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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 유희춘의 미암일기를 보관했던 석조건축물 모현관. 연못과 어우러진 풍경이 한껏 운치를 뽐내고 있다.
 미암 유희춘의 미암일기를 보관했던 석조건축물 모현관. 연못과 어우러진 풍경이 한껏 운치를 뽐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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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록의 역사를 보며 배우고 있다.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 난중일기가 기록의 역사다. 5·18 광주민중항쟁 때 학생의 일기도 소중한 기록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전남 담양의 미암박물관은 기록의 역사를 토대로 하고 있다. '기록의 달인'으로 불리는 조선 중기의 문신 미암 유희춘(1513~1577)과 그의 부인 덕봉 송종개(1521∼1578)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지난 12일 미암박물관을 찾았다.

보물 제260호로 지정돼 있는 '미암일기'와 일기에서 뽑아 목판으로 인쇄한 '미암집'을 전시하고 있다. 396개의 미암집 목판도 볼 수 있다. '노루골'로 불리는 장산(獐山)마을, 전라남도 담양군 대덕면에 있다.
  
미암박물관의 모현관. 보물로 지정돼 있는 미암 유희춘의 미암일기와 미암집 목판이 전시돼 있다.
 미암박물관의 모현관. 보물로 지정돼 있는 미암 유희춘의 미암일기와 미암집 목판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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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 유희춘의 미암일기. 미암이 1567년 10월 1일부터 1577년 5월 13일까지 10년에 걸쳐 쓴 개일일기다.
 미암 유희춘의 미암일기. 미암이 1567년 10월 1일부터 1577년 5월 13일까지 10년에 걸쳐 쓴 개일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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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일기는 미암 유희춘이 선조 때인 1567년 10월 1일부터 1577년 5월 13일까지 10년에 걸쳐 썼다. 미암이 죽기 이틀 전까지다. 일기는 모두 14권으로 이뤄졌다. 글자 수만도 한자로 90만 자에 이른다. 현존하는 개인 일기 가운데 가장 방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기에는 개인의 일상은 물론 당시의 정치와 경제, 사회·문화, 사상과 민속, 의술, 교육 등이 다 그려져 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승정원일기'가 불에 탔는데, 광해군 때 선조실록을 펴내면서 참고자료로 쓰였을 만큼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미암 유희춘이 쓴 미암일기의 표지. 일기에는 사생활은 물론 당시의 정치와 경제, 사회·문화, 사상과 민속, 의술, 교육 등이 다 그려져 있다.
 미암 유희춘이 쓴 미암일기의 표지. 일기에는 사생활은 물론 당시의 정치와 경제, 사회·문화, 사상과 민속, 의술, 교육 등이 다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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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일기에는 아내 덕봉과 주고받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들어있다. 재치가 묻어나고, 문학성이 돋보이는 얘기들이다. 지금은 미암과 덕봉의 시문을 모아둔 책을 포함해 11권의 일기만 전해지고 있다.

미암박물관에선 미암 유희춘을 '기록의 달인'으로 우리에게 기억시킨 미암일기와, 미암집을 펴내는 데 쓴 목판을 볼 수 있다. 미암의 부인 덕봉의 재치 넘치는 글도 엿볼 수 있다. 이들 부부의 사생활은 덤이다.

미암과 허준의 인연도 소개돼 있다. 허준이 유배에서 풀려난 미암을 정성껏 돌봤고, 미암은 하서 김인후가 아플 때 허준을 보내 돌보도록 했다. 그런 인연으로 미암은 김인후의 셋째 딸을 며느리로 맞이했다. 허준을 내의원으로 추천한 사람도 미암이었다. 허준의 '동의보감'도 그 덕분에 나온 셈이다.
  
미암 유희춘의 시를 모은 미암집. 미암의 9대손이 미암일기에서 골라 편집한 문집이다.
 미암 유희춘의 시를 모은 미암집. 미암의 9대손이 미암일기에서 골라 편집한 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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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의 동의보감. 미암 유희춘과 허준의 인연을 소개할 목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허준을 내의원으로 추천한 사람이 미암이었다.
 허준의 동의보감. 미암 유희춘과 허준의 인연을 소개할 목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허준을 내의원으로 추천한 사람이 미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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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쓴 미암 유희춘은 1513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다. 갑자사화를 보면서 벼슬을 포기하고 평생 처사로 산 아버지 유계린과 중국기행문 '표해록'으로 알려진 금남 최부의 딸인 어머니 탐진 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서 김인후와 신재 최산두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급제했다.

