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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곤조곤'은 책과 영화, 드라마와 노래 속 인상적인 한 마디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무심코 스치는 구절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이야기로 풀거나, 그 말이 전하는 통찰과 질문들을 짚으려 합니다.[편집자말]
농담 반 진담 반 그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새해를 맞아 신년운세를 보러 가면 늘 손해 보는 느낌이 든다고. 어떤 질문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애정운에 대해서만큼은 결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글과 경로를 통해서 나는 내가 동성애자임을 꾸준히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의 존재를 알고 내가 썼던 이야기들을 접했을 리는 만무하다.

대부분의 커밍아웃에는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다. 특히나 상대방이 성소수자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정보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 커밍아웃은 모험이 된다. 그래서 사주를 보러 가면 애정운을 묻지 않는다. 행여나 상대방이 '그런 사랑은 순리에 어긋난다'고 하거나 '동성애 좀 끊어라(?)'고 할지 어찌 알겠는가.

하지만 며칠 전 친구들과 찾은 곳은 조금 달랐다. 사주를 봐 주던 분은 결혼운을 묻는 친구에게 '배우자가 남자냐 여자냐, 나는 그런 것에 편견이 없다'고 말했다. 이건 기회다 싶었다. 드디어 나도 애정운을 볼 수 있는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우물쭈물 입을 잘 떼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분에게 나는 사실 여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원래부터 독수공방하기 쉬운 사주라는 답이 돌아왔다. 답답한 마음에 지금까지 연애를 남자하고 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때서야 뭔가 알았다는 듯 운세를 보던 분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그렇게 살아도 돼."

'동성애자' 대신 모호한 말이 나왔다
 
"엄마 나 게이야" 2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송아무개씨(25, 학생)가 "엄마 나 게이야"가 적힌 손 피켓을 들고 있다. 송씨는 "주변 사람들은 다 알지만 가족만 몰라 피켓을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
 2015년 6월 2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송아무개씨(25, 학생)가 "엄마 나 게이야"가 적힌 손 피켓을 들고 있다. *해당 사진은 이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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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사주를 보던 사람이 정말 눈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보다 긍정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좋긴 하다. 하지만 내가 그런 이야기를 들으려고 거기까지 가서 돈을 냈을 리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곰곰이 그 순간을 돌이켜본 후에 나는 문제가 답을 준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한 나에게 있음을 깨달았다. '여자를 만난 적이 없다', '남자와 연애를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는 의도와 심지어 의미를 파악하기도 굉장히 애매한 말이었다. 에두르고 에두른 저 말을 한 번에 압축하는 단어가 분명 있었다. 그것은 '동성애자'였다. 나는 애초에 이렇게 말했어야만 했다.

"사실 저는 남성을 사랑하는 동성애자입니다. 그런데 제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어디서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곱씹어 볼수록 이런 순간은 생각보다 많았다. 나는 낯선 이들 앞에서 '동성애자'나 '게이'라는 단어로 나를 소개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사람들이 내가 이성애자일 거라고 넘겨짚으면 대부분의 경우 '저는 그쪽이 아니에요'나 '저는 사랑하는 쪽이 달라요'와 같이 모호한 말을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다 이내 박수를 치며 이해했다는 표현을 하곤 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커밍아웃을 할 생각이 아예 없었다면 그런 말조차도 꺼내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왜 나는 나의 성적 지향을 간단하게 드러낼 표현을 두고 암호와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을까. 왜 게이 그리고 동성애자라는 단어를 쓰기를 꺼려했을까. 가장 짧고 명쾌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수치심이 새겨진 나의 이름

한참을 고민하다 친구에게 사연을 털어놓자 그런 답이 돌아왔다. 특정한 단어를 쓰기 불편하거나 버거운 감정이 들면 그 표현을 처음 마주했던 순간을 돌이켜보라고.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90년대는 막 균열이 시작되던 때였다. 한국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본격적으로 부흥하던 시기였고 관련된 출판물이 발표되었으며 커밍아웃을 하는 유명인사들도 등장했다.

처음에 내 주변의 또래들은 동성애자들을 '호모'라고 불렀다. 비아냥거림과 조롱이 담긴 말이었다. '게이'와 '동성애자'라는 정확한 단어가 알려진 후에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사람들은 비하의 의미로 '게이 같다'는 말이나 '동성애자인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다. 상대방을 놀리거나 수치를 주기 위해 그런 말을 썼다. 지금이라고 크게 다른 것도 아닌 듯하지만.

그때 내 주변에는 그런 식의 말들이 '성소수자 혐오'임을 지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는 미디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게이'이거나 '게이와 같은 것'은 웃긴 것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손쉽게 나의 존재를 유머의 소재로 삼았다. 그러니까 나는 오직 '농담' 혹은 '수치스러운 것'으로만 존재할 수 있었다. 무방비 상태로 너무 오랜 시간을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았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나를 소개할 수 있는 이름들을 '수치'와 '조롱'의 의미로 처음 만났다. 아무리 의식에서 그 순간을 몰아내고 이제는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데 자긍심을 느낀다고 말하고 다녀도 몸은 끝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낯선 사람 앞에서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긴장 속에 놓이면 나의 입은 말하지 못했다. '게이'라는 그리고 '동성애자'라는 단어를.

