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의 한 장면.

MBC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의 한 장면. ⓒ MBC


'보리밭에 달뜨면 애기 하나 먹고', 아이를 학대하다 죽인 엄마의 주검 앞에 남겨진 '시' 구절로 시작되었던 드라마. 드라마 덕후들은 문학적 상징성의 함의가 모처럼 좋았다며 설렜다. 그들의 설렘을 배반하지 않고 16일 종영한 MBC <붉은 달 푸른 해>는 막판 한 편의 명작처럼 묵직한 물음을 던지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도현정 작가는 전작인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을 뛰어넘는 치밀하고 밀도 높은 극본을 완성했고, 최정규 연출과 제작진은 그 극본을 문학적으로 잘 구현했다. 완성도 면에서 그 누구도 따라올 자 없기에, 이 드라마의 시청률을 논하는 건 의미가 없다. 흔히 대학생 권장 도서는 많은 이들이 즐겨 찾지 않는다. 그것처럼 이 드라마도 오래 오래 명작으로 남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작품이 될 것이다.

차우경이라는 씨실로 풀어간 시가 있는 죽음들
 
 MBC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의 한 장면.

MBC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의 한 장면. ⓒ MBC


평범하게 살아가던 한 여성이 있었다. 번듯한 남편과 예쁜 딸, 그리고 조만간 태어날 아이까지 있는 그녀는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나마 걱정이라면 교통사고로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한 동생 정도다. 하지만 그 행복의 시간은 그녀의 차 앞으로 뛰어든 어린 소년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났다. 아니, 어쩌면 그 소년은 매개였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그녀의 행복했던 삶 자체가 신기루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붉은 달 푸른 해>는 궤멸하는 차우경(김선아 분)의 행복한 삶을 씨실로 놓은 채 시작된다. 사고, 유산, 드러나는 남편의 외도, 그리고 그녀 앞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초록색 원피스의 소녀. 그녀를 뒤흔드는 사건들 속에서 우경은 그 무엇보다 초록색 원피스의 환영에 집착한다. 그리고 그 환영을 따라가다가 이 드라마의 날실인 살인 사건 현장을 마주하게 된다.

시작은 감옥에서 죄를 다 치르고 나왔다는 한 여성이다. 아이를 죽인 남편을 방조했다는 혐의를 받은 여성은 몇 년의 형을 산 뒤 출소하는 날, 감옥 앞에서 달걀 세례를 받는다. 결국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녀가 집에 머무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얼마 뒤 그녀는 불탄 시체로 발견되었고, 이 사건은 강지헌 경위(이이경 분)를 사로잡는다.

이어서 불에 탄 시체가 또 나타나고, 드라마는 사건에 등장한 상징성 가득한 한 편의 시구들을 통해 이 사건이 학대받은 아이로 인한 연쇄 살인 사건임을 드러낸다. 시를 품은 사건의 뒤를 집요하게 쫓는 지헌과 특별 수사팀은 사건 속에서 '밤새 울었다던' 붉은 울음을 건져낸다. 첨단의 사이트를 활용하여 아동학대 피해자들에게 접근한 뒤 그 가해자들을 '단죄'해주는 이. 하지만 이들은 쉽게 꼬리를 밟히지 않는다. 스스로 드러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차우경이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를 따라 찾아간 곳에서 발견된 시와 엄마의 죽음, 그리고 방치된 채 자란 아이. 그 모든 비극의 원흉으로 '처단'되는 개장수 아빠까지. 그리고 그 잔혹한 사적 복수의 끝에서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은호가 등장한다. 어린 시절 자신을 학대하고 나아가 자신의 세계를 온전히 지배했던 상담센터 전 원장을 죽이며 스스로 붉은 울음이라 밝혔던 은호의 타살이지만 자살과도 같은 죽음은 시청자들을 한껏 연민 속으로 밀어 넣었다. 드라마는 시청자로 하여금 '아동 학대'의 뿌리 깊은 연원에 몸서리치게 만든다.

모든 사건의 주범이라 스스로 밝혔던 은호의 죽음은 또 다른 사건의 시작이었다. 결국 은호와 함께 범죄를 저지른, 이 모든 사건의 설계자인 진짜 붉은 울음의 정체가 드러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토록 우경을 괴롭혔던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의 비극적 사연이 비로소 베일을 벗는 시간도 다가왔다.

우리 사회의 짙은 그늘, 아동 학대의 갖가지 모습들
 
 MBC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의 한 장면.

