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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Heizen <North, East, South, West> 1967, 2002 거대한 네 개의 구멍으로 구성된 작품. 매우 깊어 가까이 접근할 수 없게 해 놓음.
 Michael Heizen 1967, 2002 거대한 네 개의 구멍으로 구성된 작품. 매우 깊어 가까이 접근할 수 없게 해 놓음.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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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 번 있는 필드 트립을 다녀왔다. 아트 전공 학생들이 오전 8시에 모여 학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큰 이벤트. 세라믹 아트를 공부하는 학생으로 처음 참여한 행사라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트립 장소는 Dia: Beacon(디아: 비콘, 3 Beekman St, Beacon, NY 12508), 처음 교수에게 목적지를 들었을 땐 낯선 이름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뭐? Dia 다음에 클론이 있다는 거지?).

'MOMA나 구겐하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을 근처에 두고 굳이 왜 이 먼 곳을' 싶었다. 2시간 가까이 달린 버스는 한적한 시골 마을 한가운데 학생들을 내려준다. 우리를 맞은 건 숲속에 위치한 거대하고 오래된 빨간 벽돌 건물. 1929년이니 지은 지 꼭 90년 된 나비스코 과자의 포장지 공장이란다. 오레오나 리츠크래커의 껍데기가 여기서 만들어졌던 거다.

매각자를 찾고 있을 때 뉴욕 첼시에 미술관을 갖고 있던 이가 구입해 수리 후 이전 개관했다고 한다. 낡은 공장 건물을 그대로 두고 문이며 화장실 등만 요즘식으로 고친 독특한 미술관이었다.

공장 기계가 놓였던 실내엔 거대하고 실험적인, 기괴하고 낯선 설치 미술품들이 가득했다. 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 채광과 공장 특유의 막힘없는 넓은 공간 스케일이 제일 먼저 들어온다. 그 안에 마음껏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하고 다양한 작품들은 눈을 시원하게 한다. 
 
John Chamberlain <Luftschloss> 1979
 John Chamberlain 1979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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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ise Bourgeois <Crouching Spider, 웅크린 거미> 2003. 낡은 붉은 벽돌과 잘 어울리는 메탈 재료의 거미.
 Louise Bourgeois 2003. 낡은 붉은 벽돌과 잘 어울리는 메탈 재료의 거미.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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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인 줄 알고 청소부가 버리기도 했다는 찌그러진 자동차(John Chamberlain 'LuftsChloss'), 의자같이 생긴 한 나무 상자들(Donald Judd 'Untiled'), 행여나 다칠까 조심히 지난 깨진 유리들(Robert Smithson 'Map of Broken Glass (Atlantis)')...

안내문이 없으면 그냥 지나쳤을 눈엔 지나치기 십상인 이런 작품들의 작가들을 선발해 꾸준히 전시하고 있는 곳이었다.  왜 이곳이 개관 10년 만에 미국 현대 미술의 메카가 됐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됐다. 공간적·시간적인 제약 없이 마음껏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할 수 있게 하는 예술가들의 힘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미술관의 정식 명칭은 Dia: Beacon, Riggio Gallerieres. Dia는 이 미술관 소유한 보드 그룹의 이름, Beacon은 미술관이 있는 업스테이트 뉴욕의 동네 이름, 그리고 Riggio는 이 곳을 개관할 때 소요된 5000만 달러 중 3500만 달러를 기부한 사람의 이름이다. 서점 그룹 반즈 앤 노블 회장으로 이 미술관의 대표 작가 중 하나인 Richard Serra의 작품을 구입할 때 200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한 중요한 인물이다.
 
미니멀리즘 대표 조각가 Richard Serra <Installation View>
 미니멀리즘 대표 조각가 Richard Serra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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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 Flavin <Untitled, 무제> 1973. 창문이 없어 어두운 공장 지하실에 설치된 작품. 자연 채광을 하는 위층 전시공간과는 매우 다른 효과를 연출할 수 있다.
 Dan Flavin 1973. 창문이 없어 어두운 공장 지하실에 설치된 작품. 자연 채광을 하는 위층 전시공간과는 매우 다른 효과를 연출할 수 있다.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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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들의 투자와 선견지명이 공장 마을 Beacon을 핫플레이스로 만든 게 아닐까 싶다. 나중에 따로 한번 꼭 오고 싶다 하니 미술관 열차를 알려 준다. 맨해튼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허드슨 라인을 타서 Beacon 역에 내리는 노선인데 80분 거리다. 1800년 초에 지어진 보스코 벨 하우스나, 린 허스트 맨션도 모두 기차로 다닐 수 있게 노선을 운행 중이다. 낡고 오래된 것들이 사람들을 모으고 사람들이 지역에 활기를 주는 순기능이 되는 실례다. 

몇 달 전 삐걱대는 나무 문 안쪽을 대청소하다가 그 틈새에서 1987년도 소인이 찍힌 편지를 발견했다. 아마도 우리 집의 전, 전, 전(...) 세입자 것인 듯. 1987년이면 내가 고등학생 때다. 올림픽 매스게임 연습한다고 매일 수업 땡땡이치던 무더웠던 그때, 여기 뉴욕 한편에 선 손으로 꾹꾹 눌러쓴 이런 편지를 보내고 읽고 있었구나 싶어 느낌이 새로웠다.

이 나무 문이 30년 이상은 됐다는 대견하기도 하고. 100년은 됐을 법한 이 집에 이사 와서 나는 집수리 전문가가 됐다. 로우스나 홈디포에 가 둘러보며 어딘가 때우고 메꾸고 덧대는 물건을 사 오는데 반 장인이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집구석 구석에 더 애정이 갈 수밖에 없다. 여기선 뭔가를 허물고 다시 짓는 건 허가를 받기도 힘들고, 세금도 엄청나다. 다들 그렇게 산다. 낡고 오래된 것들이 촌스럽고 버려야 할 것이 아님을 삶으로 느끼고 산다. Dia: Beacon 미술관의 에너지는 최신 건물이 아니라 그 안을 채우는 젊고 자유로움에서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Brunch)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DIA, #나비스코, #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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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뉴욕 거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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