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우정원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우정원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서정준

 
지난해 11월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됐던 연극 <인형의 집>은 독특한 성격으로 화제를 불렀던 작품이다. 페미니즘 연극의 교과서로 알려진 희곡 <인형의 집>을 바탕으로 무용을 더해 새롭게 재해석했기 때문인데, 인물들의 내면이 강렬하고 독특한 무용으로 표현되며 관객에게 텍스트를 글이나 말로 보는 것 이상으로 선명하게 전달됐다.

지난 12월 18일, 공연이 끝난 뒤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배우 우정원을 예술의전당에서 만나 연극 <인형의 집>과 배우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인형의 집>에서 '크리스티네 린데(이하 크리스티네)' 역을 맡아 노라와 대비되는 삶의 방식을 선보였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무용의 이미지는 그와 상대역인 '닐스 크로그스타드' 역의 김도완 배우가 보여주는 면이 컸는데, 특히 우정원의 출연 자체가 작품의 무용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연기 전공도, 무용 전공도 아닌 그가 어떻게 해서 지금과 같은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을까?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하 <조씨고아) 등에 출연하며 탄탄한 연기력을 인정받은 그의 내공에 호기심이 생겼다.
 
 배우 우정원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우정원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서정준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자기소개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우정원이고요. 1983년 8월 27일생. 2녀 중 장녀입니다. 수원에서 태어났어요. 세 살부터 열 살까지 홍성에서 살다가 경기도 산본으로 이사왔고, 서른 살까지 살았죠. 서른한 살부턴 분당에서 살고 있네요."

- 자기소개에 연기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네요(웃음). '배우 우정원입니다'를 기대했는데요. 배우가 된 과정이 복잡하다고 들었어요. 
"연기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하게 될 것 같아서 굳이 하지 않았어요. 어릴 때는 피아노 학원을 다녔는데 너무 내성적이라 부모님께서 예술을 시키고 싶어하셨대요. 그래서 어쩌다 미술을 했는데 미술 선생님이 예쁘게 봐주셔서 상도 타고 하면서 전공을 하게 됐죠. 한국화를 전공 삼아 대학도 갔어요. 서양화는 색을 덧칠해서 그려내는데 한국화는 한 가지의 색을 지닌 점과 선을 가지고 물의 농도를 조절해서 그려요. 그걸 가지고 거리와 깊이, 모든 걸 할 수 있어서 선택했죠. 

그런데 가자마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대학 예술축제의 치어리더로 나가게 됐어요. 그때 동경하던 일이 제게 현실로 다가온 것 같아요. '남보다 배우는 게 빠르고 즐거워하는구나' 하고요. 사실 대학 때까지도 너무 내성적이라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는데 치어리더 활동을 보고 사람들이 절 활발한 줄 알아서 오해도 많이 받았죠. 그 덕분에 학생회장까지 했어요(웃음). 다른과 친구들과 친해져서 연극, 영화 작업도 도와줬는데 옆에서 지켜보며 '나도 해보면 재밌겠다' 같은 생각을 했죠. 그런데 학교에 예전부터 치어리더 안무를 도와주던 오빠가 있었어요. 전직 댄스가수인 최승렬 배우에요. 그분의 권유로 <지하철1호선> 오디션을 봤고, 3차에서 탈락했지만 그때의 경험이 데뷔까지 연결된 셈이죠."

- 재밌는 시작이었네요(웃음). 연극 <인형의 집>에 출연했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났는데, 아무래도 독특한 작품이니만큼 소감이 남다를 것 같아요.
"<인형의 집>. 정말 잊지 못할 특별한 작품이에요. 사실 2017년 가을에 이미 캐스팅 이야기가 오갔거든요. 2018년 1월에는 이미 캐스팅이 됐죠. 제가 훈련삼아 무용을 배우긴 했지만, 일반적으론 무용 공연은 3일을 넘기지 않는데, 3주짜리 공연을 하고 공연 연습도 하루에 8시간씩 했죠.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계에 부딪히는 작품이었어요. 연습할 때는 연출님이 신을 시작하면 노래 틀어주고 즉흥으로 움직이게 했어요. 그래서 저는 매일 새로운 걸 보여줘야 했죠. 또 제가 최선을 다해 안무를 보여줘야, 연출님도, 배우들도 거기에 영감을 받고요. 공연이 끝나고 한참 지났는데 지금까지도 몸이 좀 피곤해요(웃음). 옛날에 혼자서 발레를 오랫동안 했는데, 내가 언젠가 이걸 써먹을 때가 올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걸 써먹게 돼서 너무 좋아요. 역할도 맘에 들고 제 장점을 살려주신 점도 좋았죠. 정말 있는 힘을 다해서 한 작품이기 때문에 공연 끝난 뒤에 뭐랄까 제게 상처가 남은 기분이에요."

