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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떠날 수 없는 1층 개방수장고

 
김승영의 '슬픔'
 김승영의 "슬픔"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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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개방수장고에는 볼 것이 넘친다. 현지 직원의 안내를 따라 들어가면 첫 번째 만나는 작품이 김승영의 '슬픔'과 안성금의 '부처의 소리'다. 두 작품 다 부처님을 형상화했다. '슬픔'은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불상이다. 부처님이 오른손을 턱에 받치고 생각에 잠긴 것이 아니라 눈물을 훔치고 있다. 메시지가 너무 직설적이고 정직하다.

관람객에게 상상을 조금도 허용치 않는다. 그러면 예술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 현대예술에서는 보는 사람의 몫이 점점 커지고 있다. 앞에 언급한 이우환의 '관계'가 대단한 작품이 될 수 있는 건, 보는 사람에게 생각의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작가가 개념을 제시하면 보는 사람이 살을 붙이거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슬픔'이기보다는 '반가사유상'이다. 이에 비해 그 옆의 '부처의 소리'는 같은 소재면서도 던져주는 메시지가 다르다.
 
안성금의 '부처의 소리'
 안성금의 "부처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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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청동과 대리석, 화강석이라는 다른 재질을 연결시켰다. 하나의 부처를 두 마티에르로 만들되, 두 재질을 연결시키지 않고 사이를 띄웠다. 띄운 게 아니고 마음을 열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원래 이 작품은 야외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때 부처들은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반구가 두 개 어그러진 채 놓여 있었다. 누가 봐도 이건 초전법륜지 녹야원에서 하는 부처님의 설법이다.

깨달은 부처님이 마음을 열고 그 마음을 수행자들에게 전하려 하나 그게 잘 안 된다. 그 상징이 어그러진 구조다. 수행자는 다섯이지만 이곳에서는 비례를 생각해서 넷만 배치한 것 같다. 그런데 진열(display)이 완전히 잘못 되었다. 부처가 모두 같은 방향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마주 보면서 마음을 열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반구도 배열과 배치가 정말 잘못 되었다. 큐레이터와 학예연구사들이 공부 좀 더 해야겠다.

3층으로 올라간다, 그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윤석남의 '아이와 분홍'
 윤석남의 "아이와 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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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은 미술은행 소장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그런데 이 중 일부만 개방수장고에서 볼 수 있다. 입구 벽에 보니 'Highlight Art Bank'라고 적혀 있다. '미술은행 하이라이트전'이라는 뜻이다. 수장고에 있던 소장품 중 대표적인 100여점의 작품을 보여준다. 그 옆 9수장고와 10수장고에 있는 작품들은 수장고 밖 통유리를 통해 안을 들여다 볼 수만 있다. 그렇다면 그곳은 들어갈 수 없으니 폐쇄수장고가 되는 셈이다.

개방수장고에서 내 눈을 끄는 작품은 윤석남의 아이와 분홍(2013)이다. 그녀의 작품은 1층 개방수장고에도 있다. 그곳의 작품은 '어머니-요조숙녀(1993)'다. 제작시기가 20년이나 차이가 난다. 그렇지만 윤석남의 작품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이미지가 어머니다. 역사를 담고 있는 오래된 나무판(너와)에 어머니의 이미지를 그려넣어 우리에게 그 어떤 메시지를 전해준다. 한쪽은 요조숙녀, 한쪽은 자애로운 엄마.
 
윤석남의 '어머니-요조숙녀'
 윤석남의 "어머니-요조숙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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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숙녀(窈窕淑女)라는 말은 요즘 젊은이에게 너무 어렵다. 한자 뜻을 그대로 옮기면 그윽하고 정숙하고 맑은 여인이다. 깊고 아름답고 정숙한 심성을 가진 여성으로도 해석된다. 시경(詩經)에 나오는 말로 이상적인 여인상을 말한다. 윤석남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요조숙녀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작품은 한 남자에게 헌신한 또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여인의 모습이다. 자신의 어머니를 그렇게 표현한 것 같다.

이에 비해 '아이와 분홍'에서는 배경이 훨씬 밝아졌다. 분홍색 배경 안에 엄마가 딸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분홍은 여성성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여성의 불안을 상징하기도 한다. 딸을 보호하는 엄마의 모습이다.

그림 왼쪽 아래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아이야 너는 늘 분홍색을 좋아했단다. 나도 너와 같았지." 분홍색도 대물림 되는 것이라는 뜻일까? 윤석남은 우리나라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를 감독한 윤백남(1888-1954)의 딸이다.

새로운 시도, 미술은행 도록

 
미술은행 도록
 미술은행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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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청주의 두드러진 특징은 라키비움이다. 그 때문인지 전시공간 한쪽에 미술은행 도록(Art Bank Collections)을 배치해 놓았다. 이곳에 전시되고 있는 작가의 도록을 진열해 놓은 것이다. 작가를 더 알고 싶을 경우, 이 도록을 보고 작가의 작품경향을 좀 더 깊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게 바로 관람객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진열은 ㄱㄴㄷ순으로 되어 있다. 윤석남의 도록도 있다.

