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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소박하게나마 하고 싶은 일을 꾸려가며 사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80년이 넘은 한옥과의 첫만남부터 고치고 수선하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 기자말

이사를 해야 하는 날이 되었다. 살던 집에서 나와 서촌 임시 거처에서 산 지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예정했던 것보다 지체가 되었는데도 집은 아직 미완성이다.
 
이사 며칠 전까지만 해도 집은 여전히 갈 길이 멀어보였다. 며칠만 지나면 마무리가 될 거라는 말을 듣고 정해진 날에 이사를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아니 해야만 했다.
 이사 며칠 전까지만 해도 집은 여전히 갈 길이 멀어보였다. 며칠만 지나면 마무리가 될 거라는 말을 듣고 정해진 날에 이사를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아니 해야만 했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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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9월. 임시 거주지에서의 일상은 어쩔 수 없이 이도저도 아닌 날의 연속이었다. 살림살이를 제대로 펼쳐놓지도 못한 상황에서 밥을 해먹고 어쩌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약 120여 개의 박스에서 겨우 찾아 꺼내놓은 것은 밥그릇, 국그릇, 냄비 하나, 접시 세 개, 컵 두 개, 숟가락, 젓가락이 전부였다. 사먹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처음에는 먹을 게 많은 서촌이지만 막상 끼니 때마다 돌아다니는 것도 쉽지 않았다.

즉석밥과 반찬배달 서비스를 주로 이용해서 먹다 보니 저절로 소박한 밥상이 되었다. 먹는 건 그렇다고 해도 아침저녁으로 찬 기운이 슬슬 느껴지니 박스를 뒤져 가을옷과 이불을 꺼내야 하는데 그 생각을 하니 엄두가 안 났다. 책상도 마땅치가 않아 밥상과 책상을 번갈아가며 오가는 '메뚜기'가 되었다.

집은 아직도 완성이 되려면 멀어 보였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창호였다. 말하자면 창문과 방문의 틀은 되어 있는데 문이 없는 상태라는 것. 우리 집의 창호가 다른 집보다 유난히 많아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창호가 완성이 되어야 유리가 붙고, 도배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창호와 도배가 끝나야 쪽마루를 붙일 수 있다고 했다. 창호의 미완성으로 일은 순차적으로 밀려 있었고 언제 될지는 알 수 없었다. 도대체가 납득할 수 없었지만 누구도 시원한 답을 해 주지 않았다.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가 더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불편하지만 미완성 상태의 집으로 일단 들어가기로 했다. 과연 열흘 안에 다 될까, 싶은 마음이 들긴 했지만 불안한 마음을 애써 외면했다.

어떻게든 안정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긴 그렇게 하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이사라는 건 나갈 사람과 들어올 사람의 일정이 물고 물리게 마련이다. 임시 거처였던 한옥에 새로 이사올 분들이 정해졌고, 그분들의 이사 날짜는 원래 우리가 예정한 이사 날짜에 맞춰 정해졌다.
 
창과 문의 창틀은 되어 있으나 창호가 달리지 않은 문. 저 모습을 한동안 보고 살아야 했다.
 창과 문의 창틀은 되어 있으나 창호가 달리지 않은 문. 저 모습을 한동안 보고 살아야 했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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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여 전, 아파트에서 임시 거처인 한옥으로 이사를 해준 이사업체에서 다시 와줬다. 포장이사가 아닌 일반이사였는데 젊은 친구들이 모여서 일하는 듯한 이 업체를 진심으로 칭찬한다.

단독주택에서 단독주택으로, 골목에서 골목으로 120여 개의 박스를 이고 지고 나르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아니 매우 어렵다. 얼굴이 굳을 법도 하련만 이 젊은이들은 정말 유쾌, 상쾌하게 일을 해줬다. 오래 기다려온 이사의 순간이, 새 집으로 들어가는 이 순간이 미완성의 상태, 어수선한 상태여서 어둡고 심란한 내 마음에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오후에 시작한 이사는 이른 저녁 무렵에야 끝이 났다. 그분들은 약 120여 개의 박스를 마당에 부려놓고 돌아갔다. 뭐라도 더 정리를 해주고 싶어했지만 그분들 손을 빌려서 될 일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마무리하던 작업자들도 돌아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니 오전까지만 해도 '현장'으로 불리던 곳이 오늘부터 '집'이 되었다. 새 집에 왔다는 설렘보다는 극심한 피곤이 몰려왔다. 오전까지 공사가 진행된 탓에 집 안팎에는 온통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먼지로 가득했다. 입 안이 서걱거리는 느낌이었다.
 
