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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의 <꽃.숲>전
 최정화의 <꽃.숲>전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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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가 만든 <꽃․숲> 돌아보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가면 설치작가 최정화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실외에서는 '민들레'를, 실내에서는 <꽃․숲>전을 볼 수 있다. 쓰다가 버린 일상의 물건으로 예술작품을 만드는 최정화는 설치미학자, 시간의 연금술사로 불린다. <꽃․숲>의 영어제목은 Blooming Matrix다. 매트릭스가 행렬 또는 나열을 뜻하니, 피어나는 꽃들의 행렬이 된다. 수학적이면서도 과학적인 표현이다. 최정화의 작품은 수학을 통한 미학의 완성으로 볼 수 있다.

최정화의 작품 재료는 플라스틱, 나무, 천, 금속, 도자기 등 우리 주변에 있는 소비재다. 그러므로 구하기 어렵지 않다. 대량소비사회에서 버려지는 물건은 지천이다. 그 물건이 예술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니, 이것은 리사이클링(Recycling)이 아니고 리크리에이팅(Recreating)이다. 가치를 잃은 물건이 그를 통해 꽃이 되고 예술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꽃․숲>전은 생명의 탄생과 희망을 보여준다.
 
최정화
 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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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근과 마르셀 뒤샹을 통해 삶의 어두운 측면을 보았다면, 최정화를 통해 삶의 희망을 본다. 최정화는 "예술은 무엇인가? 그리고 아름다움은?"이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출발은 쓰레기지만, 결과물은 꽃이다. 플라스틱, 나무 같은 재료를 이어 붙여 꽃으로 변신시킨다. 플라스틱과 나무는 죽어 있지만, 꽃은 살아 있다. 이게 바로 예술행위를 통한 생명의 창조다. 그런 측면에서 최정화에게 예술은 재창조다. 바로 그곳에 아름다움이 있다.
 
‘Young flower’
 ‘Young fl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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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작품을 살펴보니 다 같은 꽃이 아니다. 'Young flower'도 있고 '꽃의 향연'도 있고 '늙은 꽃'도 있고 '내일의 꽃'도 있다. 꽃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은 작품으로는 '알케미(Alchemy)' '세기의 선물(Present of Century)이 있다. 'Young flower'는 어린 꽃으로, 피어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줄을 타고 올라가 생명의 꽃을 피워보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에는 떨어지고 만다. 세월호에 타고 있다가 결국 뭍으로 올라오지 못하고 물속에 잠기고 만 어린 학생들에게 바치는 진혼가라고 한다. 그래선지 왕관들이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여기서는 꽃이 피지 못하고 꺾인 꽃이다. 희망이 아닌 절망이다.
 
‘꽃의 향연’
 ‘꽃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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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향연'은 제목과 오브제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상, 밥그릇, 국그릇, 접시와 컵 등이 상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주방에서 사용하는 식사용 그릇을 용도에 따라 분류해 놓았다. 다리가 넷인 다른 모양의 상을 아래로부터 위로 9개 배치했다. 상 위에는 국그릇, 밥그릇, 접시, 주발, 찻잔, 유리기, 유리컵 등이 놓여 있다. 가장 윗부분에는 다리가 없는 찻상이 놓이고, 그 위에 찻주전자와 화병이 놓여 있다. 유일하게 꽃과 관련된 것이 화병이다.

전체적으로 꽃의 향연이기보다는 삶의 굴레다. 평생 맞닥뜨려야 하는 상을 통해 인생의 지난함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미학적이기 보다는 철학적이다. '늙은 꽃' 역시 철학을 담고 있다. 사용하고 버린 낡은 빨래판을 12줄로 배열하고 있다. 여기서 빨래판은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으며, 12줄은 1년 12달을 상징한다. 이 빨래판을 중국에서 수집해서 이 작품의 원제목은 '중국식 백과사전'이었다. 그것은 빨래판이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인 목판을 닮았기 때문이다.
 
'알케미'(앞)와 ‘늙은 꽃’(뒤)
 "알케미"(앞)와 ‘늙은 꽃’(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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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전 번시를 통해 작품 제목이 '늙은 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전시 콘셉트에 따라서 그리고 만나는 관객에 따라서 제목이 바뀔 수 있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작품은 작가 또는 관객의 해석을 통해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정화는 현대작가다.

'알케미'는 <꽃․숲>전의 포스터에 들어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곳에 전시된 다른 어떤 작품에 비해 무게감이 있어 보인다. 그것은 쇠로 만들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안정적인 미학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동차 플라이휠, 무쇠솥, 손과 발이 달린 솥단지, 목이 좁은 항아리, 밥그릇, 양은대접 등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알케미가 연금술이니 이들을 연금술로 연결했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격이 다른 금속을 기계적으로 연결해 하나로 만드는 것이 연금술이 아니다. 연금술은 화학적인 결합을 통해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개개 금속에 담긴 이야기가 연결되어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간다고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게 좋겠다. 그래야 연금술에 맞다.

