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Y캐슬 > 포스터

< SKY캐슬 > 포스터 ⓒ JTBC

 
최근 JTBC의 금토드라마 < SKY 캐슬 >이 연일 화제다. 참담한 우리의 교육 현실과 맞물리면서 시청자들의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교육적 폐단은 '지독한 학벌주의'라는 단어 안에 모든 게 고스란히 담겨있다.

공고히 자리 잡고 있는 이 학벌주의는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부터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다시 치열한 경쟁을 부추기면서 학부모와 아이들을 불안감과 초조함을 볼모로 잡은 뒤 사교육 시장을 기웃거리게 만든다.

드라마 < SKY 캐슬 >을 보고 떠오른 것은 인도 영화 <지상의 별처럼>(2007)과 영국 영화 <하이-라이즈>(2016)였다. <지상의 별처럼>은 인도의 교육 현실을 다룬 영화이고, <하이-라이즈>는 직종과 빈부 격차에 따라 한 건물의 서로 다른 층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이들은 저마다 가진 재능과 성장 속도가 다르다

<지상의 별처럼>에 등장하는 이샨(다실 사페리)은 어느 누구보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주변의 일에 관심이 많은 8살짜리 소년이다. 보통 아이들 같았으면 예삿일로 넘어갈 법한 일도 이샨에게는 온통 즐거운 구경거리이자 놀이거리였다.

이렇듯 호기심 많은 이샨이었지만, 주변으로부터는 오히려 천덕꾸러기이자 문제아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학교에서는 다른 아이들만큼 읽기 쓰기가 되지 않아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는 일이 다반사였다. 낙제를 받는 바람에 학년 승급을 못 해 2년 동안이나 같은 학년에서 연거푸 수업을 받는 처지이기도 했다.
 
 영화 <지상의 별처럼>의 한 장면

영화 <지상의 별처럼>의 한 장면 ⓒ (주)앳나인필름

 
이샨의 형(타나이 크헤다)은 모든 과목에서 1등을 놓치지 않을 만큼 빼어난 우등생이었다. 학교에서는 모범적인 학생으로, 가정에서는 이상적인 자녀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에 반해 이샨은 천덕꾸러기에 말썽만 부리는 데다 부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되레 반항하는 태도로 일관하여 늘 부모의 속을 썩이는 입장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샨은 난독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어 글 읽기와 쓰기가 잘되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학습의 가장 기본인 읽기와 쓰기가 선천적으로 안 되다 보니 어떤 수업도 제대로 따라갈 수 없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이샨은 결국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SKY 캐슬'이 꼬집는 한국 사회의 입시경쟁

영화 속 인도의 교육 방식과 우리의 그것은 닮은꼴이다. 아이들 저마다 지닌 끼와 재능 그리고 성장 속도는 제각기 다른 법인데, 아이들을 같은 공간에 몰아넣고서는 일정하게 정해진 형태와 수준에 이를 때까지 일방적으로 따라오라고 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어느 누구보다 물고기를 잘 잡는 아이의 재능은 죄다 무시하고 무조건 나무 꼭대기에만 올라가라는 형국이다. 덕분에 학교 현장에서는 아이들이 자기 재능을 온전히 찾지 못한 채 억지로 나무를 기어오르다가 중간에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멈추든가 심지어 나무에서 떨어진다.
 
 < SKY캐슬 > 스틸 사진

< SKY캐슬 > 스틸 사진 ⓒ JTBC

 
부모들은 아이들이 꼭대기까지 어떻게든 올라갈 수 있도록 채찍질을 가하거나 당근책을 제시하곤 한다. 우리만의 독특한 교육 체계 가운데 하나인 사교육은 바로 이러한 과정 속에서 탄생했다.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지능화되어가는 사교육은 결국 지독한 학벌사회가 빚어낸 '불안'에 뿌리를 둔다. 또한 비정상적인 사교육 열풍은 결국 '불안'이라는 정서를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괴물과 다름없다.

드라마 < SKY 캐슬 >의 소재이기도 한 입시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인은 약간의 과장이 보태졌을지언정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엄연히 현실 속에서 존재하는 직업이다.

아울러 '학벌이 곧 부'라는 인식은 < SKY 캐슬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서도 공고하다. 단순히 인식이나 분위기 차원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학벌이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무시하기 어렵다. 남을 짓밟아야 보다 상층부로 올라가는 이러한 구조는 학부모와 아이들의 불안을 먹고 살아가는 사교육 시장을 더욱 부풀리게 하는 원동력이다.
 
 < SKY캐슬 > 스틸 사진

< SKY캐슬 > 스틸 사진 ⓒ JTBC

 
이는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매달 수십에서 수백만 원에 이르는 고액 과외로 우리 아이들을 내모는 배경이 되게 한다. 이렇듯 배보다 배꼽이 커진 덕분에 공교육은 단순히 모두가 비슷한 방식으로 학습된 아이들의 우열을 평가하는 한낱 도구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들은 지 오래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지독한 입시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몰아넣는 이유는 단 하나다. 공고한 학벌사회에서 좋은 학벌은 결국 이른바 상위 계급이 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자식 잘못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거의 없을 테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매달리는 형국이다. 결국 아이들의 '입시 지옥'은 부모들의 거침없는 욕망에서 비롯되고 있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 아이들이 서 있을 공간이라고는 일절 없다.
 
영화 <지상의 별처럼>이 전하는 확고한 메시지

영화 <지상의 별처럼>에서 이샨은 또다시 유급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번에 유급되면 학교로부터 영구 퇴학 처분이 내려질 상황이다. 이샨의 아버지(비핀 샤르마)는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기강이 엄격하기로 유명한 기숙학교로 이샨을 보낸 것이다.