눈에 보이는 심란함의 이면에는 집을 짓는 동안 우리가 창조하며 누린 기쁨과 단련의 시간이 있다. 그 시간과 더불어 우리는 이 집에서 살아갈 것이다
 눈에 보이는 심란함의 이면에는 집을 짓는 동안 우리가 창조하며 누린 기쁨과 단련의 시간이 있다. 그 시간과 더불어 우리는 이 집에서 살아갈 것이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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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버려두고 씻고 쉬고 싶었다. 그러나 서촌 한옥에서 한 달여 가까이 보고 살았던 박스를, 더 이상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날 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저 박스를 다 뒤집어서 짐들을 꺼내놓기로 했다.

박스 안에서 구겨지고 포개진 짐들은 풀어놓으니 남루해 보이기까지 했다. 줄인다고 줄였는데도 끝도 없이 나오는 책들을 집어던지고 싶었다. 행여나 이라도 나갈까봐 몇 번을 싸고 또 싼 그릇들을 꺼내려니 풀어도 풀어도 포장지가 계속 나왔다.

짐을 꺼낸 박스는 또 다른 일거리였다. 차곡차곡 쌓는다고 쌓아둔 박스들은, 그러나 몇 장만 쌓으면 허물어지기 일쑤였고, 그 박스 치닥거리를 하느라고 신경이 곤두섰다.

새 집에 들어왔다는 감격, 오래 기다린 이 순간에 대한 기쁨 대신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걱정과 염려, 눈앞에 가득한 짐들을 정리할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공간에 맞춰 새로 짜맞춘 가구들은 아직 생경했고, 거기에 익숙한 살림을 집어넣고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려니 뭔가 어색하고 정신이 없었다. 일단 책은 책꽂이로, 옷은 옷장으로, 그릇은 찬장으로 각자 있어야 할 곳들에 뭉텅이째 집어넣었다.

내 집임에도 온통 낯선 것들 천지였다. 가스레인지 대신 새로 들인 전기레인지에서는 불을 켜면 연기가 피어올라 무서워서 손도 못 대고, 써오던 통돌이 세탁기 대신 부엌에 짜맞춰 넣은 드럼 세탁기는 이게 대체 돌아가는 건지 뭔지 알 수 없었다. 김치냉장고와 냉장고를 따로 쓰던 것을 칸칸마다 냉동, 냉장으로 전환이 가능한 김치냉장고 하나로 대신하기로 했는데, 모드 전환이 제대로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창문이 안 달린 탓에 일단 임시 비닐로 가려놓은 창 밖에서는 바람에 날리는 비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보안경고음이 수시로 울려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전기 콘센트는 온통 새 것이라 빡빡해서 전원 연결을 한 번씩 할 때마다 용을 써야 했고, 방방 스위치는 어떤 게 대청 조명이고, 어떤 게 부엌 조명인지, 어떤 게 마당 조명이고 어떤 게 현관 조명인지 알 수 없어 불 한 번 켜려면 몇 번을 껐다켰다를 반복해야 했다.

대청에서 부엌으로 내려가는 단차는 빨리빨리 짐을 옮겨야 하는 순간에 매우 불편했다. 여닫이가 아닌 옛날식 찬장처럼 미닫이문으로 달아놓은 부엌 수납장 역시 손에 익지 않아 그릇을 정리하는 데 꽤 까다로웠다.

익숙하고 평이한 것을 피하고 조금은 독특하게 만들려고 애썼던 것들은 손에 익기까지 시간을 요구했다. 10년 넘게 써온 전기 주전자는 서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 물을 넣지 않고 전원 버튼을 올리는 바람에 졸지에 사망했다. 새로 산 전기레인지 사용법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물을 끓일 방법이 없어 커피 한 잔 만들어 마실 엄두도 내지 못했다.

피곤과 심란함이 교차하던 그날밤. 어느 순간 점점 짜증의 수위가 높아지려는 찰나. 나와 남편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철퍼덕 대청에 주저앉았다. 생각해 보니 다시 못 올 순간이었다. 집으로 오는 길. 그 기나긴 여정이 이제 끝이 났고, 이 집에서의 첫날이 아닌가. 우리는 두 손을 맞잡고 웃었다. 저절로 감사의 기도가 나왔다. 설핏 눈물이 비치기도 했었나.