- 상처가 아물면서 더 강해질 수 있을까요? 
"아마도요. 상처가 나으면요. 낫겠죠. 최근 3년여간 5개월에 하루 쉴 때도 있었고, 두세 개 공연을 같이 해서 힘들기도 했어요. 그만큼 많이 찾아주셔서 감사하기도 했고 생계에 도움이 되기도 했죠(웃음). 그런데 <인형의 집>을 하며 마침표를 찍은 느낌이에요. 들어오던 작품들도 마침 타이밍 좋게 멈췄고 저도 쉬고 싶어졌고요. 생각을 다르게 하며 제 바운더리를 넓혀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 우정원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우정원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서정준


- 그렇다면 2018년을 한번 돌아볼까요. 배우 우정원의 2018년.
"처음 저한테 무용을 해보라고 한 작품(<조씨고아>)을 2015년에서 지금까지 하고 있죠. 그 작품에서 파트너를 했던 김도완 배우랑 <인형의 집>에서도 함께 했죠. <조씨고아>에서도 오빠가 무용전공이란걸 알고서 연출님이 '한 번 해봐'한 게 잘돼서 무용을 하게 됐거든요. 그전에는 제가 무용을 할 수 있다는 걸 끄집어내준 분이 없었어요. 정리하자면, 무용으로 점철된 2018년이었어요(웃음). <조씨고아>도 의미있는 공연이었고요. 뭐랄까. 뿌린 씨앗을 나름 수확한 1년이 됐죠. <조씨고아>는 물론이고 <가지>라는 작품도 동아연극상을 탔어요. 아, <얼굴도둑>에서도 춤을 췄네요. 이상한 춤인데(웃음). 어쨌든 그런 씨앗이 좋은 열매로 자라서 수확하게 된 2018년이에요."

- <인형의 집>은 페미니즘 연극, 여성 서사에서 상징적인 작품이에요. 그런 희곡으로 우정원만이 할 수 있는 무용이 담긴 연극을 한 거잖아요. 나름 큰 의미가 있지 않나 싶어요. 
"일단 작품만 놓고 봤을 때 원작을 보신 분들이 많이 느끼는 건 '노라'를 찾아간 '크리스티네'가 느끼는 감정이, 자신과 상반된 상황을 보며 질투도 하고 견제도 하고 결국 친구과의 의미를 져버리죠. 끝내 '노라'는 집을 나가고 '크리스티네'는 집안으로 들어가는 역할이죠. 여자끼리의 신경전도 있고, 다시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찾아 들어가게 되는 역할이에요. 제가 생각한 건 '노라'를 만나러 갈 때, 흔히 말하는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같은 프레임을 만들지 말자는 거였어요. 처음 둘이 만나는 침대 신에서도 더 반갑고 즐겁게 '노라'를 만나죠. 

내가 <인형의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거기에 갇히는 게 아니라 '크리스티네'의 인생에서 봤을 때 잃어버렸던 사랑을 다시 찾게 됐다는 것에 포커싱을 맞추려 했어요. 관객들이 볼 때 '크리스티네'가 타인을 나쁘게 이야기하거나 약점을 끄집어내는 등 원작의 뉘앙스처럼 '노라'와 상반된 운명처럼 보이지 않고, 극 안에서 '크리스티네'가 자신의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주려 했죠. 그래서 옛날에 놓쳤던 사랑을 다시 찾는데 중점을 뒀어요. '크리스티네'가 옛날에는 경제적인 문제로 다른 선택을 했지만, 정말 사랑을 되찾은 느낌으로요." 

- 꼭 여성 중심, 능동적이라고 해서 남성이 필요 없다거나 그런 식의 캐릭터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죠. '노라'와 '크리스티네'의 모습이 잘 보이는 것처럼, 이렇게 여성 중심의 작품들이 늘어나는 것이 참 긍정적이에요.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아요. 2018년 연극계에서 미투가 일어난 후로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도 생기고 관련된 조항들이 계약서에도 생겼고요. 인식을 바꾸는 게 훨씬 더 어렵죠. 그래서 제가 재밌게 생각하는 지점은 최근 들어 만난 희곡들마다 여성 캐릭터를 어떻게 주체적으로 바꿀까 의견을 나누는 게 좋아진 변화라고 생각해요."
 
