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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이 깔린 선암사. 태고총림 선암사 대웅전, 앞마당에는 2기의 탑이 조성되어 있다.
▲ 선암사 대웅전   어둠이 깔린 선암사. 태고총림 선암사 대웅전, 앞마당에는 2기의 탑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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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
▲ 선암사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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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떠나간 선암사는 고요했다. 대웅전과 앞마당의 두 탑 위로 서리가 내려앉듯 소리없이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대웅전 맞은편 만세루 쪽에서 대웅전을 바라보았다. 활짝 열린  문으로 부처님의 모습이 보였다.   

둥~ 하는 종소리가 울려퍼진다. 소리는 깊고 무거워서 영원토록 끊기지 않고 이어질 것만 같다. 어쩌면 이 소리는 억겁을 두고 이어져 왔는지도 모른다. 
   
조계산의 느릿한 능선과 전각들이 어둠과 침묵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은 장엄하고 숙연했다. 마치 모든 것이 있기 이전의 '무'의 세계로 돌아가는 듯했다. 번뇌도 집착도 생겨나기 이전의 세상으로 말이다. 

마당 저 너머 부처님이 앉아 계신다. 지척이지만 닿을 수 없다. 망자가 '레테의 강'을 건너야 저승에 닿을 수 있듯, 저 마당을 건너야 하건만 마당은 허공처럼 아득하고 멀기만 하다. 

대웅전에서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흘러나온다. 붉은 옷을 차려입은 스님들의 절이 끝없이 이어진다. 붉은 꽃처럼 아름답다. 

'3無'가 있는 선암사 
        
   선암사 대웅전에는 협시불이 없이 주존불인 석가모니불만 모셔져 있다.
▲ 선암사 대웅전   선암사 대웅전에는 협시불이 없이 주존불인 석가모니불만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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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님, 선암사 자랑 좀 해주세요." 
"선암사하면 장군봉이죠. 선암사는 조계산 장군봉이 지키는 절이에요. 그래서 사천왕문도 없지요. 또 대웅전에는 협시보살과 어간문이 없어요."
 

종무소에서 일하는 보살님의 대답이다.

전남 순천에 위치한 선암사는 백제성왕 5년에 아도화상이 현재의 비로암자에 처음 세웠고, 이창주 도선국사가 현재의 선암사 자리에 절을 중창하고 1철불 2보탑 3부도를 세웠다. 3창주 의천대각국사에 이르러 대중창이 이루어지고 천태종을 널리 전파하여 호남의 중심사찰이 되었다. 

정유재란 때 전소되다시피한 선암사를 1660년 경준, 경잠, 문정 세 스님이 대웅전을 세우는 등 8년에 걸쳐 중수를 하였고 호암 스님에 와서 원통전, 불조선, 승선교 등을 지으며 중창 불사가 마무리되었다. 

숱한 역경 속에서도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장한 절이다. 
 
   선암사 일주문에는 앞쪽에는 '조계산선암사'라고 적혀 있고, 안쪽에서 보면 '고청량산해천사'라고 적혀 있다. 겨울이어도 선암사는 푸른 나무들이 울창하다.
▲ 선암사 일주문   선암사 일주문에는 앞쪽에는 "조계산선암사"라고 적혀 있고, 안쪽에서 보면 "고청량산해천사"라고 적혀 있다. 겨울이어도 선암사는 푸른 나무들이 울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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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무소 보살님의 말처럼 선암사는 '3무'의 절이다. 사천왕문, 협시보살, 어간문이 없다. 

선암사에 사천왕문이 없는 것은 조계산의 주봉인 장군봉이 선암사를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며, 대웅전에 협시불이 없는 이유는 주존불인 석가모니불이 삼독을 물리치고 마구니에게 항복을 받는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기 때문이며, 부처님처럼 깨달은 분만이 어간문을 통과할 수 있기에 어간문을 두지 않았다. 

이 '3무'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선암사의 자긍심이다. '잡다'한 것 필요없이 홀로, 스스로 당당한 부처님과 그 부처님을 섬기겠다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아직 샛별이 사라지기 직전의 새벽녘, 혹은 어둠이 깔리는 해질 무렵, 선암사 대웅전 앞마당에 서서 온 세상을 굽어보는 듯한 석가모니불을 바라보노라면 선암사가 왜 3무(無)의 절인지 저절로 알게된다.  

3무 외에도 선암사에는 석등과 원통전의 대들보, 대웅전 기둥의 주련 등이 없다고 한다. 
    
