분 같더라. 많은 감독님이 장르에 대한 호기심으로 여러 도전을 하는데 이한 감독님은 본인의 성향 안에서 온전히 무엇인가를 추구하시는 모습인 것 같다. 꿋꿋하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증인> 역시 큰 주제가 있는데 그걸 강요하지 않은 채 소소하게 그리고 있다. 그 여운이 참 길더라. 배우로서 지난 몇 년간 드센 캐릭터를 많이 했잖나. 시대적 함의가 있는 작품도 했었고.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는 피로가 있었을 것이고. 근데 <증인>은 마음 툭 놓고 날 돌아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영화 <증인> 스틸 사진

영화 <증인> 스틸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자신이 변호하는 대상에게 불리하지만, 순호는 지우를 통해 진실을 느끼고, 심지어 지우를 지지하기 시작한다. 이런 그에게 세상 사람들은 멍청하다고 손가락질 하면서 현실을 직시하라고 충고할지도 모른다. 순호가 신념을 저버리고 로펌에 들어간 것도 그런 현실적 문제 때문이었다. 결국 <증인>은 법정 드라마의 탈을 쓰고 한 인간의 변화와 성장을 그린 휴먼 드라마로 정의해 볼 수 있다. 정우성은 "사람이라면 변할 수 있다"며 "단 좋게 잘 변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변한다는 건 성장한다는 얘기일 수 있다. 어른이 된 사람이 자신의 가치관을 확 바꿔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잘 성장해야 하고, 그렇게 자신을 이끌어 가야 한다. 성숙해간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순호는 정의를 선택하려 하는데 그런 가치를 추구하려는 노력 자체가 중요한 것 같다. 우린 종종 사회 분위기에 타협하며 정당성이 상실된, 그리고 그게 또 당연하게 여겨졌던 시대를 거쳐왔다. <증인>을 통해 선택과 결정의 정당성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본다."  

노력하는 어른에 대해

노력, 그렇다, 정우성은 흔들릴 수 있는 그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적어도 바른 곳으로 향하려는 노력 자체를 언급했다. 영화 속 지우의 "아저씨는 좋은 사람인가요?"라는 대사는 곧 영화를 보는 관객 모두에게 던질 수 있는 근본적인 물음이기도 하다. 이익을 위해 사는 게 당연시 된 한국 사회에서 우린 과연 좋은 어른이었을까. 좋은 어른의 조건은 무엇일까. 그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 그러니까 어느 순간 우리 사회에서 입 밖으로 꺼내면 손해 보는 단어들을 지키는 사람이 좋은 어른인 것 같다"며 말을 이었다.

"양심, 서로에 대한 예의, 윤리 그런 것 말이다. 순호의 직업이 변호산데 법조인이 되면 하는 선서가 있잖나. 다들 마찬가지일 것이다. 선서는 안 해도 자신의 직업에서 기본적으로 지키고 책임져야 하는 정신이 있을 것이다."
 
 배우 정우성.

"<증인> 역시 큰 주제가 있는데 그걸 강요하지 않은 채 소소하게 그리고 있다. 그 여운이 참 길더라." ⓒ 롯데엔터테인먼트

 
보다 구체적으로 묻기로 했다. 언론에서 '소신'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는 정우성 개인의 가치관과 사회관에 대해서다. 최근 들어서야 그런 자신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사실 자신을 속이지 않고 기만하지 않으려 치열하게 노력한 경우였다.

몇몇 인터뷰에서 밝혔듯 데뷔작인 영화 <비트>와 이후 <똥개>에 출연하면서 얻은 스타성에 대해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다. 자신이 택한 작품으로 누군가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자각을 한 뒤 무분별한 폭력물, 범죄물 출연을 경계하기 시작한 것. 

"<비트>(1997)는 제게 많은 걸 준 작품인데 끝난 뒤 그 파급력이 워낙 컸다. 학생들이 선생님 없을 때 몰래 봤다고들 많이 얘기했고, 100번 봤다는 100번 클럽도 있었다. 절 만나면 '어! 형 말보로(담배 브랜드 중하나)! 오토바이 와!' 이렇게 외치는 학생들이 많았다. 나 때문에 담배를 배우고, 나 때문에 오토바이를 타다가 다쳤다는 얘길 들었을 때 편하진 않더라. 내가 인기가 생겼구나 이게 아니라 불편했다. 

<똥개>는 한 고등학교 건물을 빌려 촬영했었다. 촬영 중 담뱃불을 붙였는데 저 멀리 어둠 속에서 '와! 멋있다' 이런 소리가 들리더라. 순간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 이후 영화를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유효하다. 악인을 묘사할 때 인간적 연민이 들 수는 있지만 그걸 미화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배우로서 작품을 고민할 때 캐릭터와 이야기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그런 고민을 충분히 해야 할 것 같더라."


"중요한 변화는 원래 느리다"

충분한 고민은 필연적으로 시간이 따른다. 최근까지 사회면과 문화면을 달궜던 난민 문제에 대한 그의 평소 철학은 본질이 가려진 채 정치적으로 혹은 단발성 이슈로 소모되기도 했다. 합리적 토론의 장을 원했겠지만 그걸 건너뛴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는 덤덤했다.

"사회와 충돌에서 조급함을 가지면 다치는 경우가 많더라. 큰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특히 그것이 사회 문제라면 그것을 바꿔나가려면 처음은 약간의 거리감을 두고 자신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본인을 지키면서도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지난해 5월 한국에 들어온 예멘 난민 이슈도 반대 의견에 대해 좋고 나쁘다 따질 수는 없다. 이해의 충돌이고, 의식의 차이인데 그걸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부분이 있어 안타깝지. 

그 논리에 영향받는 어떤 분들이 있을 수 있고, 거기에 대한 염려도 분명 있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를 내시는 분들에 대해 이 사안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니까 긴 시간을 두고 차분히 소통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애초에 그 사태가 벌어질 때부터 이건 길게 시간을 두고 할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배우 정우성.

"사회와 충돌에서 조급함을 가지면 다치는 경우가 많더라. 큰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특히 그것이 사회 문제라면 그것을 바꿔나가려면 처음은 약간의 거리감을 두고 자신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본인을 지키면서도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비난하기 이전에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생각하기. 어쩌면 영화 <증인>이 좋은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이한 감독 특유의 화법으로 전하는 정의 이야기. 정우성은 "다들 많이 지치시지 않았나. 뉴스들이 수없이 나오고, 걱정과 불안에 싸인 소식들이 과하게 전달되고 있는 것 같다"며 "<증인>이라는 작품이 한방의 치유제가 될 순 없어도 적어도 스스로 돌아보고 주변 사람을 안아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담담하면서도 작지만 울림이 있는 영화. <증인> 앞에서 정우성은 부끄럽지 않았다. 영화를 통해 담은 조용하지만 묵직한 그의 진심을 만나볼 때다.
 
정우성 증인 조향기 변호사 김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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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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