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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만난 유정란 계란빵이다. 길거리 음식에는 아련한 추억이 담겨있다.
 길거리에서 만난 유정란 계란빵이다. 길거리 음식에는 아련한 추억이 담겨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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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이면 유독 생각나는 길거리 음식이 있다. 계란빵, 붕어빵, 어묵, 호떡, 국화빵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추운 겨울을 대표하는 길거리음식들이다. 하지만 이들 중 일부 음식은 사계절 내내 길거리를 지켜오는 것도 있다.

길거리에서 만난 주전부리 음식은 추위에 종종거리며 가던 발걸음을 멈칫거리게 한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훈김과 함께 뿜어대는 음식 향기는 후각을 자극한다. 그 유혹에서 쉬 벗어나기 어렵다. 한 개 집어 들고 먹다보면 추위에 얼어붙은 몸과 마음이 어느새 온기로 훈훈해져 온다.

길거리 음식에는 아련한 추억이 스며있다. 이들 음식은 주머니가 가벼워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계란빵은 계란을 통째로 넣고 구워내 한 개만 먹어도 배가 든든하다. 붕어빵은 달콤한 팥 앙금이 들어있어서 좋다. 뜨끈한 국물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어묵은 칼바람도 녹여준다. 넓은 불판에 지그시 눌러 만든 호떡과 국화꽃잎을 닮은 국화빵에도 자꾸만 손이 간다.

"속옷총판을 하다 32평 아파트 한 채 날려먹었어요"

오늘 소개할 길거리 푸드는 계란빵이다.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면 해결되는 착한 간식이다. 유기농 계란을 한 알 통째로 넣어 정성껏 만들었다. 맛 또한 유명 제과점이나 프랜차이즈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대부분 노점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길거리에서 일하고 있다. 전남 여수의 여천농협 죽림로컬푸드 앞 길거리에서 만난 이분도 그렇다. 순천에서 의류사업을 하다 1997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IMF 경제위기 파고를 넘지 못하고 넘어졌다. 그 이후 운명이 바뀐 그는 먹고살기 위해 길거리로 나왔다.
 
노점에서 바나나빵과 계란빵을 파는 윤필수씨가 바나나빵을 만들고 있다.
 노점에서 바나나빵과 계란빵을 파는 윤필수씨가 바나나빵을 만들고 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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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빵장수 윤필수(54)씨다. 그가 만든 계란빵은 아주 특별하다. 한때 의류업체 총판을 하며 잘 나가던 그가 왜 트럭을 몰고 길거리로 나선 걸까. 그의 사연을 들어봤다.

"순천에서 속옷 총판을 하다 돈 다 까먹었어요. 순천에 있는 32평 아파트 한 채 날려먹었어요."

주로 유통업에서 일을 했던 그의 고향은 보성 벌교다. 현재는 여수에 살고 있다. 10여 년 전 여수에 정착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이일 저일 수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사업 실패 이후 길거리 노점으로 나설 때가 가장 힘들고 슬펐다며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

"사업 실패하고 노점을 처음 시작할 때가 가장 힘들고 슬펐어요."

계란빵 만드는 방법은 서울 청량리에 사는 고향 형님에게 배웠다. 보다 나은 품질의 계란빵을 만들기 위해 나름의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서울 청량리 근처에 사는 고향 형님한테 계란빵 만드는 방법을 배웠어요."

계란빵 장사를 하다 한동안 쉬었다. 이후 과일도 팔고, 돈 되는 일이라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옛날 계란빵을 하다가 한참을 쉬었어요. 이것저것 많이 했어요. 과일도 팔고... 계란빵을 6년 전에 다시 시작했어요."

기분 좋은 계란 향이 훅~ 길거리 푸드 '유정란 계란빵'

계란빵에서 계란향이 은은하게 피어오른다. 갓 구워낸 계란빵이다. 맛이 예사롭지 않다. 계란향도 우월하고 맛 또한 고급지다. 기자가 계산할 거라며 같이 나눠먹자고 했더니 냄새만 맡아도 힘들다고 했다.

그의 하루는 아침 7시 30부터 시작된다. 30여분 영업 준비를 거쳐 아침 8시에 첫 계란빵이 나온다. 오후 8시에 장사를 마감한다. 점심은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하루하루 고단한 삶이지만 자신이 만든 계란빵이 맛있다고 손님들이 칭찬해줄 때가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손님이 없을 때는 정말 힘들어요. 계란빵 맛있다고 할 때가 가장 좋아요."

계란빵이 정말 맛있어서 자랑 좀 해달라고 하자 그는 특별히 자랑할 게 없다고 한다.

"특별히 자랑할 게 있겠습니까마는... 계란은 직접 양계장에서 유정란을 가져와요. 물은 남원주조장 술도가 인근에서 막걸리 만드는 물을 일주일에 한 번씩 길어다 사용해요. 빵에 조미료가 전혀 안 들어가요."
 
유정란 계란빵은 반죽 넣고 계란 한 개를 통째로 넣어 반죽을 한번 덧입혀 만든다.
 유정란 계란빵은 반죽 넣고 계란 한 개를 통째로 넣어 반죽을 한번 덧입혀 만든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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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빵 반죽을 각각의 용기에 담아 가스 불에 20분간 구워낸다.
 계란빵 반죽을 각각의 용기에 담아 가스 불에 20분간 구워낸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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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란을 사용해서인지 계란빵에서 기분 좋은 계란 향이 훅~ 풍겨온다. 반죽 넣고 계란 한 개를 통째로 넣어 반죽을 한번 덧입혀 가스 불에서 20여 분 은근하게 구워냈다. 기분 좋은 느낌의 맛이다. 은근한 끌림에 뒷맛도 개운하다.

계란빵 굽는 틀은 자그마한 드럼통을 개조해 만들었다. 계란빵을 각각의 용기에 담아 선반에 올려 가스 불에 구워낸다. 모든 음식이 다 그렇듯 계란빵 맛 또한 좋은 식재료와 불 조절이 맛을 결정짓는다.

"좋은 재료에 불 조절을 잘해야 해요. 빵이 타 불고, 덜 익고, 불에 따라 차이가 많아요. 보통 20분 정도면 나옵니다. 다 익으면 꼬신 냄새가 팍 나요. 1단에 19개 나와요. 위에 불이 세니까 위에는 계란빵을 아래에는 바나나빵을 구워요."

손님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진다. 유정란을 사용해 정성껏 만들어서일까. 유독 계란빵이 많이 팔린다. 계란빵 한 개의 가격은 1천원이다. 바나나 모양의 바나나빵은 5백 원, 치즈를 넣은 치즈계란빵은 한 개에 2천원을 받는다.

"요즘 경기가 안 좋으니까 천 원짜리 많이 사 먹잖아요."

길거리 음식에는 아련한 추억이 담겨있다. 가격 부담도 덜한데다 많이 먹어도 살이 덜 찔 거 같은 생각이 든다. 맛도 좋은 이 음식은 거리를 걸으며 먹어야 더 맛있다. 식당에서 맛보는 그런 음식들과는 전혀 다른 소소한 낭만이 느껴진다.
 
여수 죽림 여천농협 앞 길거리 노점상이다.
 여수 죽림 여천농협 앞 길거리 노점상이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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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블로그 '맛돌이의 오지고 푸진 맛'에도 실립니다.


태그:#계란빵, #길거리음식, #노점상, #맛돌이, #바나나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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