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해 7월 1일부터 공공기관 및 300인 이상 사업장에 '주 52시간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으로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를 별도로 봤다. 따라서  그동안 1주일에 휴일을 2일로 지정하여 주 52시간(연장근로 포함) 외에 휴일근로를 별도로 노동자에게 지시해왔던 사업장의 경우,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됨에 따라 무조건 1주 52시간(휴일, 연장 포함)의 노동시간을 준수하여야 한다.

또, 근로기준법 제59조의 특례업종들도 이번 개정안에서 대거 제외되었다. 그래서 휴식시간과 노동시간을 자의적으로 운영했던 과거와 달리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의 제한을 받게 되었다. 2019년 7월부터는 1주 52시간의 노동시간을 준수해야 한다. 최근 유명드라마들이 장시간 근로로 쟁점이 되고 있는 것 또한 방송업이 특례업종에서 제외되고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발생하면서 더욱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노동시간 단축 개정안이 발표되자 뉴스 등 언론에서는 '저녁이 있는 삶'이 실현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의 메시지들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희망이 너무 섣불렀던 걸까? 시행일인 7월 1일을 열흘가량 앞두고 정부는 6개월의 계도기간을 건의한 경총의 요구를 수용하여 지난해 연말까지 처벌을 유예하는 6개월의 계도기간을 시행하였고, 시정 기간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였다.

심지어 고용노동부는 그동안 근로기준법에 있지만 주목받지 않았던 유연근로시간제에 대한 매뉴얼을 제작하여 배포하기 시작했다. 마치 주 52시간 제도가 시행되지만, 이 방식을 활용하면 예전과 같이 노동을 시킬 수 있다고 안내해주는 듯 했다.

유연근로시간제에서도 현재 가장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것은 탄력근로제이다. 탄력근로제는 일정 단위 기간 내에 그 평균 시간은 법정 시간한도 내로 맞추되 일이 많은 주의 노동시간을 늘리고, 일이 적은 주의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는 제도이다. 업종, 업무 특성상 일정 기간에 업무가 가중되는 경우에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제조업, 운수업, 전기·가스 등 물량이나 소비량의 변동으로 일정 기간에 근무량이 많아지는 경우라면 2주 또는 3개월 단위 내에서 탄력근로제를 활용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 2주 또는 3개월 단위로 시행할 수 있게 되어있는 탄력근로제를 6개월 혹은 1년으로 기간을 확대하자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탄력근로제에서도 3개월 단위로 하는 경우 연속 6주 동안 주 64시간의 노동이 허용된다. 그러나 이를 6개월 단위로 확대하게 되면 1주 64시간의 노동을 연속 13주 동안 할 수 있고, 1년으로 하면 연속 26주 동안 할 수 있게 된다.
 
노동시간 유연화는 노동자의 몸과 삶을 망칠 가능성을 더 높인다
 노동시간 유연화는 노동자의 몸과 삶을 망칠 가능성을 더 높인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관련사진보기

  
단위 기간 확대는 사실상 주 52시간제 시행의 의미가 상실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정부는 주 52시간제의 계도기간으로 정한 6개월이 지나는 시점인 작년 연말에 다시 올해 3월 말까지 계도기간을 연장하였다. 현재 국회는 2월안에 탄력근로제 관련 입법을 마무리하겠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어 사실상 탄력근로제 관련 입법을 염두에 두고 계도기간을 연장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 확대는 합법적으로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장시간 노동을 연속적으로 더 길게 허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주 52시간제를 시행한 의미를 무시하는 개악에 불과하다.

사실 노동시간과 더불어 노동자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도 지난해 많은 진통을 겪어야 했다. 올해 최저임금이 전년도보다 820원이 올랐다는 이유로 최저임금은 중소 영세 상인을 망하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몰려야 했다. 그러고 나서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일부가 최저임금산입범위에 들어가는 개악이 이루어졌다. 또 내달 중으로 최저임금의 결정구조에 대한 개편이 이루어질 예정이어서 이 개편이 어떤 풍파를 가져올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최저임금제도는 노동자의 생계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최저수준의 금액을 정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최저임금이 곧 노동자의 임금수준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게다가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노동시간이 감소하게 되는 경우 노동자들의 임금 보전을 위해서라도 최저임금의 인상은 지속해서 이뤄져야 하는데, 법 개정을 통해 그 인상속도를 저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노동자들이 과중한 노동에서 벗어나 조금 더 사람답게 살 수 있으려면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은 함께 연계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최저임금은 생활임금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펼치겠다고 한 정부는 지난해 그 발걸음을 힘차게 시작하는 듯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도돌이표를 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돌파하지 않으면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의 문제를 개선할 기회가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환경을 위해 더 지체하지 말고 완전한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보장을 위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조은혜 님은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이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에도 실립니다.


태그:#노동시간, #최저임금, #노동안전보건행정, #노동자건강권, #과로사
댓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안녕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