가뜩이나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강압에 가까운 주입식 교육에 이골이 난 이샨은 자괴감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점점 말을 잃어간다. '학교를 옮겨달라'고 요청하는 이샨의 외침은 공허하기만 하다. 그의 고통은 점점 극으로 치닫는다.
 
 영화 <지상의 별처럼>의 한 장면

영화 <지상의 별처럼>의 한 장면 ⓒ (주)앳나인필름

 
때마침 미술교사 니쿰브(아미르 칸)가 이 학교로 부임해 온다. 그의 등장은 이샨에게는 일종의 '단비'와 같다. 강압적 분위기의 학교에서 점차 이샨의 숨통이 트이는 계기가 되게 해준다. 니쿰브는 장애아동을 가르치는 특수학교인 '튤립학교' 출신답게 이샨의 증상을 금세 발견하고 이샨에게 맞는 교육 방법을 적용하기 시작한다. 모두가 '이샨은 문제아'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상황에서 니쿰브는 이샨의 놀라운 재능을 발견한다. 니쿰브는 이샨을 보듬어 서서히 변화하게 만든다.

앞서 언급했던 인도의 교육 현실은 무자비한 경쟁 체계라는 면에서 우리의 교육 현실과 비슷해 보인다. 끊임없는 주입식 교육이 이뤄지고, 그 안에서 '무조건, 어떻게든 버티라'고 학생들을 채근한다. 낙오하는 학생들은 극 중 이샨처럼 문제아로 취급받고, 아이들은 교육 시스템에 맞춰 매끈하게 다듬어진 기계 부속품처럼 길러진다.

영화 속 학교에서는 시를 읽고 이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틀린 것이 되고, 미리 해설해놓은 내용을 그냥 외워 읊으면 정답이 된다. 칠판에 교사가 그려놓은 정물 그림을 도화지에 그대로 베껴 그려야만 칭찬을 받는 장면은 현재 인도의 왜곡된 교육 방식을 온전히 꼬집는 셈이다.
 
 영화 <지상의 별처럼>의 한 장면

영화 <지상의 별처럼>의 한 장면 ⓒ (주)앳나인필름

 
니쿰부가 이샨의 부모를 찾아가 아이가 글을 읽고 쓰는 일을 왜 어려워하는가를 질문하자 교사, 기타 주변의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원인을 말하기보다 이샨의 현재 상태만을 쭉 언급하기에 급급하다. 난독증이라는 증상을 알아야 그에 적절한 학습 처방을 내리고 아이의 눈높이에 맞도록 교육이 이뤄질 텐데,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으로 아이를 닦달하기만 했으니 이샨의 상태가 온전할 리 없었다. 물론 우리의 교육 현실 또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니쿰브는 기존 학습 방법과 달리 아이들의 눈높이에 적극적으로 맞추는 등 새로운 교육 방식을 접목한다. 이로 인해 니쿰브는 동료 교사들의 힐난과 비아냥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저마다 배우고 성장하는 속도가 다르다'는 인식이 확고한 교사 한 사람에 의해 이샨을 비롯한 아이들은 물론이고, 학교 전체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아이들은 저마다 끼와 재능을 지니고 있으며, 마땅히 이들 각자의 눈높이와 수준에 맞게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 영화 <지상의 별처럼>이 전하는 메시지는 확고하다.

'하이-라이즈'가 무너지듯, 'SKY 캐슬'이 무너지는 날이 올까
 
 JTBC 드라마 < SKY 캐슬 >의 한 장면.

JTBC 드라마 < SKY 캐슬 >의 한 장면. ⓒ JTBC

 
드라마 < SKY 캐슬 >에서 꾸준히 언급되는 피라미드 형태처럼, 극 중 학벌의 이미지 또한 서열화된 체계로 이뤄져 있어 상단에 위치하려 할수록 남을 짓밟고 올라가야 한다. 입시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인까지 고용해가며 아이들을 관리하는 이유 역시 이 드라마에서는 부와 계급의 세습을 위한 연결고리로 그려진다. 아울러 자식만큼은 부모 세대보다 더 잘 살아야 한다는 간절함 따위의 정서에서 비롯된 바도 일정 부분 작용한다.

이러한 상황은 부와 권력을 쥔 자들이 보다 높은 층에서 살고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자들일수록 낮은 층에서 거주하는 영화 <하이-라이즈> 속 '부의 피라미드'를 연상케 한다.
 
 영화 <하이-라이즈> 포스터

영화 <하이-라이즈> 포스터 ⓒ 찬란

 
영화 <하이-라이즈> 속 건물 안팎에서는 상층부로 올라가고자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쟁이 계속된다. 마치 한국의 입시 경쟁처럼 말이다. 때문에 우리만의 독특한 교육 현실은 영화 <하이-라이즈>에 등장하는 그 괴물 같은 형상의 건물과 판박이다. 그리고 드라마 < SKY 캐슬 >속 'SKY 캐슬' 역시 '하이-라이즈'와 닮은꼴이다.
 
어쩌면 'SKY 캐슬'의 상층부에는 영화 속에서 니쿰브가 인용한 것처럼 '똑똑하지만 가치를 모르는 냉소주의자'들만 득실거리는 건 아닐까? 영화 <하이-라이즈>에서 '하이-라이즈'라 불리는 건물은 결국 계급제의 모순에 의해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겉보기에 견고하기 이를 데 없으며, 누군가에게는 충격과 씁쓸함으로 다가오는 'SKY 캐슬'이 '하이-라이즈'처럼 무너질 날은 과연 올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새날이 올거야(https://newday21.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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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신뢰하지 마라, 죽은 과거는 묻어버려라, 살아있는 현재에 행동하라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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