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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결혼생활을 꿈꾸는 숙덕 커플이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다시 사는' 이야기입니다. - 기자말

우리는 다르게 살 수 있을까?

숙(필자) : "우리 사이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봐. 너한텐 의지도 능력도 안 보여. 그저 좀 버티면 내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갈 거라 생각하겠지."
덕(필자의 남편) : "아냐. 내가 잘 들으려고 노력하잖아."
숙 : "진짜 모른다면 자꾸 묻든지 책을 찾아보든지 하겠지. 내가 희망 없다고 그렇게 난리치는데 너는 책도 안 보잖아. 속 좁은 나를 견뎌주는 어진 남편이지?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결국 감정노동하고 마음을 낮추고 바꾸는 건 나였지. 너는 좋은 남편이 되고. 우린 잘못 배우고 잘못 살았어. 이젠 그렇게 안 살아."
 
거긴 페미니즘 해방구였다 어떤 위계도 없이 모두 반말하는 책친구들이 작년 마지막으로 토론한 책은 <체공녀 강주룡>이었다. "과연 우린 다르게 살 가능성이 있는가?" 고민 속에 시작했던 모임이 내 남자와 나에게 해방구가 돼 주었다. 그 아래엔 작년 재출간된 페미니즘 시집 <남자들은 모른다>. 김승희 시인께 거듭 감사한다. 한국과 세계의 페미니즘 시집을 엮은, 국내 유일의 시집이지 싶다. 우리가 하도 열심히 읽어서 재출간된 거라면 지나친 자화자찬?
▲ 거긴 페미니즘 해방구였다 어떤 위계도 없이 모두 반말하는 책친구들이 작년 마지막으로 토론한 책은 <체공녀 강주룡>이었다. "과연 우린 다르게 살 가능성이 있는가?" 고민 속에 시작했던 모임이 내 남자와 나에게 해방구가 돼 주었다. 그 아래엔 작년 재출간된 페미니즘 시집 <남자들은 모른다>. 김승희 시인께 거듭 감사한다. 한국과 세계의 페미니즘 시집을 엮은, 국내 유일의 시집이지 싶다. 우리가 하도 열심히 읽어서 재출간된 거라면 지나친 자화자찬?
ⓒ 김화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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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이란 말이 눌렸던 스프링이 튀어오르듯 그렇게 나왔다. 암수술 후 2년, 내 몸도 마음도 달라지던 때였다. '재발의 두려움'을 넘어 내 몸의 주인으로 강해지는 증거였을까. 나는 정말 심각하게 이혼을 고민하고 있었다. 26년을 지켜온 '신성한 가정'이 너무 낯설어졌기 때문이었다. '좋은 남편'은 '말 못알아듣는 남자'일 뿐이었다. 그렇게 계속 살 수 없었다. 전엔 당연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러자 나는 세상의 모든 이혼에 공감하게 됐다. 중년의 별거, 가출, 분방, 졸혼, 그리고 한 지붕 아래 살아도 남남인 경우까지.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살고 싶다"라고 외치는 황혼 이혼도 이해됐다. 그런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그들이 어떤 삶을 견뎠겠는가. 

내 삶 전체가 낯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다르게 살 수 있을까? 두 길 뿐이었다. 내 남자와 다르게 살아 보기, 혹은 홀로 살기.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이 쉽고 단순한 스토리 덕분에 내 남자가 페미니즘 책에 입문할 수 있었다. 지난 2년간 그가 페미니즘 책모임 이프에서 페미니즘을 계속 읽을 수 있었던 힘은 8할이 이 책에서 나온 거란다. 첫 토론의 충격 때문이리라.
▲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이 쉽고 단순한 스토리 덕분에 내 남자가 페미니즘 책에 입문할 수 있었다. 지난 2년간 그가 페미니즘 책모임 이프에서 페미니즘을 계속 읽을 수 있었던 힘은 8할이 이 책에서 나온 거란다. 첫 토론의 충격 때문이리라.
ⓒ 김화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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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책모임에 초대합니다"

내 남자와 계속 살되 다르게 살자 용쓰던 2017년 3월이었다. 

"성장과 변화를 위한 페미니즘 책모임 '이프'에 회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안산여성노동자회에서 온 문자메시지 1통. 눈이 번쩍 뜨이는 소리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내 남자에게 보여 주며 물었다.

"어때? 여기 같이 갈래? 다른 사람들 이야기 좀 들어보고 싶다 그랬잖아."

"그래"라고 그가 대답하는 데는 1초도 안 걸렸다면 과장일까. 그럴만한 일이 있었다. 그의 제안으로 우리가 서울 큰 서점에 간 게 며칠 전이었다. 그날 내 남자는 '페미니즘' 코너에서 시간을 보냈다. 생애 처음으로 그가 직접 페미니즘 책을 산 날. 그의 손엔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가 있었다.

"페미니즘은 왜 불편하고 두려운가? 핑크색을 좋아하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는 걸까?"

책 뒷표지 글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내게 제안했다.

"이런 주제를 같이 공부하고 대화할 팀을 찾아보자."