이곳에서도 관람객의 눈길을 끄는 작품은 평면적인 것보다 입체적인 조각이다. 그 중 고근호, 변대용, 박용식의 작품이 한 공간에 상하로 있다. 그런데 이들 작품이 던져주는 메시지가 다 다르다.

고근호의 '돈키호테와 산초'(2010)는 말이 아닌 2인승 세발자전거를 타고 간다. 그렇지만 이게 말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핸들을 말머리로 만들었다. 앞에 앉은 돈키호테의 투구에는 풍차 날개가 달려 있다. 풍차를 향한 돌진을 표현했다.
 
고근호의 ‘돈키호테와 산초’
 고근호의 ‘돈키호테와 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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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축의 한 가운데 여인의 나체가 그려져 있다. 돈키호테와 산초의 눈이 깜짝 놀라는 모습인데, 그것을 보았기 때문은 아닐까? 작품 속에 들어있는 은근한 에로틱이다. 이게 바로 예술 작품 속의 유머다.

변대용의 '아이스크림을 옮기는 방법'(2018)은 이해가 쉽지 않다. 곰이 연분홍빛의 둥근 물체를 가슴에 안고 머리에 이고 있다. 이럴 때 도록을 보면 좋은데, 그의 것은 없다.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박용식의 '선상비행'(2007) 역시 어렵다. 개가 날개를 달았다. 입술에는 루즈를 발랐다.

이들 옆에는 맹욱재의 '카무플라지(Camouflage)'(2012)라는 작품이 있다. 긴 뿔을 가진 사슴의 목과 머리 부분이 벽 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그런데 이 동물이 벽의 각목형태 선과 같은 문양을 하고 있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보호색이라는 생물용어를 빌려, 보호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해도 될 것 같다. 카무플라지를 우리말로 옮기면 '위장'이다. 맹욱재의 의도는 비교적 쉽게 관객에게 전달된다.

 
최정화의 ‘세기의 선물-오렌지’
 최정화의 ‘세기의 선물-오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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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곳 개방수장고에서 최정화와 이수경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최정화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꽃,숲(Blooming Matrix)》이라는 타이틀로 특별전을 열고 있다. 이곳 청주관에 있는 작품은 그 중 하나 정도인 '세기의 선물-오렌지'(2013)다. 이오니아식과 코린트식이 결합된 그리스 건축의 돌기둥(石柱)이다. FRP에 오렌지색 크롬 코팅을 한 작품으로, 중고품 또는 버려진 물건을 활용한 그의 작품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이수경의 작품은 도자기다. 도자기 파편을 에폭시 수지로 연결하고 에폭시에 금박을 입혔다. 제목은 'Translated Vase 2014 TVW 18'(2014)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변형된 화병'이다. 이수경은 유명 도예가들이 버린 도자기 파편을 예술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불완전하다고 버린 도자기 파편이 그녀를 통해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 작가가 의도한 진정한 메시지가 있을 텐데, 그건 잘 모르겠다. 도록을 살펴보지 않은 게 불찰이다.

예술작품 보존처리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다
 
보존처리 소개
 보존처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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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개방수장고를 나오면 복도에 마련된 보존처리실 안내자료를 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969년 처음 설립되었고, 1980년에 소장작품이 400점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들 작품의 보존처리를 위해 그해 양화수복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보존처리실이라는 이름으로 2700여점이나 되는 회화작품의 보존처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수장전시 작품 중 보존처리 대상이 되는 것은 유화작품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곳 안내판에는 고희동,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의 작품이 보존처리 대상이었음을 알려준다. 고희동의 '자화상'은 1915년 작품이다. 1960년에 그려진 박수근의 '할아버지와 손자'도 거의 60년 전 작품이다. 나무틀, 캔버스 천, 물감, 바니쉬(Varnish)라 불리는 니스 또는 광택제 등 문제가 되는 부분을 살피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이것을 처리전 상태조사라고 한다. 손상원인은 운반과 포장, 곰팡이와 해충, 빛과 공해, 온도와 습도 등 다양하다. 심지어는 관람객에 의한 손상과 훼손도 있다.
 
손상원인
 손상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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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과 상태를 확인한 다음에는 문제가 되는 부분을 보완하거나 해결한다. 이 과정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그 때문에 요즘 대학에 문화재보존처리과가 생겨났다. 보존처리 다음 단계인 배접과 액자조립은 상대적으로 쉬운 작업이다.

이렇게 예술작품도 나이가 먹으며 노쇠해지는 것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있지만, 예술의 생명도 영원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나마 복원처리를 통해 그 생명이 연장되는 것이다.

태그:#《HIGHLIGHT ART BANK》, #윤석남, #라키비움, #‘돈키호테와 산초’, #보존처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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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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