MBC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의 한 장면. ⓒ MBC


차우경의 환영과 붉은 울음의 거대한 음모와 실행이 주도면밀하게 직조되어 도달한 곳에는 우리 사회의 그늘인 '아동 학대'가 있다. 처음 여자친구의 임신을 외면했던 지헌이 "중학교 때까지 맞았다"며 지나가듯 털어놓은 그 경험은 과거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지헌의 경우 아이를 낳아 기를 자신이 없는 것으로 표현됐지만, 대부분 비뚤어진 모습으로 표현된다. 아이를 학대하고 때리면서도 그걸 사랑이라고 항변했던 민아정이나 '아이를 키우다보면 때릴 수도 있다'는 뻔뻔한 자기고백을 남긴 우경의 새엄마의 모습이 그것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아내는 물론,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권위'를 '폭력적'으로 행사한다. 가부장적 구조는 가정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입양 간 형과 떨어져 보육원에 맡겨진 어린 은호는 원장의 방에 불려가 시를 읽으며 또 다른 학대를 당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아이를 학대하는 건 전근대적인 가치관이나 가부장적인 패러다임의 문제만은 아니라며 덧붙인다. 우경이 본의 아니게 죽음에 이르게 한 일곱 살 소년의 정체를 찾아 헤맨 우경이 만난 부모는 이 시대의 젊고 무책임한 부모들이었다. 두 아이를 놔두고 PC방에 사는 아빠, 그런 가정을 버리고 나온 엄마. 그들에게는 자신의 즐거움과 현생이 두 아이에 대한 보육보다 우선이었다. 그렇게 드라마는 '붉은 울음'의 단죄를 통해 우리 사회 갖가지 아동 학대의 양상들을 폭로한다.

차우경과 붉은 울음의 서로 다른 선택
 
 MBC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의 한 장면.

MBC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의 한 장면. ⓒ MBC


과연 이 학대받는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니 아이들을 학대하는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기서 <붉은 달 푸른 해>는 다시 질문을 던진다.

자신을 찾아온 은호를 치료하면서 학대 사실을 알게 된 정신과 의사 윤태주는 은호와 함께 '학대 처단자'가 된다. 사이트를 통해 동조자를 모으고 블랙 챗을 통해 피해자를 유도하여 사건을 기획하고 실천한다. 아이를 죽였던 엄마를 죽이고 서정주의 문둥이를 남겼던 사건부터 시작해 소라 아빠 살해, 민아정 자살 유도, 하나 엄마, 개장수 살해 등 모든 사건이 윤태주가 설계하고 은호가 실행에 옮긴 것이다. 두 사람은 이를 통해 학대 받던 아이를 구하고 가해자를 단죄한다. 단죄의 정점은 자신을 학대했던 원장의 입에 그가 읽도록 했던 시집을 물려 죽인 은호의 복수를 건너, 시완의 '아빠 살해'와 우경의 '엄마 살해'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 한다.

하지만 붉은 울음이 의도했던 설계는 그를 알아보고 그가 종용한 선택을 포기한 차우경으로 인해 어긋나 버린다. 붉은 울음이 그녀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종용했던 그 '복수'를 우경은 포기한다. 덕분에 가열하게 폭주했던 '단죄'의 기관차는 마치 엔진이 식은 듯 멈춰서 선다. 여전히 '아픈 사람들'은 많은데...

우경의 선택은 곧 <붉은 달 푸른 해>가 남긴 질문이다. 자신의 동생을 죽여서 거실에 묻은 엄마, 그리고 그걸 방조하고 묵인한 아빠. 그런 엄마에게 분노하며 쇠망치를 들었던 우경을 환영 속의 동생 초록색 원피스의 소녀가 막는다. 그런 그녀를 다시 붉은 울음이 엄마를 살해하라고 종용했지만, 끝내 우경은 엄마를 '단죄'하지 않는다.

이건 딜레마다. 우경은 자신의 딸 은서가 할머니를 너무 좋아한다 했지만 그 말은 새엄마가 당당하게 말했듯 그녀를 키워준 30년의 세월, 그 무게이기도 하다. 이미 은서의 할머니가 되어버린 새엄마. 우경은 붉은 울음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여전히 아프고 괴롭다. 그리고 그 '여전히 아프고 괴로운 건' 이제 우리의 몫이다.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야'라고 해도, 그 짐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남는다. 드라마는 '카타르시스' 대신, 여전히 드리워진 우리 사회 '학대'의 그늘에 대한 딜레마를 숙제로 떠맡긴다. 붉은 울음은 '판타지'였지만, 우경의 고민은 우리의 현실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붉은 달 푸른 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