내 남자와 페미니즘으로 다시 살기

사실 사람들 속에서 페미니즘 토론까지 바란 건 아니었다. 둘이라도 제대로 소통하며 살고 싶을 뿐, 그의 '코를 꿰어 끌고' 갈 맘까진 없던 나였다. 그런데 이런 '잔치 초대장'이라니. 

이프에서 나는 '물만난 고기'였다. 첫 모임엔 여자 여섯 명에 내 남자 한 명이 참석했다. 낯선 조합에 '끼려고' 회비 내고 회원가입까지 한 내 남자. '이혼 위협' 때문에 별 일을 다하는 내 남자. 그 옆에 '62년생 김지영'인 내가 있었다. 거긴 모두 김지영이었다. 한 김지영이 분노하면 김지영들이 떼로 박수치는 자리였다. 내 남자는 그 충격을 이렇게 말했다.

"여자분들이 이렇게 공감할 줄 몰랐네요. 안 들리던 귀가 갑자기 뻥! 뚫리면 이렇지 않을까 싶어요. 좀 충격이네요. 아내한테 수없이 듣던 말인데. 제가 못 본 게 많았구나. 제가 1%에 드는 좋은 남편 소리 들었거든요. 독이었나 봐요. 가부장적인 집안의 장남에, 5남매 중 유일한 대졸인데도, 저는 절대 아들 편애, 특권 그런 거 없었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절대 가부장적인 남자가 아니라 믿었고요."
 
페미니즘 책모임 '이프'가 2018년 읽고 토론한 책목록 

1월. 당신의 평화, 최은영, (<현남오빠에게> 속 두 번 째 작품),
2월. 딸아 너는 절반의 실패도 하지 마라, 이경자, 향연, 2007
3월. 페미니스트, 마초를 말하다, 클레망틴 오탱, 미래의 창, 2016
4월. 악어 프로젝트, 토마 마티외, 푸른 지식, 2016
5월. 남자들은 모른다, 김승희, 마음산책, 2001
6월. 해월의 딸 용담할매, 고은광순, 모시는 사람들, 2015
7월. 싫어요!, 파올라 카프리올로, 초록개구리, 2013
8월. 안마당이 있는 가겟집 풍경, 전경린, (<염소를 모는 여자> 등에 실린 단편)
9월. 나에 관한 연구, 안나 회글룬드, 우리학교, 2017
10월. 이브 프로젝트, 리브 스트룀키스트, 푸른지식, 2018
11월. 그 집 앞, 이혜경, (<이혜경 소설집 그 집 앞> 등에 실린 단편)
12월. 체공녀 강주룡, 박서련, 한겨례, 2018

 

이프는 그렇게 '내 남자와 페미니즘으로 다시 살기'의 연습 같았다. 가부장제에 의문을 가져 본 적 없을 정도로 가부장제에 익숙한 남자. 그 남자와 다르게 살아 보기. 가 본 적 없는 새 길을 우리는 2년간 걸어왔다. 지난 12월 모임에서 내 남자가 소회를 털어놓았다.

"지팡이 역할을 해준 모임이다. 덜컥 넘어진 기분 들 때, 머리론 안다 싶었는데, 실전에서 깨질 때, 막막했다. 그래도 페미니즘이 지팡이였다. 뒤로 돌아갈 순 없는 길이었다. 지팡이, 그리고 내겐 최고의 선생님인 숙이 있어서 가능했다."

이프는 페미니즘 해방구

지난해 말 회원들이 털어놓은 이프의 의미도 그랬다. 그건 우리에게 해방구였다.

"한 달 한 권 페미니즘 책 읽고 말할 수 있어 행복했다."
"의식 못한 내 안의 가부장제를 보게 되니 괴롭고, 그러면서 더 자유롭고."
"20대만 아닌 다양한 연령,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는 기회, 연대의 장."
"쉬운 책으로도 깊이 토론하는 맛. 거칠게 말해도 다 알아듣는 소통의 공간이었다."
"이런 논제와 체계적 토론은 처음이다." 


지난 1년간 나는 이프의 토론 진행자이기도 했다. 우리 딸도 참여했으니, 부모와 자식까지 페미니즘으로 '다시 살기'였다. 총 참석 회원 18명에 월 평균 7명, 12월 마지막 책 모임인 <체공녀 강주룡>도 8명으로 마쳤다. <악어 프로젝트>와 <이브 프로젝트>등 미투를 연대할 힘이 된 책들이 고맙다. 절판 시집 <남자들은 모른다>를 고집한 우리는 재출간 기적도 경험했다.

새해 우리는 이프 해방구 시민으로 더 웃고 떠들며 페미니즘으로 살 것이다. 모두 서로 반말하는 공간에서 어떤 차별도 위계도 없는 해방구에서.
 
페미니즘 책모임 '이프' 2019년 1월 모임

1. 일시 : 2019년 1월 23일(수) 저녁 7시
2. 책 :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목수정, 레디앙, 2008
3. 장소 : 안산양지지역자활센터/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로 95 3층
4. 문의 : 031-405-4362, @안산여노 플러스친구 추가 후 메시지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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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운동하고, 보고 듣고, 웃고, 분노하고, 춤추고, 감히 스스로 생각하고, 감히 스스로 읽고, 감히 쓰고 싶은대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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