<꽃,숲을 거닌 사람들의 이야기>
   
<꽃.숲>
 <꽃.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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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숲>전시장의 한쪽 벽에 보면 관람객 감상평이 적혀 있다. 이것은 <꽃,숲>전시장을 거닐고 나서 느낀 감정을 기록한 일종의 문화 프로그램이다. "여러분은 어떤 '꽃,숲'을 거닐었나요?"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 형식이다. 20대 학생 신가람은 '민들레'라는 작품을 보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상당히 시적이다.

"민들레 씨앗이 널리널리 퍼집니다.
밝고 힘찬 기운이 나에게 옵니다.
나는 민들레 씨앗을 잡았습니다.
그리곤 '후'하고 날려 보냅니다.
그 씨앗은 다른 이에게 가는 중."


  
<꽃.숲>을 거닌 감상평
 <꽃.숲>을 거닌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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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자영업자는 '꽃,숲 거닐다'에 초점을 맞춰 삼행시를 지었다. 이 글 역시 '모든'과 '있다'라는 단어를 반복해 독자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인상적인 삼행시다.

"꽃, 세상의 모든 사물로 꽃을 만들 수, 꽃으로 태어날 수 있다.
숲, 그 모든 것이 숲을 이루고 있다.
거닐다, 그 모든 것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영어로 생각을 적은 플랫(Liley Plat)은 "작품이 초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와, 중요성을 잘 몰랐던 오브제에 대해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 준다"고 적었다. '꽃의 향연'에 대해서는 "대대에 걸쳐 수많은 밥상을 무겁게 날랐을 여인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고 적은 30대 직장인도 있다. "일상 속 잊고 지내던 것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일이 예술이 하는 일"이라고 적은 20대 연기자도 보인다.

하룬 파로키의 영화미학은 무엇일까?

 
베를린과 방갈로르의 공장
 베를린과 방갈로르의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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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룬 파로키(Harun Farocki: 1944-2014), 그는 독일에서는 유명한 영화감독이자 비디오 아티스트지만,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그의 회고전이 이곳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는 1960년대 젊은 시절을 보내며 기성사회에 저항한 68세대다. 그들은 대중매체를 통해 자본주의 소비문화를 비판하고, 미디어와 기술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성을 고발했다. 파로키는 사회정치적인 문제에 천착, 사회비판적인 영상물을 만든 저항하는 예술가로 성장했다.

그는 또한 현장과 현상을 기록하고 세상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예술가였다. 그는 전쟁의 폭력성을 기록했고, 현대 자본주의 현장을 기록했다. <당신이 보는 대로>(1986), <세계의 이미지와 전쟁의 각인>(1988),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1995), <베스터보르크수용소>(2007) 같은 작품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영화제작자, 영화잡지 《영화비평 Filmkritik》의 편집인, 미국과 오스트리아의 대학 영화학과 교수 등으로 활동했다.

이곳 갤러리에서 상연되는 영화 중 필자는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2012-14년 리메이크된 것으로, 베를린, 우쯔(Łódź: 폴란드), 리스본, 요한네스버그, 방갈로르(인도) 같은 도시 노동자들의 퇴근시간 모습을 보여준다. 2분 내외의 짧은 단편이 다른 공간에서 상연되고 있다. 방갈로르에서는 사리를 입은 여성노동자들이 문을 나선다.
 
요한네스버그와 리스본의 노동자들
 요한네스버그와 리스본의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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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는 남성노동자들이 사무실을 나온다. 요한네스버그에서는 남성 노동자들이 철문 형태의 공장을 나온다. 리스본에서는 흰 가운을 입은 여성들이 사무실을 나온다. 전체적으로 노동자들의 표정이나 의상이 밝다. 공장노동자들의 표정이나 의상이 사회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척도인데, 문제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공장 안의 모습을 담을 수 없으니, 더 피상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파로키의 영화미학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이번 전시는 무려 26개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있다. 파로키의 작품 48편을 날짜별로 다른 공간에서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들 영화는 대중적이기보다는 교육적이고 사회적이다. 그 때문에 <노동의 싱글 숏 Labor in a Single Shot>이라는 형식의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조건, 노동, 카메라 작업, 웹 카탈로그, 주의 기울이기, 비디오를 영화처럼이라는 여섯 단계로 구성된다. 이곳에서 추구하는 싱글 숏 영화는 "정해진 것과 열린 것, 구성된 것과 우연한 것처럼 대조적인 것을 결합"해 만들어진다.

태그:#최정화, #<꽃.숲>, #‘YOUNG FLOWER’, #하룬 파로키,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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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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