정미사화(1547년)로 불리는 '양재역 벽서사건'으로 19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명종 때 수렴청정을 하던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이 반대파를 숙청한 사건이다. 선조 때인 1567년 유배에서 풀려나 다시 벼슬을 했다. 성균관 대사성, 홍문관 부제학, 사헌부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지냈다. 미암일기는 이때 쓴 것이다.

그가 태어난 해남 마을의 뒷산, 우슬재를 품은 금강산에 미인의 눈썹처럼 생긴 바위가 있었다. 그의 호가 '미암(眉巖)'이 된 이유다. 성균관 유생들 사이에선 묻는 말에 척척 대답하고, 의심난 대목을 자세히 풀어준다고 '글 귀신(書中鬼)'으로 불렸다.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行祕書)'으로 불린 당나라 우세남에 견주기도 했다. 미암은 기묘사화, 을사사화로 희생된 명현들의 복권 등 당시 사림정신을 회복하는 역사 바로 세우기에도 앞장섰다.
  
미암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미암집 목판 396판. 미암일기와 함께 보물 제260호로 지정돼 있다.
 미암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미암집 목판 396판. 미암일기와 함께 보물 제260호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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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먹물을 찍어 인쇄하던 판목. 보물로 지정돼 있는 미암집 목판 396판 가운데 하나다.
 종이에 먹물을 찍어 인쇄하던 판목. 보물로 지정돼 있는 미암집 목판 396판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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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출신 미암 유희춘이 담양과 인연을 맺은 건 24살 때다. 담양에 살던 16살 덕봉과 혼인을 하면서다. 부인은 여류시인으로 당대에 한시 38수가 담긴 시문집을 남길 정도로 문학에 조예가 깊었다. 멋과 재치도 넘쳤다. 혼인식이 있는 날, 키가 작은 미암에게 버선을 도톰하게 몇 겹 포개신고 오도록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우리는 지덕을 겸비한 여성으로 신사임당, 허난설헌을 기억하고 있다. 학자들은 덕봉을 그 반열에 올리고 있다. 여성으로서 '덕봉'이라는 호를 가졌고, '덕봉집'이라는 시문집도 남겼기 때문이다. 남편과도 부부를 넘어, 그 시대에 학문적 동지로 지냈다. 요즘에도 보기 드문, 그 당시에 동반자적 부부관계를 유지했던 인물이 덕봉이다.

흥미진진한 글도 전해진다. 하루는 미암이 '부인이 문을 나서는데, 코가 먼저 나가더라'며 콧대가 센 부인을 빗댔다. 이에 부인은 '길에 다닐 때 보니, 당신의 갓끈이 땅에 쓸리더라'며 키가 작은 남편에게 응수를 했다. 조선시대에 남편과 부인이 주고받은 내용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재치와 해학이 묻어난다.

그러면서도 덕봉은 남편이 오랜 기간 유배가고, 관직생활을 하는 동안 가정을 온전히 지켰다. 시어머니의 3년 상도 혼자서 치렀다. 지적이면서 당차지만, 당시 여성으로서의 역할도 다 했다.
  
연계정 전경. 옛 모현관을 품은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연계정 전경. 옛 모현관을 품은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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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과 어우러진 연계정. 선산유씨 종가와 사당, 고목과 어우러진 연못까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연못과 어우러진 연계정. 선산유씨 종가와 사당, 고목과 어우러진 연못까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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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박물관의 바깥 풍경도 볼만하다. 미암박물관을 더 실감나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박물관 옆은 당시 미암과 덕봉이 살았던 공간이다. 지금은 선산유씨 종가가 있다. 건물이 1980년대에 다시 지어져 예스러움은 없다. 한쪽에 미암과 덕봉을 모시는 사당도 있다.

종가 앞에는 박물관이 들어서기 전까지 미암일기를 보관했던 모현관(慕賢館)이 있다. 모현관은 연못 안에 있다. 작은 다리를 건너서 만나는데, 화강암으로 지어진 석조건물이다. 1959년에 지어졌다. 편액을 남종화의 대가인 의재 허백련이 썼다.

고목이 된 느티나무와 어우러진,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누정 연계정도 있다. 연못에 반영돼 비치는 모현관의 모습이 한껏 운치를 더해 준다. 풍경의 격을 높여준다. 이 일대를 싸목싸목 돌아보면서 미암과 덕봉을 떠올려보는 재미가 색다르다.
  
연계정에서 내려다 본 옛 모현관 풍경. 고목 느티나무와 어우러진 연못이 한껏 운치를 더해준다.
 연계정에서 내려다 본 옛 모현관 풍경. 고목 느티나무와 어우러진 연못이 한껏 운치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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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미암일기, #미암 유희춘, #덕봉 송종개, #모현관, #동의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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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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