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드 박스> 포스터.

영화 <버드 박스> 포스터. ⓒ 넷플릭스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버드 박스>가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2018년 12월 말에 공개한 <버드 박스>를 미국에서 일주일 만에 약 4500만 명이 시청했다고 넷플릭스는 밝혔다. 한 유튜버가 <버드 박스> 속 상황처럼 눈을 가리고 일상생활을 하는 영상을 업로드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다른 유튜버들이 따라하면서 이른바 '버드 박스 챌린지'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눈을 가리고 도로를 건너거나 운전을 하는 위험한 행동을 일삼자 넷플릭스는 트위터를 통해 "'버드 박스 챌린지'로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자 말라"고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살기 위해선 시각을 차단해야 한다'는 <버드 박스>의 흥미로운 설정이 사회적 현상마저 낳은 것이다.

영화 <버드 박스>는 맬러리(산드라 블록 분)가 배를 타고 강을 따라 여행을 떠나기 전에 소년(줄리안 에드워즈 분)과 소녀(비비안 라이라 블레어 분)에게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들려주는 장면으로 문을 연다. 맬러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눈가리개를 벗으면 안 돼", "강에선 말하면 안 돼", "숲이나 물에서 어떤 소리라도 들리면 나한테 말해"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리고 강조한다. "(눈가리개를 벗고 괴생물체를 보면) 너희들은 죽게 돼."

<버드 박스>는 시각을 차단하는 독특한 설정으로 인류의 종말을 다룬 다른 '포스트 아포칼립스' 작품들과 차별을 형성한다. <버드 박스>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생명체와 눈이 마주친 사람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영화는 눈을 감거나 눈가리개로 시야를 가린 생존자들을 보여주며 불안을 시청각으로 구현한다. 때로는 눈을 가린 안대 시점 샷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공포를 관객이 경험하도록 한다. 여기에 숨소리, 바람 소리 등 사운드의 효과를 주어 불안을 한층 고조시킨다.
 
 영화 <버드 박스> 스틸 컷.

영화 <버드 박스> 스틸 컷. ⓒ 넷플릭스

 
"보지 말라"고 말하는 <버드 박스>는 "아무 소리도 내지 말라"고 했던 <콰이어트 플레이스>를 떠오르게 한다. 임산부가 나오고 괴물을 피하려고 감각을 통제한다는 설정에서 두 작품은 상당히 흡사하다. 그러나 두 작품은 전개 방식과 말하려는 주제에선 차이가 뚜렷하다.

<버드 박스>는 오프닝에서 영화 속 규칙을 설명한다. 한편 의문을 던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맬러리는 어떤 이유로 아이들을 이름이 아닌 '보이'와 '걸'이라고 부를까? "여기 집이 있어요. 여기는 안전해요"란 남성 목소리는 누구인가? 왜 세 사람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으로 가려고 하는 걸까? 영화는 대량 자살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한 5년 전 과거와 맬러리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현재를 번갈아 보여주며 수수께끼의 해답을 하나씩 들려준다.

<버드 박스>에서 괴생명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괴생명체를 접한 사람들은 자신의 죄책감이나 슬픔을 이야기하며 자살을 기도한다. 영화는 소용돌이치는 바람과 소리를 사용하여 괴생명체가 나타났음을 암시한다. 관객은 나름의 상상력으로 엄습하는 괴생명체를 상상하게 된다.

<버드 박스>는 괴생명체가 '왜' 나타났는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괴생명체가 나타나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여줄 뿐이다. 괴생명체를 본 사람들이 달리는 차에 뛰어들고 불길 속으로 걸어가는 광경을 보여주는 초반부 집단 자살 시퀀스는 <자살 클럽>이나 <해프닝>의 한 장면처럼 상당한 충격을 안겨준다.
  
 영화 <버드 박스>의 한 장면

영화 <버드 박스>의 한 장면 ⓒ 넷플릭스

 
<버드 박스>는 <눈 먼 자들의 도시>와 마찬기지로 설정의 힘도 가지면서 은유를 읽는 재미도 지닌다. 그렇다면 <버드 박스>가 그린 종말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첫째, 고립을 뜻한다. 영화에서 맬러리의 직업은 화가다. 그녀가 그린 작품을 보고 동생 제시카(사라 폴슨 분)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는데 모두 아주 외로워"라고 말한다. 맬러리는 "외로움은 부수적인 거야. 연결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야"라고 설명한다. '고립'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가 된다.

둘째는 어머니, 즉 모성을 의미한다. 극 중에서 맬러리는 산부인과에서 진단을 받으면서 아이를 원치 않는 인상을 비춘다. 그러나 종말의 세상을 살던 그녀는 점차 변화한다. <버드 박스>의 죽음과 생존은 맬러리가 생명을 낳는 출산과 험한 세상에서 아이를 기르는 양육과 연결된 셈이다.

셋째, 괴생명체로 빚어지는 종말은 현재의 미국을 은유하기도 한다. 10년 전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포스트 9.11의 공포를 <빌리지>와 <해프닝>에 담은 바 있다. 감각을 통제하는 두 작품인 <버드 박스>와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트럼프 시대의 징후를 SF 장르로 그리고 있다.
 
 영화 <버드 박스> 스틸 컷.

영화 <버드 박스> 스틸 컷. ⓒ 넷플릭스

 
<콰이어트 플레이스>에서 청각은 양면적 의미를 지녔다. 현대 사회의 소음과 미디어를 포함한 소리가 사회를 해쳤다고 말한다. 동시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말라는 트럼프 시대의 침묵을 경고한다. <버드 박스>의 시각도 양면적 의미를 가진다. 눈을 뜬 자는 거짓된 이미지에 잡아먹히는 상황이다. 눈을 감은 자는 진실을 외면하기에 급급하다. 다음 세대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버드 박스>에서 새는 '탄광의 카나리아'처럼 괴생명체를 먼저 감지하고 위험을 알려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맬러리는 새를 넣었던 상자를 열어 자유로이 날게끔 해준다. 날아간 새들이 다른 새들의 무리에 합쳐진 것처럼 맬러리는 불신과 고립을 벗어나 다른 생존자들과 연결된다.

그 순간, 맬러리는 '희망'을 가르쳐준 자와 '사랑'을 일깨워준 자의 이름을 '보이'와 '걸'에게 붙여준다. 영화는 극 중 대사를 통해 말한다. "인생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꿈꾸는 게 인생이야." <버드 박스>는 '분열과 혐오의 시대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버드 박스'를 열어 보여준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희망이, 그리고 사랑이 아직 남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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