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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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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저자들이 서문에 밝혔듯,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존중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충격을 받고 쓴 책이다. 우리는 트럼프가 북한과의 평화체제를 성공적으로 만들기를 희망하기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미국 내 지식인들은 그의 막말, 거짓말, 야당에 대한 거친 공격 등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릴까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담배 연기 자욱한 밀실, 정당의 문지기 역할

이 책은 앞부분에서 히틀러 등 독재자의 예를 들며 민주주의 규범, 정치 경쟁자, 폭력, 언론 등에 대해 보이는 태도를 통해 독재자를 감별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오랜 동안 미국이 독재자를 걸러내고 민주주의를 지켜온 비결을 설명했다. 그 첫 번째는 정당의 문지기 역할이었다.

책을 읽어보니 선동적이고 차별적 발언을 쏟아내며 대중적 인기도 높았던 사람은 트럼프 이전에도 여럿 있었다. 그 중에는 어린 시절 자동차를 발명했다며 위인전에서 읽은 포드도 있었다.

저자들은 찰스 코글린, 휴이 롱, 조지 월리스(미국사를 잘 몰라서인지, 이들이 인기가 높았다는 사실은 고사하고 이름도 책을 읽으며 처음 들었다) 같이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이 대선 후보조차 되지 못했던 것은, 정당 내 소수 권력자들이 대통령 후보를 정하는 문지기 역할을 하면서 함량 미달의 후보를 걸러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자들 스스로도 이 방식이 민주적이지 않다고 인식해서 인지 '비민주주의가 지켜온 민주주의'라는 소제목을 달고 이런 설명을 했다.

사실 이 부분은 읽을 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과두정치 국가라고 버니 샌더스도 주장했는데, 미국의 지식인들이 소수의 권력자에 의한 통치를 옹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담배가 자욱한 밀실에서 이루어진다는 대선 후보 선출에 대해 저자들은 꽤 긍정적이고 호의적으로 서술했다.

내가 서평을 쓰게 된 계기

플라톤이 민주주의를 중우 정치로 판단한 것처럼, 미국 국민들의 어리석은 선택을 한탄하며 과두 정치의 장점을 다시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인가 의심하고 있을 무렵, 이 책의 서평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한 저자들의 주장을 만났다. 하나는 민주주의를 지켜온 전통 규범이고, 또 하나는 상호 존중이라는 덕목이었다.

가장 유명한 예를 하나 들자면,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대통령 선거에 두 번만 출마하고 세 번째에는 스스로 나가지 않았다. 이것이 하나의 전통이 되어 대공황 시기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네 번이나 출마하고 당선이 되기 전까지는 당연하다는 듯이 누구나 지키는 기준이 되었다고 한다. 헌법과 법률, 규칙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세세하게 다 규정할 수는 없기에 관행이나 전통이 정당 간의 극한 대립이나 파국을 막고 민주주의를 유지해 나갔다는 것이다.

책에 소개된 19세기 정치 상황을 보면, 미국도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 못지않게 서로를 비방하고 비협조적으로 싸우는 등 한심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한 해 한 해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가면서 민주주의를 지켜줄 규범을 만들어 나가고 이것을 좋은 전통으로 만들어 나갔다. 그러는 과정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서로를 비애국자나 악인으로 보는 생각을 버리고 필요한 사안에서는 적극 협력하며 성공적인 민주정치를 구현해 나갔던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여당과 야당을 가릴 것 없이 서로를 비난하고 국가를 위태롭게 한다고 주장하는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이 떠올랐다. 더불어 민주주의를 시행해 본 역사가 짧기에 우리는 미국처럼 저렇게 성숙한 정치적 전통도 상호 존중의 자세도 확립하지 못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붕당 정치, 암울한 전망

그런데, 뉴트 깅리치라는 들어본 것도 같은 정치인을 소개하는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미국 정치의 미래가 암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호 관용과 상대의 선의를 믿는 정치를 이어나가던 미국이, 상대 당 정치인들을 악하고 비도덕적이라 비난하며 무조건 반대하는 정치로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건이 아침기도라고 할지라고 무조건 반대하겠다'는 한 정치인의 말에는 실소마저 나왔다.

저자는 이러한 변화가 클린턴 행정부 즈음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점점 더 심해져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2019년 1월 현재, 공화당과 민주당이 예산안을 합의하지 못하여 연방정부의 셧다운 상태가 중순이 넘어서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 저자의 진단이 틀린 것은 아닌 것 같다.

저자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켜주었던 기본 규범을 다시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글을 끝맺고 있고, 미국 정치의 미래에 대해 아주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내게는 우리나라의 붕당정치가 떠오르며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미국의 민주정치도 결국은 파국을 맞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의 붕당정치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과는 달리, 당파싸움으로 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했던 정치 형태는 아니었다. 붕당 형성 이후 틀이 잡힌 후에는 매우 모범적인 정당 정치를 보여주었다. 철학적 학문적 견해의 차이에 의거하여 붕당을 만들고, 내가 속한 붕당과 상대의 붕당 모두 군자의 당이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정치를 해 나갔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최명길과 김상헌이 국가의 살리고자 치열하게 대결하는 장면이 나오듯이, 붕당 정치는 군자들의 치열한 토론을 통해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는 정치 형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역사 시간에 배워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 아름다운 붕당정치도 결국은 상대 당의 사람들을 모두 죽여 버리는 환국으로 이어졌고, 결국은 상대를 모두 몰아낸 후 1당 독재 정치, 이후에는 몇몇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정치로 흘러갔다. 아무리 상호 존중의 정신을 염두에 두고 임하더라도, 치열한 정치 토론을 백년 넘게 하다 보면, 아무리 선하고 똑똑한 인간이라도 화가 머리끝까지 나기 때문인 걸까?

더불어 민주주의는 참으로 취약하고 연약한 시스템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필자는 미국의 사례에 초점을 맞추어 서평을 쓰지만, 저자들은 페루, 터키, 헝가리, 러시아, 독일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예를 들며 민주주의가 짧은 기간에 손쉽게 허물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붕당정치 사례를 떠올리며 미국 민주정치의 암울한 종말을 생각했지만, 역사가 반드시 되풀이 되지는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 북핵 문제 해결을 이루어 우리에게는 큰 행운을 주고, 저자들의 희망대로 미국에게는 역사책에 실릴 해프닝으로 끝날지, 민주주의의 붕괴를 가져올지, 아직은 알기 어렵다.

다만, 민주주의는 매우 취약하니 잘 지켜보아야 한다는 점,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선 나와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이도 절대로 악마화하지 말고 선의를 가진 동등한 애국자로 존중해야 한다는 점은 깊이 수긍하고 깨우칠 수 있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어크로스(2018)


태그:#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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