 배우 우정원

배우 우정원 ⓒ 서정준

  
- <인형의 집>이 있게 한 우정원의 춤. 그 춤을 계속 유지하고 훈련한 과정이 궁금하네요. 
"배우는 계속 훈련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냥 운동은 재미가 없어서 춤을 계속 배웠어요. 그런데 사실 제가 20대, 30대 초반까진 연극계에서 춤을 배우려고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몸으로 하는 훈련에 관심이 많아서 국립극단의 배우 재교육프로그램이나 외부 워크샵도 많이 들었거든요. 그때는 그걸 즐겁고 미련하게 했는데 이렇게 빛을 발하네요(웃음)." 

- 처음 오디션은 <지하철1호선>을 봤다고 했는데, 왜 연극만 하게 됐나요? 
"제가 뮤지컬에 적합한 발성으로 노래를 못하더라고요. 뮤지컬을 보면 신나긴 하는데 뮤지컬 스타일의 노래가 저와 안 맞나 싶은 생각이 있었죠. 연극만 하려고 한 건 아니에요. 오디션을 계속 떨어져서 타의로 10개월 정도 쉬기도 했죠. 그렇지만, 주변에서 저를 조금 오해하기도 했어요. 제가 연기 전공도 아닌데 배우로서 데뷔했고, 최근에는 국공립기관에서 활동하니까 저를 승승장구한다고 보기도 하더라고요. 전혀 아닌데(웃음)." 

- 그렇지만, 국립극단에서 공연하는 건 많은 배우들이 꿈이지 않나요?
"국공립기관에 소속되길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대부분은 각자 활동하는 극단이나 모교가 있잖아요. 저는 서울 출신이 아니라 그런 게 없이 데뷔했기 때문에 뭐랄까. 마치 용병같은 상황이었어요. 오디션을 봐서 붙어야만 작품을 할 수 있었죠. 그래서 국립극단에서 연기하게 된 것을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 새롭게 트레비스컴퍼니와 계약하며 제2의 도약을 선언했습니다. 어떻게 계약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지인이 드라마 오디션이 있다고 했어요. 우연히 저도 오디션을 보러갔는데 거기 캐스팅디렉터인 회사 대표님의 눈에 띄었어요. 앞으로 여러가지 지원도 받고 연기생활에 있어 긍정적인 변화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무척 감사하죠. 어디서든 저를 필요로 하는 환경에 기뻐하는 게 배우잖아요."
 
 우정원 배우 프로필 사진. 트레버스컴퍼니 제공.

우정원 배우 프로필 사진. 트레버스컴퍼니 제공. ⓒ 트레버스컴퍼니

  
- 배우 우정원의 2019년. 어떻게 될까요?
"저 사실 그런 야망이라는 게 뭐랄까. 제가 국립극단 들어가서 제일 좋았던 게, 가족이나 후배랑 회식할 때 마음의 부담 없이 돈을 낼 수 있을 때였어요. 이보다 풍요로운 부를 누리겠다. 유명세를 떨치고 싶다. 그런 생각은 사실 별로 없어요. 얼마 전에 회사 분들과 회식을 했는데 무척 재밌었거든요(웃음). 그런데 그때 들은 좋은 이야기가, 제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보는 게 설렌다는 이야기였어요. 그런 이야기가 참 듣기 좋아요. 연극은 자기 할 일만 하면 공연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거 이상으로 마음을 쓰고 뭐든지 더 '플러스 알파'를 만들 때 좋은 게 완성돼요.

앞으로 어떤 성패가 나올지는 장기적으로 봐야하는 거고, 제가 뭔가 엄청난 재능을 가진 젊은 스타도 아니고요. 그냥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플러스 알파'를 만들면 잘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여러 바운더리의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해요. 20대에도 할머니 역할을 했죠. 저에 대해 자랑할 수 있는 건 고급스러움. 천한. 예쁜. 못생긴. 다양한 역할을 넘나들며 해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다양한 매체에서도 보여질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있네요."

- 꽤 긴 시간 인터뷰였네요. 오늘 인터뷰 끝나면 제일 하고 싶은 일이 뭘까요.
"집에가서 밥먹고 설거지하고 운동하고 영화보다가 자고 싶어요(웃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정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twoasone/)에도 실립니다.
우정원 인터뷰 연극 인형의 집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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