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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항상 어떤 장소에서 말을 하지만, 때로는 그 말보다 장소가 더 많은 말을 하기도 한다. 하루 차이를 두고 같은 목포 원도심을 방문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손혜원 무소속 의원의 경우가 딱 그랬다.
 
'선' 나경원 – '점' 손혜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손혜원랜드 게이트 진상조사 TF' 소속 의원들이 22일 전남 목포시 원도심 역사문화거리를 방문해 살펴보고 있다. ⓒ 이희훈
 
목포 원도심 투기의혹을 받고 있는 손혜원 무소속 의원이 23일 오후 전남 목포 역사문화거리 박물관 건립 희망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희훈
   
22일 나 원내대표의 행보는 '선'이었다. 목포역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목포시청으로 이동해 김종식 목포시장을 만난 후 목포 원도심의 역사문화거리로 옮겼고, 그 거리 100여 미터를 말 그대로 '걸었다'. 이 모든 동선을 그는 정용기 정책위의장, 한선교 의원 등 일행 뿐 아니라 목포시청 공무원들의 안내까지 받으며 우르르 몰려다녔다. 덩달아 수많은 취재진까지 우르르 다녀야했다. (관련기사 : [현장] "눈으로 보면 모르나" 빈손으로 돌아온 한국당 목포 투어)
 
반면 23일 손 의원의 행보는 '점'이었다. 보좌진 한 명만 대동한 채 목포 원도심에서 점심을 먹은 손 의원은 바로 역사문화거리 안에 위치한 건물 내부로 깊숙히 들어가 한시간 반 이상 기자간담회 내내 계속 머물렀다. 내외부가 다 뜯겨 앙상한 뼈대만 남았고, 그마저 불안해 임시 철재 지줏대를 설치한 폐허 같은 공간. 미리 공지된 이곳으로 취재진을 불러들인 손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곳이 투기했다는 그 장소입니다." (관련기사 : 손혜원의 폐허 건물 속 반박 회견 "이해충돌? 처음부터 환원 약속")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손혜원 랜드 게이트 진상규명 TF' 한선교 위원장과 의원들이 22일 오후 전남 목포시청 상황실에서 김종식 목포시장을 만나고 있다. ⓒ 이희훈
  
손혜원 의원 목포에서 기자회견 개최 목포 원도심 투기의혹을 받고 있는 손혜원 무소속 의원이 23일 오후 전남 목포 역사문화거리 박물관 건립 희망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 공동취재사진
 
기자는 서로 대립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목포행을 모두 현장에서 지켜봤다. 결론은 손 의원이 한 수 위. 그 이유는 이렇다.
 
나 원내대표의 행보에서 주인공은 나 원내대표 자신이었다.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도, 관련 보도의 사진이나 영상을 보는 사람들도 다른 것이 눈에 잘 들어올 수 없었다. 하지만 손 의원의 행보에서 주인공은 그가 아니라 바로 그 장소였다. 때로는 쉽게 흩어지는 말보다 강렬한 이미지 한 장이 머리 속에 오래 남는 법. 손 의원은 그 주인공을 방해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제했다. 기자간담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경 현수막도 없었다. 오직 자신이 앉을 의자와 마이크를 놓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 그리고 기자들을 위한 간이 의자만 허용했다. 현장에 들어간 취재진이나 관련 보도를 보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 폐허 같은 장소를 목격할 수밖에 없게끔 말이다.
 
단지 카메라에 잡히는 이미지 차원이 아니다. 손 의원은 이번 목포행에서 기자간담회 안과 밖에서 체험을 이끌어냈다. 좀더 자세히 서술해보자.
 
[안에서 생긴 일] 무려 12채로 계산되는 폐가를 경험하다
 
손혜원 의원 목포 회견 목포 원도심 투기의혹을 받고 있는 손혜원 무소속 의원이 23일 오후 전남 목포 역사문화거리 박물관 건립 희망지에서 연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의 모습. 이 사진은 노출 조정을 통해 극적효과를 더 했다. ⓒ 이희훈
 
목포 원도심 투기의혹을 받고 있는 손혜원 무소속 의원이 매입한 전남 목포 역사문화거리 박물관 건립 희망지의 23일 오후 모습. 왼쪽 아래에서는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 이희훈
 
최근 목포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핫플레이스'가 된 목포 대의동 1가 2-5번지. 건물 입구에는 성인 남성 1명이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철제 대문이 달려있다. 23일 오후 1시. 드디어 문이 열렸다.
 
대문을 통과하면 폭 1.5미터, 길이 6미터 정도의 길이 직선으로 이어지다가 왼쪽으로 꺾어진다. 길 양편으로는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취재진을 안내하던 남자 둘은 연신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 말이 엄살이 아니었음을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깨닫는다.
 