  화재가 빈번했던 선암사에는 화재 예방을 위하여 경내 곳곳에 연못을 만들었다. 그중 타원형의 삼인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못 중의 하나로 꼽힌다.
▲ 선암사 삼인당   화재가 빈번했던 선암사에는 화재 예방을 위하여 경내 곳곳에 연못을 만들었다. 그중 타원형의 삼인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못 중의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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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에 석등이 없는 것은 선암사의 빈번한 화재와 관련이 있다. 

영조 35년의 큰 화재 이후에는 화 기운을 누르기 위해 절 이름을 '청량산해천사'로 바꾸기도 하였다. 그러나 순조 23년 또 다시 큰 화재가 발생하여 대웅전을 비롯해 여러 동의 건물이 불에 탔다. 해붕, 눌암, 익종 스님 등이 중창하면서 다시 원래 이름으로 돌려놓았다. 일주문 안쪽에 남아 있는 '고청량산해천사'에는 이러한 사연이 있다.

선암사는 석등을 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경내에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연못을 만들어 화재에 대비했다. 모두 6개의 연못이 있었다고 하나, 2개의 연못은 적묵당과 성보박물관을 지으면서 메꾸어졌다.

현재는 원통전과 장경각 옆에 연못과 설선당 서쪽의 쌍지와 뒷간과 일주문 사이에 연못, 일주문에 들어서기 전의 타원형의 삼인당이 있다. 심검당 환기창에 '水'와 '海' 글자가 투각되어 있는 것도 화재 예방을 위한 것이었다 하니 선암사가 얼마나 화재에 트라우마가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타원형의 연못 삼인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못으로 꼽힌다.  

작은 기와마을을 닮은 선암사

1) 대웅전 영역 
      
 선암사는 절집보다는 마당과 연못, 대문, 정원 등을 갖춘 정자나 양반가옥과 닮았다.
▲ 선암사   선암사는 절집보다는 마당과 연못, 대문, 정원 등을 갖춘 정자나 양반가옥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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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는 절집보다는 마당과 연못을 갖춘 고풍스러운 가옥이 빼곡히 들어선, 운치있는 마을을 연상시킨다. 

잘 지어진 정자나 지조 높은 양반가옥같은 전각 둘레에 돌담을 쌓고 작은 나무문을 달았다. 돌담들은 이어져서 돌담길이 되었다. 돌담을 따라서는 500년 넘은 벚꽃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작은 정원에는 온갖 꽃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벚꽃가지 길게 늘어진 연못 속 유유자적 헤어치는 잉어들이 운치를 더한다. 

돌담길과 석단을 사이에 두고 선암사는 몇 개의 커다란 영역으로 나뉜다. 대웅전 영역, 원통전 영역, 응진전 영역 등이다. 

대웅전과 맞은편의 만세루, 좌우의 선불당과 심검당 그리고 중정에 세워진 통일신라 때 조성된 탑 2기, 지장전과 응향각 등이 한 무리군을 이룬다. 
   
  대웅전 뒤편으로는 팔상전, 불조전, 조사전 등이 나란히 서 있다.
▲ 대웅전 뒤편의 팔상전 영역  대웅전 뒤편으로는 팔상전, 불조전, 조사전 등이 나란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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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뒤편으로 넓직한 돌담길을 사이에 두고 팔상전, 불조전, 조사전 등이 일렬로 나란히 서 있다.  대체로 대웅전 뒤편은 좁게 막혀 있어 뒷모습은 보기 힘든데 반해, 선암사 대웅전 뒤편에는 넓직한 공간과 화단이 있어 잘생긴 뒷모습을 여유있게 볼 수 있다. 

팔상전에는 석가여래와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여덟 장면으로 표현한 팔상도와 정조 4년에 제작된 화엄경 설법 모습을 그린 '화엄경변상도' 등이 있다. '화엄경변상도'는 우리나라에 3폭이 남아 있는데, 나머지 2폭은 순천 송광사와 하동 쌍계사에 있다. 

불조전에는 과거 7불과 미래 천불의 불조인 53불을 모셨다. 조사전에는 선암사의 개창자와 중창자, 중수자 등 역대 주지들이 영정이 모셔져 있다. 

2) 한 마리 새를 닮은 원통전
  
   호암대사는 관세음보살을 친견 한 후 중창한 원통전,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 선암사 원통전(관음전)  호암대사는 관세음보살을 친견 한 후 중창한 원통전,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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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상전과 불조전 사이에 좁은 계단을 오르면 금방이라도 날아 오를 것처럼 '날갯짓'을 하는 원통전을 만나게 된다. 

