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저축은행이 우리은행에게 시즌 4번째 패배를 안기며 3연승을 내달렸다.

정상일 감독이 이끄는 OK저축은행 읏샷은 18일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은행 2018-2019 여자프로농구 5라운드 우리은행 위비와의 원정 경기에서 64-60으로 역전승을 거뒀다. 2쿼터까지 17-31로 뒤져 있던 OK저축은행은 3, 4쿼터에서 47-29로 앞서며 선두 우리은행에게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고 공동 4위로 뛰어 올랐다(8승13패).

OK저축은행은 외국인 선수 다미리스 단타스가 21득점 11리바운드로 공격을 이끌었고 어시스트 1위를 달리고 있는 안혜지는 이날도 7개의 어시스트를 배달했다. 우리은행은 전반의 우위를 지키지 못하고 다소 허무한 역전패를 당했지만 이날 우리은행은 승패와 별개로 대단히 의미 있는 하루를 보냈다. WKBL의 최고령 선수이자 통합 6연패의 주역 임영희가 WKBL 역대 최다 경기 출전 신기록(587경기)을 세운 것이다.

위성우 감독을 만난 후 활짝 열린 임영희의 전성기
 
 신세계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던 임영희에게 우리은행 이적은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신세계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던 임영희에게 우리은행 이적은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 우리은행 위비


WKBL에서는 프로의 높은 벽을 느끼고 조기 은퇴를 하는 선수들이 적지 않지만 일단 프로에 지명된 선수들은 대부분 학창 시절 전국에서 알아주던 유망주들이다. 임영희 역시 마산여고 시절 신정자와 함께 팀을 이끌다가 1999년 현 KEB하나은행의 전신인 신세계에 입단했다. 고교 무대에서는 나름 이름을 날렸지만 당시 신세계에는 양선애, 이언주, 장선형 같은 스타들이 즐비했고 경험이 적은 임영희가 경기에 나설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임영희는 2003년 겨울리그 장선형의 부진을 틈타 주전으로 출전하며 평균 33분을 소화했지만 평균득점은 5.9점에 불과했다. 임영희는 신세계 입단 후 10년 동안 16번의 시즌(2007년 겨울리그까지 WKBL은 1년에 2번의 시즌을 개최했다)을 보냈지만 코트보다는 벤치가 더 익숙한 평범한 후보 선수에 불과했다. 실제로 2006년 겨울리그부터 2008-2009 시즌까지는 5시즌 연속 5점 미만의 득점에 그치며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2008-2009 시즌이 끝나고 FA자격을 얻은 임영희는 프로 입단 후 11년을 뛰었던 신세계를 떠나 우리은행으로 이적했다. 지금이야 우리은행이 상대를 찾기 힘든 독보적인 강 팀이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은행은 리그 꼴찌를 밥 먹듯이 하는 최약체로 대형FA들이 꺼리는 팀이었다. 하지만 더 많은 출전 시간을 원하는 준척급 FA였던 임영희에게 당장의 성적에 목을 메지 않는 우리은행은 출전기회를 얻기에 매우 적당한 팀이었다.

임영희는 우리은행 이적 후 3년 동안 30분 이상의 출전 시간을 보장받으며 평균 10점을 넘나드는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그래도 준수한 주전급 선수가 됐을 뿐 여전히 리그에서 돋보이는 선수는 아니었다. 그렇게 평범하던 임영희의 농구 인생을 바꾼 인물이 바로 2012년 우리은행에 새로 부임한 위성우 감독과 전주원 코치였다. 위성우 감독은 임영희가 보여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가진 선수라고 판단하고 임영희를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위성우 감독의 지옥훈련을 잘 따라간 임영희는 2012-2013 시즌 15.37득점 5.17리바운드 3.31어시스트의 성적으로 우리은행을 통합우승으로 이끌며 정규리그와 챔프전 MVP를 싹쓸이하는 기염을 토했다. 임영희는 2013-2014 시즌에도 두 시즌 연속 챔피언 결정전 MVP를 차지하며 서른이 훌쩍 넘은 늦은 나이에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우리은행의 2010년대 황조시대는 임영희의 각성과 함께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통합 6연패의 주역으로 활약한 우리은행의 정신적 지주
  
 통합 7연패를 노리는 우리은행에서 임영희는 여전히 핵심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통합 7연패를 노리는 우리은행에서 임영희는 여전히 핵심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사실 2013-2014 시즌을 기점으로 우리은행의 중심은 임영희에서 '또치' 박혜진으로 넘어가 있었다. 하지만 임영희는 팀의 맏언니로서 언제나 한결 같은 활약을 펼치며 우리은행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톡톡히 했다. 리그 MVP 자리는 박혜진과 양지희(은퇴) 같은 동생들에게 양보했지만 우리은행 내에서 임영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혀 줄어 들지 않았다. 

실제로 임영희는 우리은행 이적 후 10번의 시즌 동안 평균 출전 시간이 30분 이하로 떨어졌던 시즌이 단 한 번 밖에 없었다. 임영희가 평균 28분45초 소화에 그쳤던(?) 2016-2017 시즌엔 우리은행이 33승2패로 정규리그 역대 최고 승률 기록(.943)을 세웠다. 당시엔 우리은행의 전력이 워낙 압도적이라 체력 관리가 필요한 노장 임영희가 굳이 많은 시간을 소화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은행뿐 아니라 대표팀에서도 임영희의 존재감은 점점 커졌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대표팀에 선발되고도 많은 출전시간을 얻지 못했던 임영희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임영희는 작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남북단일팀의 주장으로 활약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개막식에서는 한국 선수단을 대표하는 기수로 나서기도 했다.
 
임영희는 프로 21년째를 맞은 2019년 1월 18일 드디어 정규리그 통산 587번째 경기에 출전하며 고교 동창 신정자를 제치고 WKBL 역대 최다 출전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20대 시절 여러 차례 선수생활에 고비가 있었던 임영희이기에 역대 최다 출전은 더욱 값진 기록이다. 임영희는 우리은행의 남은 14경기 중 13경기에 출전하면 600경기 출전이라는 전인미답의 금자탑을 세울 수 있다.

1980년생 임영희는 2019년이 되면서 한국나이로 정확히 마흔이 됐다. 하지만 임영희는 여전히 우리은행 내에서 3번째로 많은 득점(11.24점)과 출전시간(31분48초), 두 번째로 많은 어시스트(3.5개)를 기록하고 있다. 통합 7연패를 노리는 우리은행의 현재 전력에서 임영희가 빠지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임영희는 그저 '나이에 비해 활약이 좋은' 노장이 아닌 우리은행 전력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 2018-2019 WKBL 우리은행 위비 임영희 역대 최다 출전 신기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