건물 안은 오랫동안 버려진 폐가를 연상시켰다. 뼈대가 앙상하게 드러나고 곳곳에 세워진 수십 개 임시 철재 지줏대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태였다. 벽 대부분은 얇은 목재로 얼키설키 막아놓았고 일부는 흑벽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바닥에는 종이 박스와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흙먼지와 뒤섞여 케케묵은 습한 냄새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이 발을 디딜 때마다 뿌연 먼지가 일어났다. 취재진 일부는 연신 재채기를 해댔고, 급하게 마스크를 구하러 나가기도 했다.
 
일부 언론은 손 의원과 측근들이 투기 목적으로 목포에 수십여 채를 사들였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이날 낮 기자간담회가 열린, 쓰러질 듯 뼈대만 남은 이곳은 무려 12채로 계산됐다. 밖에서 보면 한 채로 보이지만, 안을 살펴보면 여러 개의 건물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이곳이 바로 '나전칠기 박물관 건립예정지'다. 예전에 정미소로 쓰였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언론에 내부가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밖에서 생긴 일] 기습 시위 제압한 주민들
  
목포 원도심 투기의혹을 받고 있는 손혜원 무소속 의원이 매입한 전남 목포 역사문화거리 박물관 건립 희망지의 23일 오후 모습. ⓒ 이희훈
  
목포 원도심 투기의혹을 받고 있는 손혜원 무소속 의원이 23일 오후 전남 목포 역사문화거리 박물관 건립 희망지에서 기자회견을 마치자 주민들이 들어와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 이희훈
  
목포 원도심 투기의혹을 받고 있는 손혜원 무소속 의원이 매입한 전남 목포 역사문화거리 박물관 건립 희망지의 23일 오후 모습. ⓒ 이희훈
  
목포 원도심 투기의혹을 받고 있는 손혜원 무소속 의원이 매입한 전남 목포 역사문화거리 박물관 건립 희망지의 23일 오후 모습. ⓒ 이희훈
 
박물관 건립예정지는 또다른 '핫플레이스' 창성장에서 대각선으로 20미터 가량 떨어져 있었다. 기자간담회는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었지만 낮 12시부터 창성장 일대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간담회가 시작되기 전인 오후 1시30분경 이 거리에 난데없이 70대 남성이 구호를 외치며 나타났다. 그가 든 플래카드에는 '손혜원 투기의혹 밝히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 남성은 주변 주민들에 의해 즉각 제압당했다. 현지 주민 수십여 명은 이렇게 항의했다.
 
"누구인데, 투기라는 거냐!"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 마라." "굶어 죽어가는데 무슨 투기냐!"
 
주민들은 그 남성을 에워싸고 시위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고, 결국 이 남성은 주민들에 의해 멀리 쫓겨났다. 격앙된 일부 주민들은 "공정하게 보도하라"며 취재진에게 화살을 돌렸다.
 
한바탕 소동이 가라앉자 주민들 사이에서는 작은 난상 토론회가 열렸다. 창성장 옆 목포예식장 건물주라는 양미정(53)씨는 "건물을 팔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사는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도시재생은 원래 주민이 정착하고 그동안의 피해를 복구하는 사업이 되어야 한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손혜원은 공익사업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말에 주변에서는 "맞아요"라는 맞장구와 함께 박수가 쏟아졌다. 양씨는 "자유한국당이나 일부 언론에서 주장하는 것은 모략"이라며 "손혜원을 죽이기 위한 음모"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변에 있던 주민들도 말을 보탰다. 한 남성은 "난 이 동네에서 50년 살았는데, 최근 20년 동안 건물가는 오르지 않았다"며 "이 지역은 뚝심이 없으면 못 산다"고 말했다.
 
간담회가 끝나고 손 의원이 건물 밖으로 나오자 주민들은 "손혜원 힘내라"고 연호했다. 한꺼번에 인파가 몰리면서 손 의원은 가까스로 차량에 탑승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출발할 수 없었다. 일부 주민들이 차량을 에워싸고 "손혜원 힘내라"를 외쳤기 때문이다.
 
이런 주민들의 반응은 하루 전 나 원내대표가 방문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전날 주민들은 역사문화거리에 나타난 나 원내대표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눈으로 보면 모릅니까. 이 동네가 투기할 만한 동네입니까?" "이 거리는 오는 대로 망해 나가고 있는데, 강남만 살리지 말고 이 동네를 살려주세요." "손 의원이 사들인 건물을 들러보세요. 그게 투기인지 두 눈으로 확인하세요!"
 
다음날 손 의원의 기자간담회는 나 원내대표에 대한 반박이자 위 주민들의 발언에 대한 화답이었다. 바로 그 문제의 건물 내부로 깊숙히 들어가면서 말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손혜원랜드 게이트 진상조사 TF' 소속 의원들이 지난 22일 전남 목포시 원도심 역사문화거리 방문을 마치고 5.18 민중항쟁 목포사적지15호인 동아약국과 안철선생 가옥 옛터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이희훈
  
목포 원도심 투기의혹을 받고 있는 손혜원 무소속 의원이 23일 오후 전남 목포 역사문화거리 박물관 건립 희망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희훈
 
태그:#손혜원, #기자간담회, #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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