선암사 원통전은 1689년 호암대사가 중창하였다. 조계산 배바위에서 관세음보살 친견을 위하여 백일 기도를 드린 호암대사는 뜻을 이루지 못하자 배바위에서 떨어져 죽으려 한다. 이때 누군가 나타나 호암대사를 구하였는데, 그가 바로 관세음보살이었다고 한다. 호암대사는 원통전을 중창하고 친견한 관세음보살을 봉안하였다. 

정조가 후사를 이을 자손이 없자 눌암대사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후 순조가 태어났다는 일화가 전한다. 후에 순조가 내린 '대복전'이란 친필현판이 걸려 있다. 

호암대사가 지은 원통전은 1759년 화재로 전소되었고 현재의 원통전은 1824년 눌암스님의 중수를 거쳐 1923년 재중수한 것이다. 

침침한 원통전 안에서 홍가사를 입은 스님 한 분이 등불 하나 밝히고 기도를 드린다. 호암스님처럼 백일기도라도 하는 것일까. 
  
  원통전을 관리하는 스님을 위한 요사채인 첨성각, 첨성각 스님이  건네는 차 한잔이 추위에 얼었던 몸과 마음을 따스하게 녹여준다.
▲ 선암사 첨성각 (요사채)  원통전을 관리하는 스님을 위한 요사채인 첨성각, 첨성각 스님이 건네는 차 한잔이 추위에 얼었던 몸과 마음을 따스하게 녹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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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전 옆에 있는 '첨성각'에서 스님 한 분이 방문을 활짝 열어 놓고 원통전 참배객들에게 차를 권한다.

"추운데 차 한잔 하고 가세요. 이리 오세요."
"스님. 차가 참 맛있네요. 무슨 차예요?"
"돈차라는 겁니다."
 

스님이 내주신 따스한 차에 얼었던 몸이 풀려나간다. 스님이 과자도 먹으라며 양푼이에 담긴 과자를 내놓으신다. 갑자기 '첨성각'은 다원이 된 것 같다. 따로 차 값은 내지 않아도 된다. 문득 차 한잔과 환환 미소를 공양할 수 있는 그 마음이 부처의 마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첨성각'은 원통전을 관리하는 스님을 위한 요사채인데, 지금은 원통전에서 '천일기도'를 올리는 일봉스님이 머물고 계신다. 

"저게 장군봉이고, 그 옆에 있는게 배바위예요. 관음전(원통전)과 저 배바위와 일직선에 놓여 있어요." 

원통전을 중창한 호암스님이 백일기도를 드렸다는 배바위와 원통전이 한 축선에 놓여 있다니. 절 집의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지어진 것이 없음에 다시 한 번 놀라게된다. 

"스님, 돈차는 돈초로 만드는 건가요?"
"그건 비밀입니다. 저만 아는 거죠."


웃음기 가득한 스님의 얼굴이 한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문득 일봉스님의 발원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선암사의 승선교
  
  한선암사 승선교(보물 400호)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지개 돌다리이다.
▲ 선암사 승선교   한선암사 승선교(보물 400호)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지개 돌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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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공양을 마치고 승선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하늘 높이 솟은 편백나무가 그지없이 시원하다. 나뭇잎을 벗어던진 나무들의 속살 무늬가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것이 없다. 졸참나무, 전나무, 후박나무, 종가시나무, 산죽나무 등 난대성 나무들이 어우러진 선암사 숲은 겨울숲답지 않게 삭막하지 않고 싱그럽고 포근하다. 

숲길 중간쯤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 '승선교'가 있다. 지금의 큰 도로가 나기 전, 선암사 옛길은 작은 승선교를 건너고 다시 큰 승선교(보물 400호)를 건너 ㄷ자로 선암사로 진입하게끔 나있었다고 한다. 

승선교의 아름다움은 계곡 아래로 내려가 아치 안으로 가득 들어오는 강선루와 함께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 무지개 다리와 강선루가 푸른 계곡물 위로 떠오르는 그림자와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이룬 장면은 천상의 풍경같다. 무지개 다리도 2개요, 강선루도 2개가 된다. 하얀 옷을 차려입은 선녀들이 금방이라도 다리 위로 날아오를 것만 같다. 

"어디 나갔다가 들어올 때, 승선교를 건너면 그때부터 편안하고 푸근해지는 게 꼭 어머니 품에 안기는 것 같아요."

일봉스님의 말씀이다. 

승선교는 누군가에는 다리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속세에서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으로서의 의미가 더 클 수도 있겠다. 

다리도, 이름도, 전설도, 다리 위를 걷는 사람도, 모두 더할 수 없이 아름답고 순결하다.

(선암사 계속 이어집니다. )

태그:#선암사, #승선교, #조계산 선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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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정회원, NGPA회원 저서: 조지아 인문여행서 <소울풀조지아>,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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