처음 이 집을 만난 이래 수많은 고비와 뜻하지 않은 상황에 널을 뛰며 여기까지 왔다. 손에 쥔 게 넉넉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꿈꾸던 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작지 않았다. 전전긍긍했던 숱한 밤, 어찌할 바를 몰라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해야 했던 무수한 낮을 건너 지금에 이르렀다. '돈이 정말 많았나 보다'라는 주위의 농담에 웃으면서도 너무 큰 욕심을 부린 건 아닌지 돌아볼 때가 많았다.

살던 집의 부동산 거래와 은행의 대출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엑셀로 정리한 예산표를 보고 또 보며 얼마나 속이 까맣게 탔는지, 예정보다 지체되는 현장의 속도에 뭐라고 말도 못하고 속을 끓이던 순간은 얼마나 아득했는지 모른다.

그뿐만은 아니다. 건축가와 공간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를 의논하고 나오는 길에 먹었던 체부동집 잔치국수는 얼마나 맛있었는지, 현장을 오가며 장차 내가 살 동네의 골목길을 이리저리 다녀보는 즐거움은 또 얼마나 각별했는지, 수많은 책과 인터넷의 바다를 떠돌며 만나는 이미지를 앞다퉈 보여주며 취향의 동일함을 확인할 때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 순간을 함께 지나왔다.

집 한 채를 짓는 것은 우리만의 우주를 만드는 일과도 같다. 이 우주를 창조하는 내내 힘들게 하고 즐겁게 하는 수많은 변수와 고비, 순간 앞에서 늘 한마음, 한 팀이었다.
 
대청에 앉아 고개만 들면 만나는 저 하늘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저 서까래도, 저 기와도, 처마도 모두 다 내가 창조한 내 공간의 것이다.
 대청에 앉아 고개만 들면 만나는 저 하늘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저 서까래도, 저 기와도, 처마도 모두 다 내가 창조한 내 공간의 것이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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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어수선하고, 아름다운 창호 대신 비닐의 장막이 가리워져 있었다. 안방은 도배도 아직 되어 있지 않아 당분간 사랑채에서 지내야 했다. 마당은 오전에야 깔린 박석들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해 디딜 때마다 기우뚱했고 흙내가 진동했다. 그 위에 흩어져 있는 빈 박스들은 심란함의 적나라한 단면이었다.

오랫동안 기다리고 떠올려온 내 집의 첫 날은 이런 풍경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디 인생이 동화를 꿈꾼다고 동화 같은 장면이 펼쳐지는 것이겠는가. 함께 창조한 공간에서의 첫 날. 이대로여도 좋았다.

이 심란함에는 엄연한 이면이 있다. 그 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함께 헤쳐오는 동안 쌓인 여러 마음이 곳곳에 진하게 배어 있는 구석구석을 말없이, 눈으로 한참을 훑었다. 처음 이 집을 만났을 때로부터 얼마나 먼 길을 걸어왔는가.

비록 절반의 완성일지언정 그것이 무슨 대수랴. 이 공간에서 앞으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것이다. 어려움이 없는 행복을 기대하지 않는다. 어떤 어려움이 올지언정 그동안 경험한 극한의 어려움을 헤쳐나온 그 힘으로 행여나 닥쳐올 어려움을 극복하고 늘 행복하게 이 집에서 살아갈 것이다.

지치고 심난한 마음으로 주저앉은 대청 앞에 고요한 마당이 펼쳐져 있고 까만 밤하늘이 마당 위에 떠 있었다. 나의 마당, 나의 하늘이 내 집 안에 고요히 깃들어 있었다. 드디어 손 맞잡고 나의 집에 당도했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을 찍은 황우섭은 주로 인물과 건축물을 찍는다. 사람도 건물도 기교와 치장 대신 있는 그대로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는 걸 좋아한다. 오래된 것에 집착하고,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것에 주로 관심을 갖는다. 산티아고 순례와 나오시마 여행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긴 단행본이 국내에 출간되었고, '조병수 건축사무소' 전속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찍은 사진이 영국 'Thames&Hudson'에서 펴낸 조병수 건축가의 작품집 『BYOUNG CHO』의 표지 및 본문에 실렸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되었다.(https://blog.naver.com/hyehwa11-17)


태그:#작은한옥수선기, #혜화1117, #황우섭, #한옥수선, #도시형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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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지금은 혜화동 인근 낡고 오래된 한옥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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