소수자를 비하하는 통제적 이미지
 
 책 <흑인 페미니즘 사상> 겉표지
 책 <흑인 페미니즘 사상> 겉표지
ⓒ 여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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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 놓이는 소수자들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책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 페트리샤 힐 콜린스는 이렇게 말한다. 백인 중심의 사회는 흑인여성을 억압하기 위해 통제적 이미지를 사용한다고. 흑인여성이 그 이미지를 내면화한다면 그들은 주류 사회의 통제에 고분고분 따를 테니 말이다. 그리고 부당한 억압과 차별은 이 과정을 통해 정당화가 되곤 한다.

가령 흑인 여성에게 뒤집어 씌워진, 충실하고 순종적인 가사노동자 이미지는 백인들이 흑인 여성을 유모나 하인으로 부리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만든다. 또 다른 낙인인 '복지수당으로 살아가는 어머니' 이미지는 어떤가.

흑인 여성이 보다 많은 정치적 힘을 가지고 국가의 서비스를 평등하게 받을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하자 생긴 이 이미지는 흑인 여성의 복지시스템을 향한 정당한 요구를 '무책임하고 게으른 의존'으로 뒤바꾸어 놓았다. 이는 이미 마련된 복지제도를 축소하는 일을 정당화했다.

이 통제적 이미지들을 깨지 않는 이상 흑인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일단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무책임하고 게으른 존재', '당연히 누군가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 집단'으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할 리 없기도 하다. 그래서 콜린스는 흑인여성이 낙인에서 벗어나 자기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중요한 사실은 <흑인 페미니즘의 사상>이 힘 기르기 과정을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것으로 묘사한다는 점이다. 이는 당연하다. 차별과 배제에 마주하는 것은 다양한 개인이고 그래서 억압의 양상은 각양각색이나,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혐오와 편견은 흑인 여성이라는 광범위한 집단을 대상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을 통해 수치심에서 벗어나자
 
 대구여성인권센터 한 회원이 25일 오전 열린 대구퀴어문화축제 지지선언에서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라고 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대구여성인권센터 한 회원이 2014년 6월 25일 오전 열린 대구퀴어문화축제 지지선언에서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라고 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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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가 된 이후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이런 이야기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누구나 소수자가 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여러분이 혐오 발언을 들을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말'은 사회적인 것이며 다른 이들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이는 우리가 신뢰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그 말은 아무런 힘을 가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상처를 주려는 말을 절대로 믿지 마라. 그렇게 한다면 그 말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고 여러분을 해칠 수 없게 된다. 나는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은 이 이야기가 인터뷰를 요청했던 사람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를 향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 콜린스는 흑인 여성이 서로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억압에 저항하는 근본이며 사랑을 정치화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가장 밑바닥에 있는 집단의 구성원이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의 가치를 긍정한다면, 그 집단을 가장 밑바닥에 놓는 전체 체계는 이제 의심스러운 것이 된다."

이와 비슷하게 내가 고민을 토로했던 친구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네가 너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을 수치스러워할 때 동시에 누구를 부끄러운 존재로 만드는지 기억해야 해, 그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해야 해, 그래야 용기를 낼 수 있어."

물론 혐오와 편견을 경험한 몸은 여전히 완고하다. 마치 목에 무언가 걸린 마냥 나는 여전히 낯선 사람들 앞에서 '게이'나 '동성애자'라는 말을 쓰기를 그 단어로 나를 소개하기를 어려워한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수치스러움을 내면화하고 나를 드러내는 정확한 표현을 사용하길 꺼리는 순간에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것이 혼자가 아님을.

물론 이런 문제를 겪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런 이들이 수치심에 더해 동료들을 격하시키고 말았다는 죄책감까지 느끼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 글은 전혀 그런 의도로 쓴 것이 아니다.

다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용기를 내어 수치심이 새겨졌던 단어들로 스스로를 소개하고 그 표현들을 원래 있어야 할 위치로 돌려보낼 때, 수치스러운 대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 집단에 속한 우리 모두임을. 그 이름을 공유한 우리 전체임을. 그렇다면 홀로 용기를 내어 '게이'나 '동성애자'라는 단어를 말하는 그 순간에도 결코 우리는 혼자가 아닐 것이다. 그 저항은 이미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는 밑바닥에 놓였던 우리 모두를 긍정하는 사랑의 과정이기도 하다.

콜린스의 글과 친구의 조언은 내 몸 깊숙이 파고든 수치심에서 벗어날 탈출구가 사랑이며, 동시에 그것이 나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 전체를 향한 사랑임을 알려주었다. 이제 나는 용기를 내어 그 사랑을 하고 싶다. 낯선 얼굴들 앞에서 나를 '그 쪽'이나 '다른 사랑'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게이'이며 '동성애자'라고 소개하며.

흑인 페미니즘 사상 - 지식, 의식, 그리고 힘기르기의 정치

패트리샤 힐 콜린스 지음, 주해연, 박미선 옮김,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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